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타운
코리아타운의 아침. 운동 삼아 나선 산책길. 엘리베이터를 타려는데 뒤에서 누가 “잠깐만요.” 역시 여기는 한인촌이다. 번호가 아닌 열쇠로 열어야 하는 문이 약간은 번거롭다. 딸의 폰과 숙소 앞의 윌셔 뱅크 건물만 외우며 숙소를 나섰다. 미국은 길 찾기가 쉽다. 땅이 넓어서 그런지 높은 건물이 길 양편으로만 있어서 건물 하나만 외우면 된다. 물론 내가 가 본 곳만. 나는 지금 미국 서부의 극히 일부분, 그것도 미국의 참모습과는 다른 것들만 보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가 될 수 있다는 점 알고 있다. 단지 조심만 할 뿐!
골목길은 지저분하기 짝이 없다. 조그만 틈에도 일회용 커피잔이 올려져 있으며 바닥에는 담배꽁초가 널려있다. 다른 지역에 비해 많이 낙후되었다는 느낌! 이민 초기나 영어가 서툰 유학 초기에는 한인촌에서 생활하다, 형편이 나아지면 인근의 다른 도시로 생활 터전을 옮긴다는 얘기. 빠른 걸음으로 큰길에 나오니 이슬람 사원처럼 느껴지는 곳이 있어 궁금했으나 테러 때문에 애 먹은 입국 길을 생각하고 그냥 지나쳤다. 나중에 들으니 유태교 사원이란다. 한인촌도 유태인 자본이 많이 들어와 있다는 말! 한글로 된 도서관은 다음에 아내와 함께 오기로 하고 걸음을 재촉한다. 몇 걸음 걷지도 않았는데 어제 우리가 먹은 북창동 순두부집, 조금 더 걸으니 며칠 전에 들린 우국 식당. 한인 타운이 그렇게 크지는 않은 것 같은 느낌이다.
BCD는 북창동, TOFU는 두부인 모양이다. 해물 순두부. 맛이 끝내준다.
우국 (소나라) 맛도 끝내주고 서양인들은 자기 손으로 고기를 굽는 코리아 바비큐에서 이 캠핑 기분을 느낀단다. 아르바이트생에게도 최고의 인기란다. 팁이 장난이 아니란다. 그만큼 장사가 잘 된다는 얘기겠지.
곳곳에 노숙자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런데 한국계는 아니다. 몇 가지만 느낀 채 숙소로 돌아와 폰으로 전화. 열쇠가 하나뿐이라 내가 사용할 수가 없다. 딸애가 들어오지 말고 기다리란다. 오늘 점심은 명동 칼국수. 정말 없는 게 없다. 여기는 한국이다. 이젠 젓가락질하는 백인들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여기서는 우리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서빙을 하고 허드렛일은 다른 민족이 한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멕시칸이란다. 여기서는 히스패닉이란 말 대신 멕시칸이란 단어를 많이 사용하는데 약간은 얕잡아 보는 듯한 어감이 강하다. 아마 불법 이주자가 많은 탓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벽에 한글로 “먹다 남은 김치는 투고할 수 없습니다.” “무료 제공된 사리는 투고할 수 없습니다.” 딸에게 물어보니 "to go" 집에 가져갈 수 없다는 뜻이란다. 여기서도 힘든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다. 나는 명동 칼국수 엔간히 좋아하는데 맛도 양도 흡족 하 다.
점심 후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지인의 사무실 방문. 미국 부동산에 대한 이야기. 아직은 집 살 때가 아니란다. 미국은 전세가 없지만 부동산 경기 예측이 안 되니 그냥 세내고 사는 게 나을 거란다. 이분께 몇 번 들은 이야기 2008년 이전에는 부동산 경기가 그렇게 좋았단다. 생각해보니 2008년은 모기지 사태가 터지던 해다. 내 생각. 한국 사람은 선천적으로 부동산에 대한 감이 있는 모양이다. 그분도 인정. 한인촌이 LA에서도 요지란다. 1시간이면 공항, 다운타운, 비버리힐즈, 할리우드 어디던 갈 수 있다. 흑인 폭동 때 비버리힐즈를 지키기 위해 한인타운이 피해를 입었지만 자라는 세대에 꿈을 줄 수 있다는 의미에서는 참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대중교통이 발달하지 않은 미국 서부 지역이지만 한인촌은 교통 요지다. LA 다운타운과 산타모니카를 잇는 고속버스가 있고, 2019년부터는 지하철까지 연장 운행한다. 지하철은 타보지 않았지만 고속버스는 불친절하기 짝이 없다. 우리나라 고속버스를 생각하면 낭패. 현금을 넣으면 거스름돈은 생각지 말아야 한다. 댓 구 조차 없다. 알아서 코인을 사란 얘기!
저녁은 장충동 족발. 소주 한 잔 앞에 높고 많은 이야기. 누군가 쪽지를 준다. 대리운전. 저녁 술집에 들리면 어김없이 손에 쥐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는 음주 운전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단다. 법이 엄하단 얘기겠지. 에피소드 하나. 대리운전 부탁했다 사고 나니 운전자가 도망. 순경에 음주운전으로 몰려 곤욕을 치른 사람이 있단다. 운전자는 불법체류자, 회사도 미등록. 그러면서 친구분이 폰을 보여준다. 코리아타운에 불법 체류자가 17만이란 기사다. 정확한 숫자는 모르지만 20만 가까이 되지 않겠냐는 말씀. 쪽방 생활하는 사람이 많단다. 그래도 한국인들은 노숙자는 없다니 참 다행이라 해야 할지. 술에 취해 구수한 입담에 취해 밤이 제법 깊었다.
내일은 할리우드 구경
여행은 생활 패턴마저 바꾼다. 저녁형 인간인 내가 아내를 깨운다. 둘이 오붓한 아침 데이트!
어제 족발 덕에 구경 못 한 도서관부터. 도서관 풍경은 어디나 다 비슷하다. 만화 보는 어린애들이랑, 컴퓨터 하는 어린애랑. 도서관 한 귀퉁이에 우리나라 책들이 진열되어 있다. 그 앞에서 젊은 엄마가 아이에게 우리나라 동화책을 읽어주는 모습이 너무나 정겹다. 향수일까? 뿌리 찾기 일까? “할머니께서.... ” 자꾸 돌아보게 된다.
LA 한인타운 근방에서 가볼만한 곳으로는 라크마 박물관과 그리피스 천문대가 있다. 박물관은 가봐야겠지만 미국의 짧은 역사를 생각하면 별로 구미가 당기지 않는다. 특히 라크마 박물관은 문정황후의 어보 반환으로 유명세를 탄 곳이다. 우리나라 유물을 미국에다 돈을 내며 구경한다는 게 정말 찝찝해서 패스. 그리피스 천문대는 차가 없어서 패스. 결국 숙소에서 멀지 않은 CGV마당몰로 직행. 이곳은 백인도 보이지만 그냥 우리나라와 같다. 아내는 설빙이 있다고 난리다. “미국에서 설빙을 먹다니...” 사실 술 좋아하고 군것질하지 않는 나는 설빙이 뭔지도 모른다. 물 대신 우유를 얼려 만드는 팥빙수란다. 아내와 한 그릇 시켜 입만 대고 마당몰 구경. 벽면을 가득 채운 추신수 선수와 류현진 선수의 광고 사진이 이곳이 한인타운임을 실감 나게 해 준다. 2층으로 올라 가는데 이게 웬일 벽에 정말 반가운 얼굴들이 보인다. 고은 시인, 황석영 작가, 이외수 작가, 박경리 작가,... 아내를 불러 한 컷. 그 옆에 알라딘! 중고서점이다. 내부를 보니 소설부터 동화책까지 없는 서적이 없다. 우리나라 사람이 책을 많이 읽는다는 소리는 못 들어 보았는데. 기득권을 버리고 자식 교육을 위해 이민 간다는 말이 실감 난다.
책 진열이 우리나라는 가나다 순이지만 여기는 알파벳 순이다. 김동리는 "ㄱ"에서 찾는 게 아니고 K열에 진열되어 있고, 황석영은" H열"에서 찾아야 한다. 한국계 어린이들이 많다. 우리나라 부모님들의 교육열은 알아줘야 한다. 도서관이 산타모니카에 비해 허름한 것이 마음 아프다. 그러나 이곳은 한국계만 오는 곳이 아니다. 아쉬움을 뒤로 어제 이슬람 사원이라 생각했던 유태교 사원으로. 딸에게 들은 말. “쥬이시” 이슬람 사원이 아니라 쥬이시라 불리는 유태교 사원이란다. 남의 집에 들어가는 것 아니니 절대 들어가지 마라 당부. 한인타운도 건물만 한국계 소유지 실질적인 실력자는 유태계란다. “쥬이시”란 말을 하는 딸의 어감에 두려움마저 느껴지는 것이 단순히 기분 때문만은 아니리라. 그만큼 미국의 실질적 실력자는 유태인들이란다. 같이 뛰어난 머리를 가진 민족. 손꼽히는 우수한 민족. 한국민과 유태인. 차이점은 동업을 할 수 있느냐에 있단다. 약간은 반성하는 마음을 품은 채 콜택시를 불러 할리우드로.
레드카펫 행사가 없는 할리우드는 별구경 거리가 없다. 영화 상영관을 둘러보니, 외국영화 중에는 중국 영화만 상영하는 전용 극장이 있다. 다시 한번 느끼는 중국 자본의 힘. 양 강대국 사이에 낀 한국. 다시 한번 정신 차리자. 관광 센터에 들리니 할리우드 유명 배우의 집을 구경하는 투어가 있단다. 돈 내고 집 구경이라니. 포기하고 거리 구경. 바닥에 배우, 감독, 가수 등 대중 예술가들의 이름을 새겨놓았다. 유명인 이름이 관광 자원이 될 수도 있는 곳. 그곳이 할리우드이다. 거리 구경 중 누군가 손에 무엇인가 쥐어준다. 무심코 받고 보니 CD다. 알고 보니 유명 가수들의 노래를 파는 장사꾼들이다. 자꾸만 사인을 하란다. “암 코리안.” “아이 해브 노 머니.” “프롬 코리아” 내가 아는 영어 다 동원해서 겨우 반품. 어딜 가나 장사꾼은 끈기가 있다.
안성기와 이병헌의 핸드 프린팅을 찾던 중, 영어로 기독교 전도하는 동양인들을 만났다. 이렇게 열성적인 전도를 하는 민족은 우리나라 교인 밖에는 없다는 말을 들었다. " 한국인이세요?" “교회 나오세요.” 역시 우리말이 통한다. 그런데 나는 누가 봐도 관광객인데... 종교의 자유를 찾아온 사람들에게 하는 전도. 약간은 아이러니하다. 겨우 한 귀퉁이에 찍혀 있는 한국 배우들의 흔적을 찾았다. 사위의 퇴근 시간을 기다리며 거리 구경. 신기하게도 아는 배우나 가수의 이름이 있으면 반갑다. 여기에 동화? 낸시 시나트라, 리처드 위드마크 등 아는 이름 찾으며 걷는데 기념품 가게 앞에 엘 베스 프레스리 마네킹이 딱. 아내를 불러 사진 한 판 찍고 나오는데 바닥에 적혀있는 이름. “엘리아 카잔!” 흥분하는 모습을 본 아내가 누구냐? 묻는다. 엘리아 카잔 감독을 아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마찬 가지로 “에덴의 동쪽과 제임스 딘”을 모르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지금은 연락조차 끊긴 고교 시절의 영화광들이 좋아했던 영화. “존 스타인백 원작, 제임스 딘 주연, 엘리아 카잔 감독.” 의 “에덴의 동쪽” 시나리오 작법 책에는 텍스트로 등장하던 “에덴의 동쪽” 추억 돋는다. 도산의 큰 아드님이 할리우드 배우라는 것은 알았지만 스타의 거리에 헌정될 정도의 대 스타인 줄은 미처 몰랐다. 두 번째 미국 여행에서 필립 안의 손을 찾았다. 딸 내외와 랑데부!
할리우드를 떠나 사위 차로 유니버설 시티로 가는 길에 사위에게 자랑했더니, 바로 이길 이란다. 110번 도로 이 길 어디쯤에서 제임스 딘이 사고를 당했단다. 기가 막히다. 요즘 젊은이들은 모르는 것이 없다. 왜? 그들 손에는 인간의 두뇌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것이 들려 있다. 엄지손가락만 사용하면 나오지 않는 게 없다. 폰 사용법 꼭 배워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