버려진 책

-쪼가리소설. 휴 콩트-

by 김휴

버려진 책

-쪼가리소설-


권시인은 글이 풀리지 않으면 사유를 위해 전철을탄다.

나태한 철학자처럼 졸다가 눈을 뜨면 생각에 잠기고

생각 끝에 또 졸고 그래서 시인은 2호선을 좋아한다.

졸음과 생각, 졸음과 철학... 철학과 사유,

이런 나태한 조합을 수 십번을 하다보면

전철은 원점에 다시 그를 데려다 놓는다.


오늘도 시를 위해 전철을 탔다.

여자가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요즘 전철에서 책 읽은 사람을 만나는 것은 하늘에 별따기가 되었다.

다들 핸드폰에 빠져있는 모양새라

솔직히 그 모습을 보는 권시인은 불편했다.


그런데 책을 읽고 있다. 책 크기로 봐서 시집 같기도 하다.

신기한 복고풍 모습에 끌려 그녀 옆에 앉는다.

권시인은 사유에 잠기는 듯 눈을 감았지만

실은 그녀가 읽고 있는 책이 더 궁금했다.


곁눈질로 훔쳐본다. 맞다.

행이 나뉘어져 있는 페이지로 봐서 시집이 맞다.

권시인은 궁금해서 자꾸만 곁눈질을 해댄다

그러다 자석에 끌리듯 그녀 쪽으로 고개가 쏠린다.

그녀가 그를 힐끔 쳐다본다.


그럼에도 시력이 좋지 않아서 어떤 내용인지는 알 수가 없다.

갑자기 여자가 책을 덮고는 혼잣말로 투덜댄다.


"너무 어려워! 왜 이렇게 어렵게 써?"


읽기를 포기한 듯하다.

그러더니 휠끗 날 쳐다보더니


"아저씨! 이 책 읽어실래요?"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전철이 선다.

그녀가 책을 내 무릎 위에 던져주고는

후다닥 내려버렸다.


당황해하면서도

권시인은 무릎에 놓인 책을 촉감으로 느끼고 있었다.

버련진 책이라는 생각에 좀처럼 집어들 수가 없다.


“아. 내 시집이다.”


단발마 같은 신음을 토하고 만다.


-글. 김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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