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은 언제나 고칠 수 있는 것

영화 <썸머 필름을 타고!>(2022)

by 박성진

청춘의 사전적 의미는 새싹이 푸르게 자라나는 봄철이라는 뜻이다. 한자를 그대로 풀이하면 푸른 봄이라는 뜻인데 푸르게 펼쳐진 봄날의 하늘 아래 피어있는 꽃들을 보고 있노라면 너무 잘 어울리는 단어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마치 이 영화처럼.


나는 꽤 어렸을 적 부터 일본 미디어를 접했는데, 그때부터 일본의 청춘 스토리는 언제나 가슴에 뜨거운 불을 지피곤 했다. 그들과 같은 나이대에는 그런 모습을 동경했지만 나이가 들수록 청춘을 외치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여러가지 감정이 몰려왔다. 그리움, 부러움, 아름다움 그리고 뜨거움.

이 영화는 더욱 더 그런 감정이 몰아쳤다. 특히나 현재 직업과 가장 맟닿아 있는 캐릭터 설정 덕분인지, 내 어릴 적 추억이 생각나서 영화가 끝나고 난 뒤 예전 내 작품들을 찾아볼 정도로 깊이 빠져들었다.


최강의 오합지졸.



스토리의 중심축인 '맨발'을 제외하면 그 누구도 영화와는 연을 가지지 않은 친구들이다. 그 맨발조차도 마이너한 취향으로 인해 영화 동아리에서도 예산 편성 대결에서 밀릴 정도다. 하지만 이들 모두 맨발의 열정적인 섭외와 더불어 청춘이 가장 떨려하는 감정인 '재미'와 '성취감'을 기대하며 맨발의 꿈에 합류하게 된다. 정말 청춘 그 자체 아닌가.

나도 대학시절 이렇게 무작정 목표를 향해 달린 적이 있었다. 당시 난 군대를 전역한 후 곧바로 대학에 복학을 했었는데 마침 그 시기에 교내에서 유행하던 웹드라마라는 플랫폼에 심취한 때가 있었다. 요즘에야 웹드라마의 퀄리티들이 어지간한 지상파 드라마를 뺨칠 정도로 수려하게 제작되지만, 그 당시에는 상당히 열악하게 제작되었다. 그래서 나도 '이정도면 만들어 볼만 하겠는데?'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제 막 사회로 복귀한 예비군의 창작혼은 목표라는 땔깜을 만나 활활 불타기 시작했다. 맨발처럼 웹드라마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친구들이라면 한 명도 빠지지 않고 팀원으로 함께할 것을 제안했다. 다행히도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진 친구들이 많아서 팀은 무리 없이 제작이 되었고 결국 아주 작고 약소하지만 영화제에 영화를 올리기도 했다. 물론 여기까지 오는데 많은 시련도 있었고 손실도 있었지만 그때의 추억만큼은 내가 죽을때까지 갖고 갈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그때로 다시 시간을 돌리더라도 그 선택만큼은 바꾸지 않을 거라고 다짐할 정도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한 선택 중 가장 잘한 선택이다. 무엇보다 그때 그 경험 덕분에 지금까지 내가 먹고살고 있으니 이정도면 말 다했다고 본다.

그래서 이들의 고생에 더욱 더 크게 공감이 됐다. 다 내가 했던 고생들을 하고 있으니까. 그때의 추억도 떠올랐고 캐릭터들의 풋풋함에 녹아들어 너무 기분 좋게 감상했다.



블루 하와이, 맨발, 킥보드. 서로를 부르는 애칭도 청춘이었다.



이 작품에 빠져들게 된 건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작품 내에선 미래에 영화가 사라진다는 설정이 존재한다. 모두들 짧고 빠르게 결말이 나는 '스낵컬쳐'를 위주로 소비하다보니 영화라는 컨텐츠는 아무도 찾지 않게 되었고, 과거에만 존재하던 유물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현재 미디어 시장의 트렌드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유튜브가 대중적인 플랫폼이 되면서 영화나 드라마를 빠르게 소비하고 싶은 소비자들이 약 10분 가량의 '몰아보기' 컨텐츠를 소비하기 시작했다. 그 후 릴스 및 숏츠가 유행을 타기 시작하면서 그 몰아보기 마저 하이라이트 1분 요약 컨텐츠가 되어 소비되고 있다. 일부 소비자들은 영화 및 드라마를 본 후 그 컨텐츠를 추가적으로 소비하기 위해 보기도 하지만 또 다른 쪽에선 1분 내의 영상들만 시청하여 중요한 장면들만 감상하는 경우도 우후죽순 늘어나고 있다. 영화 소비에 소극적이 되었고(이건 물론 OTT서비스라는 다른 요인도 존재한다.), 드라마 시청률 또한 과거에 비해 눈에 띄게 떨어졌으며, 길고 지루한 책은 당연히도 외면 받기 십상이 되었다. 창작자로써 길이 많이 열린 건 좋은 일이지만, 내가 사랑했던 것들에 대한 관심이 줄어드는 현상이 아쉬운 것도 사실이다.

이런 사실을 안 맨발의 방황도 충분히 이해가 갔다.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영화가 사라지다니, 그 시기에 몰아치는 감정을 통제하지 못할 만도 했다.


청춘이란.


하지만 그만큼 회복하는 속도로 빠르다. 결국 맨발은 영화를 사랑하기 때문에 끝까지 만들기로 결정한다. 아직 다가오지 않을 미래는 불안하지만, 자신이 사랑하는 영화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영화를 좋아해주는 '린타로'를 위해.

그러나 청춘은 시련의 연속이라고 누가 그랬던가, 맨발은 또 하나의 고민에 빠지게 되는데 바로 영화의 결말이다. 이는 대부분의 창작자들이 항상 겪는 고민이다. 작품의 마무리인만큼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파트가 바로 결말인데 맨발은 이 영화에 결말에 대해 마지막까지 고민했다. 그녀에게 결말은 곧 헤어지게 될 린타로에게 보낼 메세지이기 때문이다. 운명처럼 만나 자신의 꿈을 이루어주었던 린타로에게 운명처럼 사랑에 빠진 그녀는 그에게 완벽한 결말로 안녕을 얘기하려했지만 그녀는 결국 영화의 결말을 시사회 당일, 즉 린타로와 이별하기 바로 전 날 고쳐썼다. 그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하지 않으려했던 그녀지만 자신을 위해 용기내준 린타로에게 보답하기 위해 그녀도 용기를 냈다. 그녀의 방식으로.

마지막 장면은 꽤나 호불호가 갈리는 장면이다. 이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마지막 전투 장면은 참지 못할 정도라고 한다.

하지만 난 청춘이기에 그 장면이 최고의 피날레라고 생각한다. 청춘은 언제나 멋을 내고 싶고, 언제나 고쳐쓰고싶기 마련이다. 현실은 녹록치 않지만 그래도 여기에서만큼은 그들의 어리광이 통했으면, 그를 통해 대리만족을 하고 싶은 마음이 영화의 결말에 녹아있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청춘이기에 할 수 있었던 고쳐 쓴 결말로 완벽한 작별 인사를 한 그들의 뒷모습은 영화 크레딧이 올라갈때도 내 눈에 선명하게 그려져있었다.


그 시절이 그리운 사람들이라면 이 영화를 꼭 보길 바란다. 비슷한 경험이 있다면 추억여행을 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그들의 사랑스러움을 보다보면 그것만으로도 만족을 할 수 있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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