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모니카 시내 구경 전 볼티모어에 살고 있는 졸업생에게 전화. 멀리 미국 살지만 sns를 통해 소식을 주고받는 특별한 사이다. 근 20년 만에 들어 보는 목소리. 서로가 반갑다. 시간 내서 한 번 가겠다 하니 승용차로 사흘은 걸린단다. 이게 뭔 소리? 캘리포니아와 볼티모어는 태평양과 대서양에 닿아있다. 미국의 서쪽 끝과 동쪽 끝에 있다. 9시, 애들 등교했냐 물으니, 집에 올 시간이란다. 3시간의 시차! 새삼 미국의 크기에 기가 질린다. 중국이 크다지만 패키지여행이라 놀랄 일이 별로 없었는데. 이런 나라와 자유무역이라니 참으로 갑갑하다. 이건 초중량급과 경량급의 시합이다. 젊은이들 정신 바짝! 짧은 기간에 미국 느끼기는 수박 겉핧기란 말도 사치라 느껴지는 크기다.
집을 나서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소부터 외웠다. 애리조나가, 옆 도로는 링컨가, 주 이름이나 사람과는 상관이 없는 그냥 고유명사, 도로 이름일 뿐이다. 숙소 근처의 산타모니카 도심! 깨끗하고 품위 있어 보이는 관광지다.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은 신호등이 전자동이 아니다. 길을 건너고자 할 때는 버튼을 누르고 기다린다. 시간이 되면 신호가 바뀌는 것이 아니라, 버튼을 눌러야 작동되는 수동식이다. 아마 교통량이 많은 곳에 건너는 시간을 더 주고자 함 이리라.
여기도 겨울이라는데 낮에는 덥기까지 하다. 복장도 자유. 남의 눈치 따윈 보지 않는다. 아니 영어에는 눈치란 단어가 아예 없다고 한다. 개인주의 국가이니 다른 사람 신경 쓸 이유가 없다는 말. 자유! 3주 정도의 미국 여행에서 뼈저리게 느낀 부러움이다. 미국 생활 몇 달 되지 않는 딸애가 제법 가이드 노릇을 잘한다. 곳곳에 보이는 노점상과 거리의 예술가들이 이곳이 관광지임을 실감하게 해 준다. 기타, 타악기, 마술에 초상화까지. 한 낮 뙤약볕 아래에서 펼쳐지는 공연자 앞에는 모자며 악기 케이스, 깡통까지 팁을 챙기는 도구도 갖가지다. 깡통! 우리 세대는 무척 낯익은 모습이다. 깡통 찬다는 말에 익숙한 우리 세대에겐 목 놓아 부르는 노래가 안쓰럽게 들린다. 1불. 우리 돈 천 원이면 쌩큐 베리 마치다.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에 의한 뉴딜 정책이 황금 사슬에 묶여있다.”라고 외치던 C.C.R의 노래가 들리는 듯하다.
점심은 매식! 미국 식당은 참으로 내게 맞지 않는다. 식사 도중 수시로 근처를 맴돌며 시중을 들어준다. 우리식으로 하면 빨리 나가라 눈치 주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여자들은 대접받는 기분이란다. 왜? 팁을 주니까. 처음에는 그 돈이 아깝다고 느껴졌지만 생각을 바꾸면 우리도 한 번쯤은 생각해 볼만 한 것이 아닐까. 팁은 종업원에게 주는 다른 음식 값, 최저임금 보전을 위한 방법. 괜히 음식값만 올리는 게 아니라면 나름 합리적인 제도가 아닐까.
식사 후 해변으로! 모래사장이 참으로 넓다. 겨울이라 사람이 많지는 않지만 모두 일광욕이다.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 시민들은 참 벗는 것을 좋아한다. 선글라스 속의 눈이 호강한다. 미국에서 늘씬한 몸매는 부의 상징이란다. 운동할 여유! 거리 어느 곳에서나 벗고 달리는 모습들을 볼 수 있다. 배가 약간 나온 것을 부의 상징이라 여겼던 배고프게 자란 우리 세대에겐 이해하기 힘든 세계다. 그 한 곳에 갈매기에게 모이를 주는 노인이 보인다. 은퇴한 분 이리라. 동병상련의 정과 함께 부유한 곳에 살 수 있는 여유가 부럽다. 이 곳은 미국의 서쪽 끝. 태평양 연안이다. 한국과 가장 가까운 곳이라 생각하는 동포들의 향수를 달래 주는 곳이란다. 여행기분과 자유스러운 분위기에 아내와 기분도 좀 내 보았다. 환갑 전후 노인들의 하트!
산타모니카에서 말리부 해변으로 가는 도로. 그 오른편에 1930년대 미국의 유명 배우였다는 윌 로저스를 기린다는 캘리포니아 주립공원. 산타모니카 도심에서 캐나다까지 이어진다는 1번 도로를 따라 말리부 비치 쪽으로 20분 정도 가다 보면 입구가 나온다. 입구 안쪽의 신호등 대기 중, 운전하는 분의 말씀! 여기 차가 없다고 신호등 무시하면 우리 돈 40만 원 정도의 벌금 쪽지가 집으로 날아온단다. 지금의 우리나라 광화문을 보면 공권력이 이처럼 강해져야 한다는 생각. 단 억울한 사람이 생기지 않게 법이 만인에게 공평하다는 전제하에! 안내 지도를 보니 봉우리 몇 개를 거쳐 제자리로 돌아오는 코스인데 최고봉이 775피트로 되어있다. 계산해보니 약 230미터 정도 된다. 바닷가 산의 해발 230미터라면 만만히 볼 게 아니다. 오늘은 휴일도 아닌데 등산객들이 꽤나 많다. 한눈에 드러나는 우리나라 산과의 차이. 자유다!
입은 사람 벗은 사람 정말 각가지 복장이다. 등산복으로 통일된 우리의 산과는 정말 다르다. 옳고 그름을 떠나 체면을 중시하는 우리와 자신을 존중하는 미국의 문화적 차이리라. 단 나처럼 주위 신경 쓰지 않는 사람에게는 다름을 인정 않는 우리의 통일된 문화가 조금 불편할 뿐이다. 우리나라의 등산복은 지나치게 비싸다는 느낌. 그런데 편한 복장으로 다니면 약간은 소외당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미국의 특징 중 하나, 만나기만 하면 웃는 얼굴로 “하이”다. 무뚝뚝한 것보다 기분은 좋다. 정상에 오르니 왼쪽으로 말리부 주택가가 보인다. 듣기로는 비버리힐즈에 버금가는 미국에서도 알아주는 부자 동네란다. 중세의 성 같은 느낌을 주는 대저택이다. 미국의 부자들은 언덕 위에 산다. 열대 사막 기후 탓인지, 사생활을 중시하는 국민성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언덕이란 뜻의 힐이 붙으면 부자 동네라 생각하면 된다. 대표적인 것이 비버리힐즈. 그런데 대주택 주위에 나무로 된 전신주가 보인다. 이 부촌에 웬 전봇대? 미국은 전신주가 거의 다 지상에 있다. 이유는 모르겠다. 우리나라는 지하로 들어간 지 오랜 대. 대저택을 부러워하는 사이, 반대편 다운타운이 안갯속에 잠겨있다. 고층 건물이 많은 우리나라와 달리 땅이 넓은 미국은 상가 건물이 대부분인 중심가에만 고층 빌딩들이 보인다. 아내가 말리부의 저택이 부러운 듯 “우리나라 산에 저런 건물이 서면 다 러브호텔이란” 우스갯소리를 한다.
미국 등산 시 조심할 것! 이정표에 마일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높이는 피트, 길이는 인치, 거리는 마일이다. M으로 표시되는 데 미터도 m이니 착각하기 쉽다. 사실은 키로 미터니 k로 표시되지만. 2시간 정도의 이 정도 등반은 관계없지만 종주 등반이라도 할 때는 낭패 보기 딱 좋다.
2시간여의 산행 끝에 시내로 돌아오니 관광명소라는 산타모니카 중심가의 도로를 막고 농산물 장터를 열고 있다. 그 넓은 땅덩이도 모자라 유전자 변형까지 하는 인간의 끝없는 욕심에 식량 무기화! 섬찟하다. 이 코로나 정국에서 느낀 점! 만약 마스크 부족이 아니고 식량 부족이었다면! 미국의 농업정책이 부럽다 못해 질투까지 난다. 식량무기화! 장하준 교수의 책을 다시 찾아야겠다.
로칼 농산물 노점상
오늘은 저녁 약속이 주! 오전은 자유시간이다. 미국 온 지 며칠 지나니 겁이 없어졌다. 수첩에 적어 놓은 주소 한 장 들고 혼자 시내 구경. 저녁 술안주도 장만할 겸 마트에 들리니 속이 약간 거북하다. 안내에게 “웨어 레스트룸?” 한눈에도 외국인! 손가락 셋을 펴며 “트리 레인... ” 뒷 말은 들을 이유도 능력도 없다. 숫자만 알면 된다. 미국은 자본주의의 종주국이다. 나는 그곳에 달을 디딘 것이며 나는 그들의 고객이다. 내 말을 못 알아들으면 그들만 손해다. 친절에 대한 오해인지는 모르겠지만 영어 울렁증은 조금씩 없어져간다. 푸짐하게 장을 보아 오니 딸아이가 미국 살아도 되겠다며 놀린다.
몇 달 되지 않았지만 딸애가 미국 생활에 적응하는 모습이다. 우리 세대가 보기에 요즘 젊은이들은 정말 신인류다. 아인슈타인의 몇 배나 되는 머리를 손에 들고 다닌다. 엄지손가락 둘이면 해결 못 하는 게 없다. 귀국하면 폰 공부부터 해야겠다. 미국은 초행자들도 길 찾기가 쉽다. 도로명만 알면 된다. 우리나라에서 시도하는 도로명 주소가 미국이 사용하는 것을 본뜬 것이 아닌가 추측. 넓은 땅에다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계획도시의 도로명 주소가 우리의 오래되고 골목길 많은 도시에 적용될지는 미지수지만 어쨌든 나 같은 외국인이 길 잃어버릴 염려는 별로다. 미국의 도로는 바둑판 형태라 번지 찾기가 정말 쉽다.
역시나 식사 도중 서빙하는 친구들이 주위를 맴돌며 한 마디씩 한다. 이젠 그들의 말이 제법 들린다. 거의 같은 말이다. "테이 팅 굿?" "에브리싱 오케이?" 이건 눈치 주는 게 아닌 서비스다. 왜? 친절해서? 고객이 왕이어서? 내 생각은 팁의 힘이 반은 넘어리라 생각한다. 우리글의 위대성에 감탄! 한글이 왜 과학적인 것일까? 우리 것이라서? 아니다. 한글의 발음은 오직 하나다. 영어를 해 보라! A만 해도 발음이 몇이냐? 거기에다 영어의 어떤 발음도 한글은 모두 적을 수 있다. 세종대왕님! 폐하 성은이 망극...! 오늘의 예정.
우리의 카레와는 조금 다른 인도식 카레 식당.
식사 후 LA카운티 드라이브!
산타모니카에서 윌셔가를 따라 센트리 시티, 비버리힐즈, 할리우드, LA 다운타운을 거쳐 고속도로로 코리아타운에서 소주 한 잔 하고 산타모니카 숙소로.
밖으로 나오니 눈만 호사스럽다. 주차할 곳이 없으니, 억지 아이쇼핑. 비버리힐즈가 가까워질수록 점점 화려해진다. 엄격히 말하면 비버리힐즈 앞을 지나는 윌셔가 도로다. 명품과 차들의 서열이 매겨지는 곳. 당연히 비버리힐스에서 가까울수록 고급사양이다. 언덕 위에 있는 고급 주택가는 밑에서 보면 도시 형태가 아니다. 군부대의 막사 같은 느낌이다. 비버리 힐스는 정말 그들의 밤은 낮보다 화려하다. 눈 호강하며 할리우드를 지나치니 LA 다운타운. 고층빌딩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딸의 말. “아빠는 여기가 더 도시 같지?” 나도 비버리힐즈는 안다. 다운타운이 끝나는 지점에 노숙자들이 보인다. 웬 노숙자? 미국의 두 얼굴! 비버리힐즈와 노숙자.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의 말씀이 되새겨진다.
8000만 원에 출시될 예정이라는 별로 욕심은 나지 않는 테슬라 전기차. 나? 원래 차에 별 관심 없다.
한글 간판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름하여 코리아 타운. 슈퍼에 들리니 우리나라보다 더 한국적이다. 번데기 통조림에 건강식이라며 도토리묵까지 있다. 우리나라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는 드라마 힐러가 dvd로 나와 있다. 저녁은 우국(牛國) 식당. 한우는 아니지만 무한 리필이다. 이모! 마늘. 언니 상추! 여긴 한국이다. 미국이 아니다. 한식 중 미국에 가장 많이 알려졌다는 코리아 BBQ. 젓가락을 잡은 외국인의 손이 어색하지 않다. 감탄하니 라스베이거스 구경 후, 코리아 타운에서 며칠 묵는단다.
북창동 순두부 식당이 보인다.참이슬을 곁들여 푸짐한 저녁 식사. 미국의 고속도로는 우리와 다르다. 톨 게이트를 통과하고 휴게소에서 커피 한 잔. 이게 아니다. 하이웨이인 동시에 프리웨이다. 프리란 말속에는 “노 페이” 즉 공짜란 의미도 있단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고속도로를 거쳐온 것이다. 미국의 동부는 다르다. 톨게이트가 있고 휴게소도 있다.
내일은 사위가 휴가를 내서 라스베이거스로 간단다. 말로만 듣던 곳. 내 취향과는 어울리지 않지만 자본주의의 꽃이라는 “라스베이거스!” 설레는 마음으로 노트북을 두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