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국 짐 챙기는 중, 딸이 외식을 하잔다. 손녀와 태어난 지 두 달 갓 지난 손자 얼굴도 익힐 겸 함께 집을 나섰다. 가벼운 마음으로 함께 했는데 점점 산 속으로. 심상챦다. 미국 부잣집은 다 산 속이다. 우드 랜드 힐! 분위기 있는 식당에서 식사.
1. 아메리칸 클래식 블랙퍼스트(미국 전통 가정식)
2. 오리고기를 넣은 오믈렛
3. 베이비 채소 샐러드
4. 염소치즈 키쉬(계란찜같은 요리)
5. 트러플(송로버섯)오일로 튀긴 감자튀김 입니다^^
여자들은 라벤더 마모사라는 칵테일과 라벤더 레모네이드를!
딸 내외에게 너무 고맙다. 월급쟁이 남편과 살며 한 번도 해보지 못 한 호사를 누리는 아내가 안쓰럽기 까지 하다. 손자가 잠을 잘 자 마지막까지 즐거운 미국 생활이었다.
이번 미국 생활의 첫 번 째 여행
파라마운트 랜치
둘째가 태어나면 나들이하기가 더욱 힘들어지고, 산모도 적당한 운동이 필요하며, 차는 30분 정도만 타면 된다는 딸애의 말에 몸 무거운 딸 걱정을 하면서도 405번 고속도로에 올랐다.
목적지는 산타모니카 산맥에 위치한 파라마운트랜치. 안 막히는 게 이상하다는 미국 서부에서도 악명 높은 405번 고속도로. 40여분 걸려 목적지 도착.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막히는 것도 아니다.
마천루와 월가로 대표되는 뉴욕이 현실의 꿈이라면, 헐리웃과 비버리힐스로 대표되는 LA는 낭만을 꿈꾸는 곳인것 같다. 이곳 역시 파라마운트 영화사가 1920년대 영화세트장으로 지은 것을 지금은 미국 국립공원청이 관리 하는 곳이다. 웨스턴 시티란 표지판을 지나니 호텔, 서부영화의 필요 충분요소인 보안관 사무실, 상점등 본격적인 세트장이 펼쳐진다. 약간은 초라한 느낌! 당연하다. 1920년대면 우리나라에는 영화라는 말이 생기기도 전이다. 최초의 활동사진인 춘사의 "아리랑"보다 훨씬 전에 지어진 세트장이다. 인증샷! LA의 유명 관광지(헐리웃, 로데오거리, 스튜디오시티, 디즈니랜드등)에서는 정장 빼입은 미국 촌놈들도 사진 찍기 바쁘더라. 폐가 좋지 않은 내게 가장 부러운 것은 푸른 하늘. 초점 잡기 힘들다는데 비행기로 다행히 한 컷. 옆의 낮에 나온 반달은 덤이다.
랜치(ranch)란 단어가 미국에서는 관광목장이란 의미란다. 이곳은 목장도 아니고 그냥 관광지! 차에 말을 싣고 와서 관광객들에게 대여. 말보다 트래킹을 하고 싶지만 딸애와 뜨거운 사막 날씨 때문에 포기. 이 곳 날씨 정말 대단하다. 그런데 희안하게도 햇빛만 피하면 견딜만하다. 습도가 낮아서 그런 듯! 해만 지면 시원하다. 우리 젊은 시절 듣던 중동날씨 비슷. 모자를 준비 못 한 손녀는 할머니 모자 쓰고 햇빛 속으로. 자연 보호는 잘 된 듯. 벌과 다람쥐, 청설모가 사람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트래킹 수준이지만 등산 못 한 것이 몹시 아쉽다. 2년전 바로 이 산맥에서 산타모니카로 올라 말리부로 내려올 때 본 LA시가지와 말리부의 대저택이 아쉬움을 더욱 짙게 한다! 미국 역사 보다 오래 되었을 것 같은 나무!
글렌데일 시티와 그리피스 천문대
사람은 환경에 적응하는 동물이다. 딸 내외가 둘째를 낳으러 병원으로 가고, 손녀와 우리내외만 집을 지켰다. 걱정과 달리 엄마 찾던 손녀가 아무 탈 없이 우리와 잘 지냈다. 드디어 손자와 얼굴을 맞대다.
며칠 후 사위가 손자 출생 신고 차 연차 사용. 미국은 동부와 서부의 시차관계로 관청의 일을 일찍 끝낼 수가 있다. 9시경 일이 끝났다며 모처럼 나들이나 가잔다. 손자와는 첫 나들이. 글렌데일 시티의 소녀상 참배 후
그리피스 천문대로. 그리고 한인 타운! 그리피스 천문대는 야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이다. 이곳에는 제임스 딘의 흉상이 있다. 밥 딜런과 함께 저항의 상징적 존재였던 제임스 딘이 주연으로 나왔던 "이유 없는 반항"의 촬영지이자 가까이는 "라라 랜드"의 촬영지이기도 한 곳이다. 아쉽지만 야경은 다음 기회로. 손녀와 손자를 카시트에 묶고 1시간여를 달려 천문대 도착.
공휴일도 아닌데 셔틀 버스가 연신 관광객들을 실어 나른다. 동부에서 온 사람들인가 추측. 낮이라 별 볼일 없으니 내부는 통과. 천문대 배경과 해시계, 헐리웃 간판과 멀리 LA다운타운을 배경으로 인증샷! 점심을 묻는 딸에게 "순대국밥" 소리가 목까지 올라 왔으나 패스. 아내가 한국에는 태국음식이 매우 비싸다는 소리. 이건 대놓고 태국식당 가자는 얘기다. 나도 쌀국수는 매우 좋아한다. 점심은 태국식으로.
귀국일 전야. 딸의 인사. “다음에 오면 애들이 커서 좀 더 편하게 지낼 수 있을 거란다.”
사위도 “다음에는 집도 좀 늘여 놓겠단다.” 딸 덕분에 나만 세계화를 마음껏 누리는 기분이다. 실제로 좀 더 큰 집으로 이사한 사위한테 한 번 더 다녀왔다. 코로나만 진정되면 미국여행은 계속 될 것 같은 예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