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 만난 선생 3) 인간을 향해 무릎꿇은 Y대리

by 나오나무


아침부터 직원들이 다람쥐처럼 분주히 오가는 경우는 행사와 민원, 두 가지일 확률이 높습니다.

이날은 혼잡한 출근 시간을 틈타 사옥에 진입한 민원인이 사장실 앞 복도에 신문지를 깔고 앉았습니다.

민원인의 분노가 얼마나 컸으면 수도권 S시에서 새벽 고속버스를 타고 수백 리 길을 찾아오셨겠는지요?

경험상 이런 민원 사례는 쉽게 종결되지 않습니다.

졸지에 사장님이 사무실에 갇힌 꼴이 되었으니 민원 부서와 총무 부서 직원들은 가시방석에 앉은 듯이 안절부절못합니다.

방법은 가급적 빨리 민원인을 설득하는 것뿐인데, 그렇다고 서비스직원의 인사 조치와 사장님 사과 요구를 덜컥 수용할 수도 없는 난감한 상황입니다. 어쩔 수 없이 관련 부서 직원들이 번갈아 가며 어르고 달래보지만 역부족입니다. 나중에는 현장 경험이 많은 타 부서의 직원들까지 가세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민원인은 요구사항이 관철될 때까지 일주일이고 버티겠다며 오히려 강경해져 갑니다.


팽팽한 대치가 이어지고, 오전 내내 사무실에 갇혀 있던 사장님이 외부로 식사하러 나가실 시간이 되었습니다. 총무과 직원이 민원인에게 다가가서 인간적으로 밥은 먹고 시위하자며 잡아끌어도 요지부동입니다.

그때였습니다.

기획 부서의 Y 대리가 그분 곁으로 다가가 몇 마디 나누는 것 같더니 이내 두 사람은 손을 잡고 식사를 하러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민원인은 검은색 배낭과 바닥에 깐 신문지까지 깨끗이 치우고 자리를 비웠습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입니다. 저도 그때 그 자리에 서성대고 있었지만, 갑자기 상황이 정리된 영문을 모르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여러 날이 지난 후 Y 대리를 만나 그때의 상황을 진지하게 물어보았습니다.

Y 대리는 겸손했습니다.

그는 자기가 한 일은 진짜로 아무것도 없다고 했습니다. 단지, 민원인이 바닥에 신문지를 펴고 앉아계시길래 자신도 무릎을 꿇고 앉아 이렇게 말씀드린 것이 전부라고 했습니다.

"아침부터 시장하실 텐데 식사하러 가셔야지요. 식사 후 제가 차근차근 말씀을 듣고 요구사항을 사장님께 잘 전달해 드릴께요.”


저는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았지요.

“고작 그랬다고 그 옹고집 민원인이 벌떡 일어났을까?”

Y 대리는 잠시 머뭇거리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 생각에는 민원인의 눈높이에 맞추어 바닥에 앉고, 그분의 눈동자를 마주 보면서 인간적으로 말한 것이 운 좋게 통한 것 같습니다.”


순간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저는 그때 현장을 지켜보고 있었으면서도 이 미세한 차이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때 그 자리에 있던 직원의 모습과 민원인의 심정이 기록영화의 한 장면처럼 선명하게 떠올랐습니다.

직원들은 민원인의 고통을 무시하고 그저 민원 상황을 종결하는 것에만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팔짱을 끼거나 뒷짐을 지고 민원인을 위에서 내려다보면서 그의 상식없음을 비난하고 있었지요. 그 무리에 끼어 있는 제 모습도 보였습니다.


그때 민원인이 겪었을 비애감이 확연히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현장 직원의 부조리한 업무처리로 무시당하고 분노해서 왔는데, 성의 있는 경청과 인간적인 대접을 받고 싶었는데, 맞닥뜨린 현실은 절망적이었습니다. 임기응변으로 상황을 벗어나려는 모습, 규정과 절차만 내세우는 조직 이기주의, 특별한 배려를 암시하면서 회유하려는 비열함만이 난무했으니까요.

더욱 민원인을 자극한 것은 따가운 시선이었습니다. 차가운 바닥에 앉아 있는 그가 볼 수 있었던 것은 사람의 얼굴이 아니라 번쩍이는 구두코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위에서 내리찍는 멸시의 시선이 그의 정수리에 못처럼 박힐 때마다 절망했을 겁니다. 그분은 딱딱한 시멘트 위에서 무시와 차별, 조롱을 고통스럽게 견디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초지종을 듣고 저는 두 번째 놀랐습니다.

Y대리의 놀라운 지혜와 경륜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사람 마음을 움직이는데 직급과 경력, 권한은 무용지물이었습니다. 상대를 무시하지 않고 존중하는 마음, 그의 아픔과 처지를 몸으로 공감하는 연민의 마음, 행동으로 표출되는 인간적 신뢰감이 사람을 움직인 것입니다. 얼음장처럼 차갑던 민원인도 Y의 따스한 마음에 녹아 본래의 순한 심성을 되찾고 자리를 털고 일어났을 테지요.


Y 대리도 앞 편지의 위대한 청년처럼 사람을 사람으로 대접하는 인성을 품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사람대접’ 바탕에는 사람을 무시하거나 차별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존재로서 수용하려는 삶의 방식이 있습니다. 힘이나 기술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예의'가 놀라운 기적을 만들었습니다.


돈과 경쟁을 숭배될수록 고객을 소비자로, 민원인을 트러블 메이커로, 직원을 생산수단으로, 자식을 부모 욕망의 투사 대상으로, 가난한 사람을 무능력자로, 청년을 몰지각한 이기주의자로 바라보는 시선이 늘어만 갑니다. 하지만 이런 시각에는 불행하게도 ‘사람’과 그의 ‘삶’이 삭제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아무것도 아니라면 ‘나’ 역시 아무것도 아닙니다.(주)


주) 위 문장은 김용규 작가의 신간 <어제보다 조금 더 깊이 걸었습니다>에서 나오는 문장을 차용한 것입니다. 원문은 이렇습니다. “저 풀이 아무것도 아니라면 그대 역시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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