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여행
과소비라는 거부감과, 최대의 환락가란 호기심으로 중무장한 채 라스베이거스로. LA카운티만 벗어나면 지금까지 본 미국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와우! 란 감탄사가 먼저 나오는 경치. 정말 미국은 크다. 우리는 구절양장이란 말을 쓴다. 이곳은 굽이 하나 없는 곧은길이 끝없이 이어진다.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는 터널, 고층 아파트가 줄지어 서 있는 도시들, 재수 없으면 교통체증까지! 이런 것들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냥 황량한 도로뿐이다. 다들 운전이야 하지만 미국 도로를 운전할 수 있는 사람은 사위 한 사람뿐이다. 미안한 마음에 교대를 이야기하니 일정한 속도로 해 놓았기 때문에 엑셀은 신경 쓰지 않으니 별로 힘들지 않단다. 그리고 아무리 시골길이지만 교통위반은 안 된단다. 적발 시 벌금에 교육까지! 미국인들 준법정신이 강해질 수밖에!
주위에 보이는 게 없으니 속도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가끔씩 추월해 가는 트럭들이 보일 뿐. 답답한 마음에 속도계를 보니 100에 고정되어 있다. 좀 더! 다시 생각해 보니 미국은 마일을 사용한다. 멀리 산과 전신주만 보이니 천천히 달리는 것 같지만 시속 160킬로 미터다. 고층 건물이 휙휙 하면 나는 엄두도 못 내는 속도다. 절에 온 색시 노릇.
몇 시간을 달려 조그마한 마을에 도착. 우리 식으로 하면 휴게소 정도. 간단한 점심. 딸이 주문하는 사이. 주위를 구경하고 있으니 누가 와서 묻는다. “라인...?” 뒷말은 못 알아듣지만 “노” 자리를 비키니 주문하러 간다. 미국인은 준법정신이 투철하다? 그럴 수밖에 없단다. 중국은 50개가 넘는 민족이 모여 산다지만 미국은 160여 민족이 있다. 다민족 국가인 미국이 법까지 무르면 유지하기가 힘들어진다. 식당에서 청소를 할 때엔 반드시 주위가 미끄럽다는 표시를 한다. 그게 없으면 소송이 들어 올 수가 있단다. 식당이 미끄러워 넘어졌다.
비버리힐즈! 그 화려함! 인증숏 한 장 못 남긴 아쉬움이 약간은 엷어진다. 잠시 차만 대고 한 방... 이건 인정에 호소하는 우리 방식. 문화에 우열은 없다. 단지 차이가 있을 뿐. 배가 부르니 주위의 풍경이 보인다. 식당 밖 의자에 앉아 쉬고 있는 사람. 약간은 힘들어하는 듯한 모습이 영화 “터미네이트”의 주인공들이 로봇에 쫓기며 쉬어 가는 미국의 풍경과 같다. 어쩜 이것이 미국의 참모습이 아닐까? 땅값 비싸기로 유명하다는 LA의 부자들과 그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 한 무리들. 세계에서 가장 큰 요트장이 있다는 산타모니카의 모습과 LA 도심에 보이던 텐트들. 지금까지 내가 본 건 미국의 극과 극의 모습이었단 생각.
왔던 길과 꼭 같은 길을 달린다. 어릴 적 본 서부영화에서 말을 탄 인디언들이 나타나던 그 언덕을 보면서. 나무로 된 전봇대와 출입금지를 나타낸다는 줄만 없다면 영화의 한 장면이다. 캘리포니아 주가 끝나는 지점에 망루가 보이고 그것이 주립 교도소란다. 캘리포니아 흉악범 수용소. 그곳을 지나면 네바다주. 도시 하나를 지나 두 번째 마주하는 도시가 바로 환상의 도시! 라스베이거스! 드디어 도착했다. 다른 생각은 않겠다. 근 40년을 절약으로 살아온 내 삶에 대한 보너스라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진다. 하루 종일 운전한 사위와 여행에 지친 몸을 달래려 숙소로. 내일의 기대감은 마음속으로!
아내가 깰세라 조심조심 커피를 내리는데, 몇 시고? 잠자리가 바뀌어 잠이 깊이 들지 않았단다. 라스베이거스 관광은 잠시 아껴두고 오늘은 레드락캐년을 간다. 젊어 한 때 산사나이 흉내를 내었던 나야 땡큐 베리 마치다. 간단한 차림으로 프리로 이용할 수 있다는 호텔 헬스장으로. 그 옆은 수영장. 수영은 준비가 필요하니 간단히 헬스만. 근육 량이 부족하면 면역력이 약화된다는 말에, 근감소증을 앓은 나는 우리나라에서도 시간만 나면 근력 운동 중. 우리나라 체육관과 별 차이가 없다.
힘 좀 쓰고 나니 아내가 내려왔다. 사진 몇 장 찍고 미리 약속되어 있는 호텔 로비로. 우리가 묵는 이 호텔이 트럼프 호텔이다. 카지노가 없고, 호텔 안에 재떨이도 없다. 가격도 다른 호텔보다 저렴. 모두가 망할 거란 예언. 늦게 세운 호텔이 더 고급스럽지 않으면 손님이 오지 않는다는 논리. 트럼프 뚝심으로 개장. 결과는 대 성공. 우리 같은 가족 손님을 예상하지 않은 것이다. 돈 냄새는 귀신같이 맡는다는 딸의 말. 대통령 취임 소식에 부랴부랴 사진을 찾았다. 대통되리란 예상을 전혀 못 해 사진이 없다. 가까스로 찾은 사진이 트럼프 샾이란 가게 간판.
미화 2 달러를 주니 차가 대령된다. 라스베이거스 한식을 맛보자는 의견에 유일의 한식집으로.
이름하여 이조 곰탕! 내 입에는 맞지 않는다. 사위의 말. 하나뿐이어서 그렇단다. 한인 타운에 가면 정말 좋은 집으로 안내하겠다는 약속을 믿고 차로 40여분 걸리는 레드락캐년으로. 이곳 서부 지역은 사막지대다. 어디를 가도 황무지다. 이황 무지에 건설된 라스베이거스가 정말 대단하게 느껴진다. 미국인들은 장소와 시간을 가리지 않고 운동을 한다. 레드락 파크 그 황무지에서도 MTB를 한다. 겨울이지만 햇살은 따갑고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만약 몸에 이상이라도 생기면... 정말 익스트림 스포츠 수준이다. 서양인들은 젊어서는 멋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그래서 운동을 하는 모양이다. 많이 먹고 마시고, 운동하고. 미국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게 은행, 칼리지, 체육관이다. 이곳은 내 체질에 딱 맞다.
사실은 미국에서 가장 가보고 싶었던 곳이 요세미티 국립공원이었다. 겁 없이 산에 미쳐있던 이삼십 대의 꿈이었던 곳. 요세미티! 대신 늙고 시든 육체로 레드락캐년으로 왔다. 그 크고 웅장한 붉은 바위 협곡을 마음껏 원 없이 뛰어놀았다. 정말 이유는 모르겠으나 온 산이 붉은색이다.
생각지도 못 한 일 하나. 승합차 안에 헬멧, 자일이 보인다. 짧은 영어. “아 유 락 크라이머?” “예스!” 엄지손가락 세우며 “굿!” “땡큐!” 물어볼 말이 많은 데 물어볼 수가 없다. 이곳은 산 전체가 한 눈에도 자일을 달 수 없는 소위 퍼석 바위다. 이런 곳에 볼트와 하켄을 박으면 그게 견딜 수 있을까? 영어가 안 되니 의문만 품은 채 다시 라스베이거스로!
라스베이거스는 생각만으로도 가슴을 뛰게 하는 묘한 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