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를 보고 놀라는 때가 온다.

by 깡통로봇

제 그림자를 보고 놀라는

언젠가가 있다.


소리도 없이 붙어서

터무니없이 커진,

떼어 낼 수 없는 흉터 없는 몸에

눈망울이 흔들렸다.


정착의 욕망을 가진 자들을 접해보지 못한 사막은

제 몸에 흔적을 간직하지 않음으로

제 영혼을 지켜냈는지 모른다.


낙타를 타고 지나간 사람들의 발길이 어디에서 멈춰졌는지는 몰라도

의미를 기억하지 않음으로써

시간은 귀에 걸려 달랑거리는 작은 반짝임이 되었다.


구분되지 않는 날들은 매번 다른 그림자로 왔다.

비워지지 않는 옷장이 작아질수록 배가 고팠다.

웃고 떠들어서 볼 근육까지 얼얼해지는 시간을 보내고 돌아와서도

라면 하나는 끓여 허기를 속였다.


지나간 인연들이

뒤에 남겨둔 물결 같은 주름들은

어제 해와 함께

길게 몸을 늘였다가는 사라졌다.


그래서

발자국을 지워낸 오래된 사막의 바람이

재빠르게 새 파동을 그려내면,

길을 걷는 손들이 새삼스레 고개를 주억거리며

바쁜 손길로 사진을 남겨

새겨질 뻔한 슬픔을 잡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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