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다음 주에 제주도 가.”
영등포 닭갈비 집에서 치즈사리를 듬뿍 얹은 닭갈비를 야무지게 먹다가 대뜸 제주행을 밝히자 친구가 적잖이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1년 6개월간 다니던 회사를 갑작스럽게 그만두고 퇴사와 동시에 유럽 여행을 준비해 2달 만에 출국, 한 달 동안 스페인과 파리, 이탈리아를 돌고 이제 막 돌아온 참이었으니까.
8년 동안 묵묵히 회사를 다니면서 틈틈이 자기개발을 하거나 취미 생활을 즐겨온 친구의 입장에서는 나의 행보가 비상식적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더군다나 잠시 다녀오는 여행이 아니라 게스트하우스에서 스탭 생활을 하며 몇 달간 머무른다고 하니 얼마나 어이가 없었을까.
유럽 여행을 하는 동안 나는 에어비앤비, 비앤비(Bed & Breakfast), 한인민박 등 여러 숙소에 머물렀다. 숙박료를 절감하려면 호스텔이 가장 적당했지만 낯선 외국과 베드버그에 대한 공포 때문에 호스텔은 하나도 잡지 않았다. 에어비앤비와 비앤비는 시설이 좋았지만 가격이 저렴한 곳을 찾기 쉽지 않았다. 결국 자주 묵게 된 곳은 한인민박이었는데, 그곳에서 진짜 ‘여행자 숙소’의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나이도, 직업도, 가치관도 다른 사람들이 타국에서 만나 같은 밤을 보낸다는 건 정말 특별한 경험이다. 공시를 합격하고 출근을 앞둔 사람, 다니던 회사를 박력 있게 때려친 사람, 교환 학생으로 유학 중인 사람, 박람회에 참가하러 온 사람, 수입할 패션 아이템을 찾아온 사람 등 출국한 이유는 각양각색이지만 다들 비슷한 감정으로 한 자리에 둘러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오히려 처음 보는 사람이라서, 아니면 다시 안 볼 사람들이라서 그런 걸까? 여행 정보를 교환하는 것은 물론 여행을 떠나오게 된 계기, 지금 가장 큰 고민, 앞으로의 계획, 은근한 자기 자랑, 추천하고 싶은 영화나 노래, 지나간 사랑 이야기까지. 정말 별의별 이야기를 다 한다.
여행 막바지에는 이렇게 타지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색다른 이야기를 듣는 매력에 푹 빠져있었던 터라 하마터면 비행기표를 취소하고 그곳의 한인민박에 눌러앉을 뻔했다.
수십 번의 고민 끝에 결국 한국으로 돌아왔지만(나도 아직 그만큼 즉흥적이진 못한 거다) 여전히 미련이 남아 유럽 한인민박들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때, 잊고 살았던 제주 게스트하우스가 레이더에 걸렸다.
사실 나는 예전부터 게스트하우스 스탭들에 대해 알고 있었다. 제주도에서의 낭만적인 한 달 살이를 꿈꾸며 이런저런 것들을 검색해보다가 우연히 얻어걸린 정보였다. 그때도 ‘괜찮겠는데? 지원해볼까?’하고 생각했었는데 예기치 않게 취업이 되는 바람에 완전히 잊어버리고 말았었다.
다시 유럽으로 출국하기엔 부담스러운 항공료, 외국 생활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언제나 나의 로망이었던 제주 살이. 이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얽혀 나는 제주도 게스트하우스를 첫 행선지로 잡았다.
스탭 자리를 얻는 게 어려울 줄 알았는데 대학생들의 개강으로 일손이 부족해진 상황이라 생각보다 수월하게 일자리가 구해졌고, 제주행이 결정된지 일주일 만에 짐을 꾸려 비행기를 탔다.
그때만 해도 나의 계획은 제주도 게스트하우스에서 경험을 쌓아 유럽 한인민박으로 떠나는 것이었다. 물론 인생은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흘러가주지 않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