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이 다가오자 그동안 인연이 있던 직장 동료들의 안부 인사가 잦아졌습니다.
얼굴 보며 밥 한 끼 먹으려고 일부러 멀리서 다녀가는 사람도 있고, 여러 명이 모여서 혹은 혼자서 찾아오거나 전화로 작별 인사를 했습니다.
‘나’를 기억하고 안부를 묻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매우 특별한 일입니다.
그것이 작별 인사라면 더할 나위 없습니다.
헤어질 때는 오로지 진심만이 남게 되니까요.
혹 그 사람이 서너 명에 불과하더라도 제가 지나온 시간이 의미 있었다는 증거로써 충분합니다.
그중에서도 여운이 오래 남는 작별 인사가 있습니다.
며칠 전에는 2년전에 다른 사업소로 나간 C가 휴가를 내어 사무실로 찾아왔습니다.
제가 식물을 좋아하는 것을 잊지 않았는지 그의 손에는 작고 예쁜 화분이 들려 있었습니다.
우리는 깔깔 웃으며 담소를 나누다가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같이 근무했지?”
“음. 3개월이요.”
“뭐. 고작 3개월이라고. 그런데 이렇게 웃고 있어?”
3개월이면 서로 친절을 베풀 틈도 없었을 텐데 우리는 잇몸을 드러내며 웃고, C는 금쪽같은 휴가를 내고 애써 고른 화분을 들고 작별 인사를 나누려 찾아온 것입니다.
또 다른 작별 인사도 받았습니다.
퇴직한 지 2년이 지난 S가 전화를 걸어와서 깜짝 놀랐습니다.
저도 가끔 S의 안부가 궁금했지만, 일부러 인사를 주고받을 정도의 관계는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맡은 일을 야무지게 처리하던 직원이었는데, 오래 기다려왔던 임신에 성공하여 어쩔 수 없이 일을 그만두었습니다.
S는 꼭 만나서 인사하고 싶은데, 둘째 아이 출산일이 임박해서 집 밖을 못 나간다며 미안하다는 말을 여러 번 했습니다.
안부를 묻고 퇴직을 축하하는 그녀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져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전화를 끊은 후 더 기뻤습니다.
통화 중에 S는 남편이 먼저 그녀에게 작별 인사를 권했다고 했습니다.
그녀가 저에 대해 무슨 말을 했기에 남편이 그런 말을 했을까 싶으니 기분이 삼삼해졌습니다.
S도 C처럼 저와 함께 근무한 시간보다 떨어져 있던 시간이 훨씬 길었습니다.
그런데도 진심이 느껴지는 인사를 주고받을 수 있어 매우 행복했습니다.
두 사람이 다녀간 후 자연스레 이들과의 관계를 돌아보았습니다.
‘함께 일한 시간은 한 뼘 남짓으로 짧았는데 이들은 왜 나를 기억하고 찾아온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우리는 밋밋한 관계입니다.
함께 밥을 먹는 것은 고사하고 커피를 같이 마신 기억도 안 나니 말입니다.
짚이는 게 있기는 하지만 그게 정답인지는 자신이 없습니다.
계약직이었던 C에게는 정규직 채용에 도전해도 좋겠다는 말을 두어 번 했을 뿐입니다.
S와도 특별한 추억은 없습니다.
다만 S가 여러 번의 실패를 겪고 임신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듣고서, 저는 편의점에서 파는 값싼 초코렛을 그의 자리에 놓아두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를 복도에서 만났을 때 힘들면 눈치 보지 말고 쉬면서 일해도 괜찮다는 말을 딱 한 번 건넸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무리 탈탈 털어도 생각나는 일이라곤 정말 이것뿐입니다.
내 추측이 맞는다면 C와 S는 아주 작은 친절을 마음 깊숙이 담아둔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2년이 지나서 그 마음을 꺼내 들고 찾아온 것이고요.
저는 스치듯 했던 가벼운 말 한마디를 반짝이는 보석으로 되돌려 받았습니다.
기쁨의 보석, 행복 말이다.
순간 피식 웃음이 나왔습니다.
제 면전에서 회사를 여러 번 구했다며 칭찬하던 사람 중에 작별인사를 건넨 사람은 별로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생각에 이르니 모이를 쫓는 길가의 비둘기처럼 탁월한 성과나 역량만을 쫓았던 저의 모습이 철 지난 허수아비처럼 초라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무심히 던진 작고 보잘것없는 말 한마디에서 비롯된 기쁨은 저의 30년 직장생활을 위로하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기대하지도 못했던 두 명의 진심을 받고 보니, 제가 그런대로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경이로웠습니다.
이런 소박하고 감동적인 진리를 퇴직 때가 되어서야 깨달았으니 저는 늦어도 너무 늦은 셈입니다.
그래도 좋습니다. 이제라도 알았으니 충분합니다.
다만 제 주변의 후배들은 저보다 더 빨리 알아채길 바랍니다.
‘작은 친절만이 삶의 의미로 되돌아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