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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 새길에서는 새로운 풍경이 보인다–올레8, 9코스

예래생태공원, 논짓물, 마녀의 언덕, 박수기정, 군산봉, 산방산

by 깡통로봇 Jul 23. 2022

2022년 4월 8일 올레 8코스 중간, 9코스 (중문 – 사계해안)   


   

어젯밤은 걸었던 기억을 메모로 좀 정리하고 책을 읽다 모처럼 일찍 잠이 들었다. 덕분에 개운하게 하루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같은 방을 사용했던 젊은이들도 서핑을 예약해 놓아서 일찍 나가야 한다고 해서 같이 출발하게 되었다. 


오늘은 8코스 남은 길 10km 정도와 9코스 11.8km를 걷고 나서 4km 정도를 더 걸어 산방산 아래 사계리까지 갈 예정이다.  

  



중문의 익숙한 길을 벗어나 예래 생태공원이라 적혀있는 공원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이런데 왜 공원이 있을까?’ 하는 의문으로 시작하여 ‘와 여기 뭐지?’ 하는 반응으로 바뀌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대왕수천을 따라 조성된 공원인데, 천변 공간이 넓어 시원한 맛이 있는 데다 오밀조밀하게 다양한 식생을 구성을 잘해 놓아 볼 것이 풍성하고, 가뭄이 이어지는 데도 물이 풍부한 수량을 보이며 흘러가고 있다. 길을 지나오며 본 벚꽃길 중에서도 가장 예쁘다는 느낌을 줄 정도로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어 걷는 발걸음이 가볍다. 갖추어 입고 와서 예쁜 사진으로 추억을 담아내려는 연인들이 간혹 눈에 들어온다. 화사한 꽃잎들과 젊음의 싱그러움이 만나 더 빛나는 풍경이 만들어진다는 생각에 보는 마음이 다 흐뭇하다.


예전 주상절리 아래를 지나며 멋진 풍광을 자랑하던 길이 붕괴 위험으로 코스가 변경되었다고 하여 아쉬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새로 걷게 된 코스에서는 다른 느낌의 만족감을 충분히 느끼고 간다.   


   

예래 생태공원길을 벗어나면서 바로 논짓물과 만나게 된다. 

논짓물은 용천수가 바다에 너무 가까이에서 솟아나 물을 식용이나 농업용수로 사용하지 못하고 버릴(놀다) 수밖에 없어서 붙은 이름이라고 하는데, 지금은 보를 쌓아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에서 해수욕을 즐길 수 있는 장소가 되었다. 아직은 물놀이를 하는 철이 아니라 한산하지만 피서철이 되면 많은 사람들로 붐빌 듯하다. 보 안쪽의 잔잔한 민물과 바깥쪽의 물결치는 바다의 대비가 나타나게 사진을 남기고 싶다는 감성을 자극한다.      


해안도로 옆에 ‘마녀의 언덕’이라는 카페가 있는 언덕을 지나가는데 앞 뒤로 펼쳐지는 경치가 환상적이다. 영화 마녀를 촬영한 곳이라고 표지판이 커다랗게 서 있다. 아마 마지막에 주인공이 박사를 찾아갔던 장소인 듯하다. 

이곳 전망이 참 멋지긴 하지만 여태까지 걸으면서 이런 조망을 보여준 곳도 꽤 많았을 듯한 데 유독 이 장소를 기억하게 되니, 이름이 주는 강력한 맛 때문일 것이다.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김춘수의 “꽃” 중에서) 


    

제주말로 ‘난드르’(넓은 들판을 의미)라고 하는 대평은 마을이 참 예쁘다고 하는데 항상 스쳐 지나가게만 되어 아쉬움이 남는다. 대평을 지나가며 해녀들이 물질하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볼 수가 있었는데, 해녀들이 잠수하다가 나오며 숨을 쉬는 숨비소리도 들을 수가 있었다. 햇살 반짝이는 바다에서 물질을 하는 해녀들 너머로 물고기가 튀어 오르는 것을 보며 혹시 돌고래는 아닌가 하는 과한 생각에 자세히 보나 그냥 물고기의 도약인 걸로~      




9코스가 시작되는 지점에서 잠시 쉬면서 목을 축이고 있는데, 부부 올레꾼이 개를 데리고 역으로 올레길을 걸어오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그런데 대평을 지나 산길로 접어든 지 얼마 안 되어 외국인 내외가 그리 크지는 않은 리트리버를 데리고 앞으로 지나가서 연속으로 강한 인상을 받는다.      




예전 올레길은 박수기정 윗길을 지나서 갔었는데 사유지인 관계로 이제는 다른 길로 우회를 하게 된다. 박수기정 윗길의 멋진 풍경을 보며 걷지 못하는 아쉬움을 가지고 산길을 걸어가는데 한밭 소낭 길이라 이름 붙은 길은 참으로 소박하고 여유로운 풍경을 보여준다. 향기로운 풀꽃 꽃향기를 덤으로 주면서 무뚝뚝한 듯 툭툭 던져지는 밭들과 그 사이의 유채꽃들, 그리고 사이사이 넓게 펼쳐지는 전망들, 아쉬웠던 감정을 간직할 겨를이 없다. 

앞서가던 친구들로 보이는 세 명의 올레꾼들이 좋은 풍경이 나오면 서로 멋진 자세를 조언해가며 해맑게 웃어가며 사진을 찍으며 가는데, 보며 가는 사람 기분도 다 유쾌해진다.   


  

햇살이 강하고 날이 더워져서 군산봉을 오르는 길은 힘이 조금 들었다. 사실 코스를 지도로 확인하지 않고 걷고 있어서 대평에 도착하기 전부터 오른쪽 보이는 봉우리를 보면서 저 오름을 거쳐 갈 것 같다고 생각했었는데, 길이 대평을 지나 월라봉 아래쪽을 지날 때는 이미 한참을 지나온 느낌이어서 군산봉 쪽으로 가게 될 때는 힘들게 걸어간 길을 거꾸로 간다는 기분 때문에 힘이 든다고 느낀 것 같다. 더군다나 마지막 오르막까지 산길로 숨차게 올라왔는데 차로로 차가 올라오는 것을 보며 살짝 맥이 풀리기도 했다. 그렇게 오른 군산봉은 사방으로 막힘이 없어, 가까이는 아래 대평 마을과 들판이 넓게 펼쳐진 모습과 바다, 산방산과 그 너머 송악산까지를 한눈에 잡아 오고, 반대쪽으로는 한라산을 바로 손 앞에까지 당겨왔다. 산등성이에 키 작은 나무들과 연초록 풀만 펼쳐있고, 투명한 파란 하늘에 봄 햇살이 쨍하고 내리쬐니, 일상에서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풍경이라 사람들은 이 풍경을 배경으로 인증샷을 남기고 감탄하느라 정신들이 없다.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가진 곳에도 일제의 전쟁 준비를 보여주는 진지 동굴이 남아 있어 아픈 역사의 기억을 되살려 준다.     



산등성에서 잠시 쉬고 있을 때 서로 교차하며 만난 광주에서 왔다는 올레꾼과 날씨와 올레길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물집이 잡혀 고생을 한다는 말을 듣고 물집 방지용 테이프를 사용해 보라는 것과 물집을 해결하는 방법을 알려주니 크게 도움을 받았다며 고마움을 전하는데, 길을 걸으면서는 이렇게 별 것도 아닌 것들로도 고마운 마음을 갖게 된다.     

       


지금이 고사리가 나기 시작하는 계절인지 고사리를 채집하는 사람들을 걸어오는 동안 곳곳에서 볼 수가 있었다. 4월부터 특히 비 온 뒤에 고사리가 우후죽순처럼 올라와서 채취하기 좋다고 한다. 제주에 사는 지인이 해마다 고사리를 말려서 보내 주는데, 맛과 식감이 아주 좋다.   


    

안덕 계곡은 따로라도 가보려고 생각을 했던 곳인데, 기대했던 것보다 특징적인 느낌을 받지는 못 했다. 부분 부분 웅장한 모습과 원시적 계곡의 분위기를 보여 주는 데, 데크길을 걸어가면서는 계곡의 참모습을 잘 보지 못하고 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안덕 계곡을 흐르는 창고천을 따라 걷다 천이 거의 끝나는 지점에서 뜨거운 햇볕을 잠시 피하려고 나무 그늘에 앉아 물을 마시며 잠시 쉬면서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과 말을 주고받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있어 서로를 반갑게 확인한다. 4코스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해안도로를 따라 걸어가는 여행자였는데, 나이대가 비슷하여 식사하면서 술도 한잔 나누며 이야기를  재밌게 잘 나누었는데, 햇살이 워낙 강해 모두 모자를 눌러쓰고 선글라스에 얼굴 가리개를 하고 있으니 아는 사람도 꼼짝없이 몰라보고 지나칠 지경이다.    


  

화순 금모래사장을 거쳐 황우치 해안을 넘어 산방연대로 가는 길은 예전에 나무 숲과 덩굴이 있는 숲길과 거친 느낌을 받으면서 걸어가는 길이 좋은 기억으로 있었는데 산방산 아래로 도로가 새로 생기면서 기억했던 느낌이 많이 사라졌다. 그래도 길을 걸으면서 바라보는 산방산의 위용이 대단히 매력적인데,  특히 산방연대(연대는 횃불이나 연기를 이용해 소식을 전하는 시설인데 산 정상에 설치하는 봉수대와 달리 해안이나 구릉에 설치했다고 한다.)에서 보면 그 위용을 참 가까이에서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제주에는 연대가 참 많이 있지만 이처럼 멋진 조망을 보여주는 곳도 없다. 연대 아래로 내려와 앉아서 멀리 박수기정부터 반대쪽 송악산까지의 바다 해안 풍경과 바로 아래의 용머리 해안 언덕, 하멜상선 등 한눈에 거침없이 들어오는 인근 일대를 눈에 담아 둔다.


용머리 해안 입구 쪽 조성해 놓은 유채꽃밭에는 샛노란 유채꽃들이 화창한 햇살을 받으며 환하게 빛나고 있어 관광객들을 멋진 사진을 남기기에 바쁘게 만들고 있다.     


용머리 해안을 지나 예약해 놓은 게스트하우스(사계여행)에 도착했다. 이 숙소는 이용하면서 관리가 정말 지나칠 정도로 깔끔하게 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올레길을 걸으면서 이용한 숙소 중에서 시설 관리 면에서 최고로 꼽게 되었다.    


  



아들 생일날인데 같이 있으면서 축하해 주질 못해 미안한 마음이어서, 전화로라도 생일을 축하하며 케이크를 끄는 걸 가족들과 함께 한다. 아들 생일 축하해!  건강하고 멋진 청년으로 성장해 주어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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