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쪼가리소설. 휴 콩트-
퇴비
-쪼가리소설-
이퇴비!
퇴계 선생의 자랑스런 후손은 아니다.
그냥 표면상으로 그렇게 보일 뿐이다.
퇴비는 이름 때문에 학생 시절 12년을 놀림을 당하고
아버지와 치열하게 다퉜다고 가출까지 했었다.
아버지와 말을 나누지 않았을 뿐더러 눈도 맞추지 않았다.
堆肥야! 세상을 위한 거름이 되어라!
그렇다고 할바버지가 독립운동을 한 것도 아니고 국가유공자도 아니면서
손자는 세상의 거름이 되라고 하셨을까?
분명 의미로 보면 좋은 뜻이다. 하지만 이름의 껍데기는 완전 거름 수준이다.
할아버지는 자기 손자가 이름 때문에 놀림을 받을 거라는 것을 인지 못했을 것이다.
그걸 알았다면 퇴비를 고집하지는 않았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아버지 살아계시는 한 개명은 절대 안된다는 것이었다.
혹시 나를 개그맨으로 키울 작정을 하신건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나는 내 이름 아닌 그 어떤 것으로도 웃겨본 적이 없다.
오히려 심각한 얼굴로만 살았다. 아니 우울한 날들로 가득했다.
그렇게 퇴비는 거름으로 학창 시절을 다 보내고
이런 거름, 저런 거름 심지어 똥거름으로 썩어 거름의 절정기에
백세를 넘긴 슈퍼센티네이언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드디어 퇴비는 개명을 하기로 작심을 했다.
개명신청을 해놓은 퇴비는 새 이름을 찾기 시작했다.
이름짓기에 빠지면서 이름이 갖는 철학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되었다.
그런 고민 끝에 세상에 모든 것들이 이름을 가지고 있고
그 이름에 소중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봄에 시작한 이름짓기가
눈이 펄펄 내리는 겨울까지 계속되었다.
이제 퇴비는 이름 때문에 진짜 퇴비가 되어버린듯 하다.
정신이 퇴비처럼 썩어들어가는듯 했다.
결국 퇴비는 다시 벚꽃이 필 무렵에 할아버지를 눈물로 원망하면서
그냥 거름으로 살기로 했다.
세상을 비옥하게 만들어라
이 말은 할아버지가 내게 주신 명령어란다.
그럼에 불구하고
세상을 위한 거름으로 썩기에는 내가 너무나 부족하다.
분명 턱없이 부족하지만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최대한 뜨겁게 썩자.
우- 하하하
글. 김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