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도착
코로나 바이러스는 많은 것들을 바꾸어 놓았다. 특히 마스크와 사회적 거리두기는 타임머신 기능을 탑재하고 있는 것 같다. 집안에만 있으니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는 시간이 많아지고, 새로운 것 시도가 힘 드니 과거를 살피게 된다. 아직은 과거 회상하며 살아가는 세대는 아니라고, 무엇이던 해 보겠다고, 노력도 많이 했지만 역시 나이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란 걸 깨닫게 되는 집콕 타임이다. 그 와중에 개인적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던 2015년의 사진첩을 정리해본다.
2013년 9월! 한 달 여의 병원 신세를 거쳐, 소주잔에 맹물로 정년퇴임 축하를 받고, 육 개월 여의 투병 생활과 근감소증을 이겨내고, 2014년 도시로 이사. 다시 딸의 출가. 2년도 안 되는 시간에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병원에 누워 지난 40여 년의 직장 생활을 되돌아보니 약간은 억울하단 생각이 들 정도로 얽매인 삶이었다.
“잘 살아 보세, 우리도 한 번 잘 살아 보자.”라고 노래 부르던 도시화, 근대화의 사라져 가는 마지막 세대! 그 라떼의 표현! “안 먹고 안 입고, 너희 키웠다.” 씨알도 안 먹힐 소리 대신 병원에서 한 달간 목욕조차 마음대로 못 했던 아내의 노고도 치하할 겸, 그간의 내 삶에 대한 보답으로 생각하고 2015년 2월! 딸이 살고 있는 미국으로 출발!!!
여행이란 설렘, 즐거움과 동의어다. 특히 이번 미국행은 결혼한 딸아이와의 첫 만남과 지금은 달라졌다고 하지만 미국의 원조품인 옥수수 죽으로 점심을 대신하던 우리 세대에겐 꿈의 나라로 간다는 가슴 벅찬 기대가 있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비행기에 오르니 테러에 대비해 검색이 심하다는 기내 방송이 약간의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기대감이 지루함을 이겨내고 미국 땅의 검색대에 서니 약간은 험한 얼굴의 흑인 검사원이 입국 신고서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무슨 말을 한다. “스로리! 프리즈!” 서툰 영어를 내뱉으니 손가락질을 하며 “아시아나!” 이건 영어가 아닌 우리말이다. 우리나라 항공 직원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심사대를 통과하니 한숨이 나온다. 사실은 숙소 주소에 우리 식으로 하면 번지수 하나 빠졌다는 별 일 아닌 것이 속을 썩였다. 가족이 함께 오는 경우는 불법 체류할까 심사가 조금 까다롭다는 이야기. 약간은 주눅 든 마음에 마중 나온 딸 얼굴이 더욱 반갑다.
공항 밖에는 만개한 2월의 꽃들이 열두 시간 지루함과 함께 장거리 여행임을 실감 나게 해 준다. 미리 예약해 놓은 산타모니카 숙소 도착. 주차를 하니 영화배우 같이 잘 생긴 흑인이 자리 교정을 해준다. 묘한 것이 커피 자판기처럼 동전을 넣고 주차를 한다. 짐을 옮기다 아까의 흑인을 다시 만났다. 고마운 마음에 인사를 하니 “아리가도, 감사합니다.” 뜻밖에도 일어와 우리말로 화답한다.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분이란다. 입국 심사대에서 우리말을 하던 사람과 함께 미국 도착 첫 만남의 흑인들이 지구촌을 실감 나게 해 준다.
20일의 미국 여행! 수박 겉에 혀 대보는 수준이겠지만 최대한 객관적으로 미국을 보겠다는 생각을 하며 산타모니카 시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