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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에서 라이딩

리플리 증후군

by 김윤철


손주들이 개학을 하니 자유 시간이 많아졌다.

나이에 맞지 않게 호기심이 많은 나.

라이딩 시간이 길어졌다. 젊은 사람들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안 가던 길도 달린다.

땅이 넓은 미국은 길 찾기가 쉽다. 건물이 일자로 늘어서 있다.

꼬불꼬불한 길에 집 뒤에 또 집이 있는 우리나라와는 조금 다르다.

도로명 주소가 딱 맞다는 생각.


그래도 길 찾아 헤맨 적이 있다.

보통 라이딩의 두 배 정도의 시간. 세 시간 정도 라이딩.

집에 다 와서 긴장과 다리에 힘이 풀려 넘어졌다.

무릎이 조금 까졌다. 다음부터는 손 보호용 운동 장갑을 착용.


두 시간 정도의 라이딩을 마치고 집에 오니 손이 허전하다.

몸에 익지 않은 장갑을 어디 두고 온 것이다.

어디랄 것도 없다. 라이딩 중 물 마신 두 곳 중 하나다. 한 바퀴 더 돌아?

몸은 천근 만근이다. 일단 집으로. 냉수로 헐떡이는 숨을 달래며 생각.


내겐 특별한 의미가 있는 장갑이다.

팬데믹 전 미국 생활 중 딸이 아빠는 운동할 때가 가장 멋있다며 선물한 나이키!

몇 년 내 손때가 묻은 딸의 사랑. 이번 미국행에도 동행. 나는 내 추억에 집착이 큰 편이다.

일단 빈 물통부터 채우고 다짐 삼아 가방끈을 조였다.

또 나가나!

잠깐 나갔다 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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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억지 자전거 타기. 돌아오면서 물 마시던 곳. 이곳은 아니다.

그런데 피곤한 기억은 이곳이란 명령을 내린다.

입 밖으로 내면 리플리 증후군?

혹시나가 역시나였다. 서둘러 첫 번째 쉬던 곳으로.


멀리서도 단정히 앉아 있는 장갑이 보인다. 긴장이 풀리니 피곤이 발작을 한다.

일단 물부터. 이곳에선 물이 필수품이다. 습도 낮은 더위의 탈수증 예방.


무거운 몸과 싸우며 집 도착. 벌겋게 단 얼굴에 아내가 잔소리를 뱉는다.

"폰 찾으로 갔다 오나?"

"장갑!"

"아무도 안 가간다."

"개한테는 존 장난감이다."

"하나 사마 대지."

아내의 걱정에 아내의 말로 답한다.

우리 아파트 분리수거장에서 멀쩡한 가구를 보며 아내가 한 말.

"버리마 스레기고 살라마 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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