짠한 샐러리맨에서 영웅이 되기까지
최근에 보기에 짠한 ‘김부장’이 뜨고 있습니다.
아내의 친구들도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를 보면 밖에서 간당간당 애쓰는 남편의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먹먹했다고들 합니다.
제가 참석한 모임에서도 예외없이 김부장이 등장합니다.
대부분은 진짜 리얼하게 잘 묘사했다, 우리 모습도 애처로운 김부장을 닮았다는 반응입니다.
더러 월급쟁이 김부장이 불쌍하고 속상해 4회~5회에서 시청을 멈췄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시청자도 그런데, 실제로 드라마에 나오는 모 통신사 출신들과 권고사직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마음이 아프고, 눌러 놓은 상처가 덧날까 싶어 아예 쳐다보지도 못했겠지요.
저도 중간에 시청을 멈추려고 했습니다.
벌이는 일마다 위태위태한 ‘김부장’이 저를 똑 닮았기 때문입니다.
돌아보면 제 회사 생활도 헛똑똑이 대행진과 다름없습니다.
회사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직원들을 다그치고, 직원을 회사가 처분할 수 있는 ‘가용 자원’으로 여기기도 했습니다.
‘밥값’을 하지 못하는 직원을 경멸하기도 했고요.
그리고 ‘내가 아니면 누가 승진해?’ 하는 오만도 있었고, 어둡잖은 투자로 큰 손실을 보아 아내 가슴을 새까맣게 태우기도 했습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퇴직 5~6년이 남은 시점부터 ‘일과 성과’보다는 ‘사람과 성장’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아마 그즈음이었을 겁니다.
회사는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들을 담아놓은 둥지처럼 소중하게 보이고, 일하면서 즐거움이 새어 나오기도 했습니다.
드라마에 몰입할수록 부지불식간에 그가 수렁에서 빠져나오기를 간절히 응원하고 있는 제 모습을 자주 보았습니다.
드라마의 ‘김부장’은 퇴직을 앞둔 제게 큰 위로가 되어주었고, 동시에 숙제도 안겨 주었습니다.
그가 내준 숙제는 비단 저만의 숙제는 아닐 겁니다.
#1. 월급쟁이의 운명
이 드라마는 중년 직장인들의 자화상을 간명하지만 강렬하게 그려냈을 뿐만 아니라 월급쟁이의 미래 예고편이기도 합니다.
월급쟁이는 주인공이 아닌 노동자입니다.
그런데도 자기가 주인공(주인공이 아니라면 중요인물)이라고 착각하는 직장인이 많습니다.
간혹 회사를 위한다는 사명감에 직원을 힘들게 하는 주인의식 과잉의 직장인도 있습니다.
월급쟁이는 주어진 배역이 바뀌면 뒤로 물러나고, 배역이 사라지면 퇴장해야 하는 등장인물에 불과합니다.
오늘날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이야기”가 폭넓은 공감대를 얻고 있지만, 사실 직장인의 애환과 비극적 운명은 오래전부터 예견된 것이기도 합니다.
대표적으로 1949년에 발표된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에서 주인공 윌리는 드라마의 ‘김부장’보다 더 처참하게 몰락합니다. 윌리는 가족을 위해 헌신했지만 그들과 불화했고, 회사와 고객으로부터 버림받았습니다. 김부장은 우여곡절끝에 변신에 성공했지만, 윌리는 스스로 생을 마감했고요.
윌리도 한때는 화목한 가정이 있었고, 무에서 유를 창조한 실력있는 직장인이었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말아야 합니다.
#2. 진심
김부장이 자의로 포장한 강요된 사표를 내고 집으로 돌아와 아내와 마주하는 장면은 드라마의 명장면 중에서도 압권입니다.
미안하다고 말하는 김부장에게 아내는 이렇게 말합니다.
“미안하기는 뭐가 미안해. 고생했다. 김부장!”
모든 남편이 소중한 아내에게 말하고 싶은 유일한 진심이 ‘미안해’가 아닐런지요.
그 진심을 주고받은 부부의 모습에서 드라마의 해피엔딩을 예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김부장이 잘한 일 중의 하나가 바로 이것입니다.
‘미안해’
어떤 사람들은 생애 마지막 순간에 이 말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그 순간에도 이 말을 할 용기를 꺼내지 못합니다.
죄를 지어 법정에 나온 청소년들은 그들의 부모에게서 ‘미안해’라는 말을 가장 듣고 싶어한다는 어느 판사의 인터뷰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부모가 진심으로 이 한마디를 듣는 순간 아이들은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한다고도 했습니다.
“미안해”는 매직(magic)을 불러오는 주문입니다.
#3. 외눈박이
김부장의 아들 수겸이가 아빠에게 한 말입니다.
“아들이 아빠를 무슨 눈으로 보고 있는지 안 무서우세요?”
아들의 시선조차도 알아채지 못하는, 아니 궁금한 적이 없었던 김부장입니다.
그러니 그가 상사나 부하직원들의 눈초리와 평판인들 제대로 수용했을까 싶습니다.
김부장은 아들의 진로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재수와 인턴을 강요합니다.
그리고 본인이 중식당 예약을 잘못한 것을 착각하고 진상짓을 하고서도 많이 팔아준 단골이라는 이유로 사과를 거부합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아내의 의견까지도 사사건건 부정적인 토를 답니다.
게다가 팀원들의 의견과 고충은 남몰라라 하며 목표와 자기주장만 관철합니다.
김부장에게는 자기 의견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겸양과 배려, 역지사지하는 성숙한 품성이 메말라버렸습니다.
비단 김부장만 그럴까요.
결코 아닙니다.
직급의 높낮이를 떠나 우리는 모두 김부장을 닮았습니다.
김부장이 처음부터 결격 인간이었을 리가 없습니다.
그는 회사에 매몰될수록 자기도 모르게 한쪽 눈을 잃어버린 외눈박이가 된 것이 아닐까요?
따라서 직장인은 일의 역량을 키우려는 노력만큼 인간의 품성을 고양하는 데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자기를 바로 바라보지 못하는 미성숙과 일방적인 관계에서 온전한 것이 나올 리 없기 때문입니다.
#4. 일의 본질
“야! 인마. 넌 이제까지 일을 한 게 아니야. 그저 일한다는 기분만 낸 거지”
백정태 상무가 김부장에게 한 말입니다.
진짜 일을 하는 것과 일하는 흉내를 내는 차이는 무엇일까요?
저는 처음에는 소위 페이퍼 웍(paper work)을 하고, 보고서 마사지하는 것이 일하는 흉내 내기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하지만 드라마를 다 보고 나니 조금은 이해가 되었습니다.
제가 보기에 일의 본질은‘성과-성장’, ‘조직-인간’의 조화에 있습니다.
하지만 김부장은 성과와 조직만 추구하더군요. 그런 면에서는 도부장이나 백상무도 똑같은 부류의 사람입니다.
찬찬히 생각해보니 김부장이 하는 일에는 팀원들과 조직, 그리고 고객의 성장은 뒷전이거나 구색 맞추기에 불과했습니다.
일은 상대방 몫을 더 많이 빼앗아야 내가 이기는 게임이 아닙니다.
일의 본질은 회사와 직원, 고객이 모두 성장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직장은 자아실현의 현장이라는 명제가 성립할 수 있게 됩니다.
물론 조직의 이익을 위해 경쟁하는 직장인들이 ‘일의 본질’을 실천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일의 본질까지 잊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일의 본질에 대한 고민마저 없으면 우리는 일하는 기계나 상대에게 해를 끼치는 괴물로 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