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풍경
기지개와 함께 방바닥에 발을 디디니 섬찟. 양말부터 찾았다. 가을 실감. 소금 양치 후 부분 틀니부터 끼우고 따뜻한 물로 비타민을 삼켰다. 삶은 달걀과 빵으로 요기. 주방에는 명절 일거리들이 쌓여있다.
대한민국 남자들은 편하다. 특히 나 같은 라떼 세대들은 남자의 권위에다 산업 역군, 안 먹고 안 입고 어쩌구하며 그래도 대접받는 편이다. 탄천에서 가벼운 운동. 명절이 간편해졌는지 코로나 때문인지 운동하는 사람들이 예상보다 많다. 여자들도 꽤 보인다. 사실 명절에 가족들 모이기도 힘든 코로나 시국이다.
가벼운 근력운동과 육 천보 걷기 후 집으로.
아내 혼자 명절 준비를 하고 있다. 미안한 마음에 거실과 주방 청소. 고기 손질 후 부침개 일에서 나는 빠졌다.
폰을 켜니 조카의 문자가 와 있다.
“큰아버지 다리를 다쳐서 요번 추석은 못 가겠습니다.”
라떼식 표현으로 불감청이 고소원이다. 폐 수술 후의 코로나 바이러스는 내게서 많은 것을 앗아가 버렸다. 조카 보고 싶은 생각이나 외로움보다 사람 만나는 일에 겁이 앞에 선다.
가족 밴드에도 소식이 없다. 어제 손주들 우리나라 왔을 때 찍은 사진을 올렸는데 아직 본 사람이 없다. 어제 화상 채팅에서 손녀가 한 말.
“할아버지 나 한국 가고 싶다.”
집에만 있어야 하니 답답한 모양이다. 그래서 찾아 올린 우리나라 놀이터 사진이다. 손녀에게 해 주고 싶은 말.
"우리나라도 꼼짝 못 한다. 미국보다 더 하다."
올 8월에 초등학교 부설 유치원 입학한 손녀. 한 창 새로 만난 또래들과 어울릴 시기지만 그놈의 코로나 때문에 화상수업을 한단다. 친구는 못 만나고 과제는 해야 하고. 처음에는 또래들의 자기소개와 장기 자랑에 흥미를 가졌지만 이제 그마저 싫증 낸다는 딸의 말!
올 1월까지 석 달간 미국에서 같이 놀아주고 왔지만 나는 항상 서열 꼴찌였다. 엄마, 아빠, 할마, 아무도 없을 때만 내가 인기 순위 1위가 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외출을 못 하니 이 할빠라도 놀아 줄 사람이 필요한 모양이다.
“전화 안 왔지?”
“아직 안 왔다,”
“바쁜 줄 아나?”
“걔들이 추석을 알겠나. 애 둘 키워봐라 바쁘다. 큰 놈 숙제도 도와줘야지.”
바로 깨갱. 아내는 셋을 키웠다.
간단한 샤워부터. 거실 정리에 제사상 차리기. 조카들도 오지 않은 조촐한 차례에 많이 간소해졌다지만 그래도 바쁜 명절 행사 후 음복까지.
밴드를 찾으니 딸애의 답이 와 있다. 아내의 말이 맞았다. “추석이었군요. 행복한 추석 보내세요. 미사고! 하트 뿅뿅!” 미국은 음력 달력이 없는 데다 추수감사절 행사가 워낙 성대하다 보니 동포들은 추석 생각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나라 보름달 사진이나 보내야겠다.
“루아가 한국 놀이터에 가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며칠 전 보내온 딸의 카톡 내용이다.
우리나라 놀이터에서는 처음 보는 이모와 외삼촌까지 함께 했으니 기억이 나는 모양이다. 엄마, 아빠밖에 모르던 손자도 이모와 외삼촌과는 잘 놀던 기억. 애들도 젊은 사람을 좋아한다던 아내의 말. 어리지만 그래도 모국 아니 손주들의 모국은 미국이다. 그래도 당기는 핏줄인 모양이다. 등교 하지 못 하는 탓도 있겠지.
코로나는 또래의 친구보다 조부모와 더 가까워지게 하는 힘도 있다. 참!
유치원생이지만 화상 수업을 하니 과제가 있는 모양이다. 집에서는 영어를 사용 않으니 엄마의 도움도 필요. 전화가 점점 잦아든다. 아무리 글로벌이니 지구촌이니 해도 미국은 역시 먼 나라다.
올 4월 한국행 비행기 표까지 끊어 놓았으나 망할 놈의 코로나 때문에 위약금까지 물고 예악 취소. 언제나 가고 올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저녁엔 멀리 있는 사촌들에게서 명절 안부 전화.
코로나 때문에 생긴 새로운 생활상. 다음 월요일엔 화상수업이다. 분당노인종합복지관. 개관은 했지만 강좌들이 모두 비대면 수업이다. 운동 길에 만나는 이웃들도 손만 흔들고 지나친다.
어떻게 된 게 코로나는 가까이 있는 사람들은 멀어지게 하고 멀리 있을수록 자주 만나게 한다. 반년 가까이 만나지 못 한 친구들도 sns를 통해 추석 맞이 덕담을 전해온다. 노년의 마음가짐과 행복 기원, 자신의 취미 활동(주로 혼자 하는 등산, 사진) 등. 나도 몇 자 올리고 “좋아요!” 로 화답. 아침을 간단히 때우고 공트장으로. 작은 가방과 함께 현관 앞의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다.
집 앞 강변의 운동 기구 앞에는 부지런한 분들이 건강관리에 열중이다. 나야 은퇴한 백수지만 자전거와 러닝은 젊은 사람들도 땀을 흘린다. 화상 수업하는 학생이거나 재택근무하는 사람들이기를 비는 마음. 나이가 있으니 운동도 조심! 준비 운동 후 주로 철봉과 평행봉. 정리 체조. 열심히 운동하는 대도 턱걸이와 평행봉 개수는 줄어든다. 반비례로 몸 푸는 시간은 길어지는 것은 당연. 세월무상!
다음은 6.000보 강변 산책. 노인복지관 체력단련실에서 함께 부대끼던 분들을 만나도 손만 흔든다. 주먹이나마 마주치던 분들도 어느 때부터인가 고개만 까딱이고 치운다.
엘리베이터 안의 손세정액으로 손을 씻고, 샤워하기 전 다시 폰 개방.
오늘은 운동량이 좀 많다. 8.000보 가까운 워킹. 혹시나 하고 본 밴드에 "마트 다녀오는 길에." 란 말과 함께 핼러윈 장식품 앞에서 찍은 손주들의 사진이 올라와 있다. 지난해 추억 소환.
10월 말이 되면 미국은 거의 파티 기간에 들어간다. 핼러윈 기간이 지나면 땡스기빙 데이, 이어서 크리스마스 장식품들이 거리를 메운다. 핼러윈을 미국에서는 큰 축제로 여긴다. 해골, 뼈, 호박 등등 장식품에다 핼러윈 복장들도 야단스럽다. 작년에는 손녀는 마녀, 손자는 배트맨 복장을 하고 손녀 유아원 방문. 대단한 행사에 내가 더 흥겨웠던 추억! 올해는 그 행사를 할 수 없는 손주들. 망할 놈의 코로나!
샤워 후 잠시 휴식! TV를 보던지 아니면 눈을 감고 누워 있기, 기분이 나면 기타 연습. 아내가 부르면 점심! 오늘은 요리도 조금. 아내는 이런 내가 동화에 나오는 베짱이 같단다. 컴퓨터를 켜면 뉴스 보기와 게임 약간.
내일은 밴드로 하는 기타 화상수업! 10시부터 11시 50분까지 화요일과 금요일은 나도 할 일이 있다. 비록 비대면이지만 기타와 사진 수업. 당연히 운동은 오후로. 차가 없으니 스트레스 해소용 드라이브도 할 수가 없다. 폐 앓은 노인네는 대중교통은 이용하기가 겁이 난다. 별나다 마시라. 죽기 싫어서가 아니다. 삶이 걱정되어서다. 병원은 근처에도 가기 싫으니.
컴퓨터를 끄면 TV보기와 기타 연습. 11시면 숙면. 이것이 코로나 시대 70대의 24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