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의 시작

설날 풍경

by 김윤철


찬 바람을 맞으면 에너지 소모가 많은 모양이다. 자리에 누우니 눈을 뜨기 힘들 정도로 피로가 몰려온다. 이불을 덮어쓰고 있으니 왼 무릎과 발목이 시큰거린다. 특히 발목은 아픈 것 같기도 하고 욱신거리는 것 같기도 하다. 하여튼 묘한 통증. 아내의 도움을 청한다.

"무리하지 마라."

발목에 찜질기를 감아주며 핀잔 아닌 핀잔.

"매일 하던 운동인데 좀 춥더라."

"추울 때는 적당히 해라."

"엘리베이터 공사한 지 보름 다 되어가지?"

"내일이 한 달이다. 모레부터 정상 운행한다."

"한 달?"

세월 참 빠르다.


엘리베이터 교체 공사로 운행 중지. 12층 아파트를 걸어 오르내린 지 벌써 한 달이란다. 느낌은 보름 정도 지난 것 같은 같은데....

하루에 한두 번은 오르내리고, 걷기 운동을 천 보 정도 줄인 것이 벌써 한 달!

시간을 체크할 일이 없는 백수의 시간관념. 느낌보다 시간이 배로 빨리 간다.

그래서 발목과 무릎이 아픈가? 내일부터 걷는 양을 반으로?


세월이 구보 하기를 기원하던 군 시절 이후로 시간의 빠르기를 실감한 기억이 별로 없다. 아마 지금이 처음인 것 같다. 집에서만 생활해야 하는 코로나의 영향? 아니 나이대에 따라 세월의 빠르기가 다르게 느껴진다는 말을 어느 책에서 읽은 것 같다. 나? 칠십 노인! 시간의 흐름이 느낌보다 두 배의 빠르기!


새 달력 구한 지가 어제 같은 데 벌써 설이다. 2020년 4월 둘째 주 모임 폐쇄 이후 추석을 두 번. 신축년. 임인년 새해 덕담 두 번.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하다. 새삼 느끼는 기분! 세월 참!


코로나 탓에 그 의미까지 퇴색해 가는 설.

"옛날 못 먹을 때 이야기지 요즘 누가 제사 음식 그렇게 많이 하나?" 너무 적은 상차림에 아내도 민망한 듯 한 소리한다. 내 눈에는 그래도 너무 적다.

"아빠 밤!"

막내가 깐 밤을 들고 왔다. 작년 추석 때 밤 치기 힘들다는 소리를 기억해 두었던 모양이다. 고맙다고 해야 하나. 세상 바뀌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나는 꼰대댜.

그래 꼰대 노릇 제대로 하자! 홍동백서, 조율이사, 어동육서, 동두서미! 없는 제수나마 제대로 갖추고 12층 아파트를 내려와 조상님들을 모시고 정성을 다해 제사를 모셨다.


그런데 세배받는 자리. 많이 허전하다. 조카들의 빈자리가 너무 크게 느껴진다. 차례상도 라떼의 눈에는 마음에 차지 않는다.


도합 네 번의 명절을 경험하니 조카들도 으레 자기 집으로 간다.

"큰 아버지 뵙고 싶지만 제가 요즘 사람 접촉이 많아서요...."

"그래 마음만 와라. 운전 조심하고. 할머니께도 안부..."

고향도 못 가는 형편에 조카 오랄 수도 없고 사람 만나는 게 겁나는 시대다. 언제쯤 마음껏 오갈 수 있을까?


먹을 사람이 없으니 차례상을 푸짐하게 차릴 필요가 없다. 냉장고도 만원이다. 사람 손 가는 일은 마트에 카드만 들고 가면 된다. 그런데 이게 꼭 좋기만 한 것일까? 나? 칠십 대. 꼰대다. 집집마다 결혼 않고 있는 자식들이 한 둘씩은 있는 요즘이다.


손주들 생각하며 우리끼리 하는 말.

"얘들이 어디 가서 무엇하고 살지 어떻게 아노?"

"무덤도 필요 없고 그냥 경치 좋은 곳에 뿌리기로 약속했다."

사실이다. 아내와 나는 흔적 없이 가기로 이미 약속을 했다. 친구들도 같은 생각!

우리 친구들은 조금은 신문물을 받아들인 축이라 생각.


차례 후는 평일과 다름없이 집 앞의 강변으로. 설날인데도 사람들이 붐빈다. 집안 형편은 거의 같은 모양이다. 간단한 명절 행사 후 가족 나들이. 얼핏 보기에도 손주들과 함께 나온 가족과 노부부만 나온 가족이 반반이다.


가장 쓸쓸해 보이는 것은 반려견 안고 가는 사람들이다. 얼마 전 들은 어느 할머니의 말씀.

"자식들도 못 오고 집에 들어가면 뛰어나와 반겨주는 것은 이놈뿐이다." 코로나 시대의 명절 풍경이다.


평행봉을 잡고 몸을 예열한다, 갑자기 든 생각. 개도 한 마리 없이 혼자인 나는. 다른 사람들 눈에 어떻게 비칠까? 팔굽혀 펴기 몇 번 하고 도망치듯 집으로.


손목의 갤럭시 핏에서 카톡 신호. 폰을 살피니 미국 사는 딸의 대화 신청.

"아빠 세배!"

세상 참 좋다. 화면 속 손주들의 재롱.

"미국에도 설 있나?"

"여기도 한국 사람들 있다."

SNS를 통해 연락. 한인 마트가 있으니 떡국도 먹었단다.


코로나의 새 풍속도! 시공간의 개념이 사라지고 있다.

가까이 있는 조카들 세배는 못 받고 멀리 있는 손주들의 세배는 가능!


그래도 코로나는 싫다. 밀어낸다고 갈 놈도 아니니 함께 살 방도를 찾아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