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 해변, 송악산, 섯알오름, 고등어회
아침으로 제공되는 간단한 식사를 하면서 주인 분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환경 보전과 개발의 조화, 지하수를 지나치게 뽑아내는 생수 사업에 대한 걱정, 골프장과 도로나 집 앞 포장으로 인해 물이 땅으로 흡수되지 않아 나타나는 문제 등을 공감도 하고 모르는 것을 알게도 되면서 제주 도민들의 일반적인 애환과 바람 같은 것을 살짝 느끼게 된다.
오늘은 올레 10코스 12km(10-1로 정리)와 11코스 17km(10-2로 정리)를 걸을 예정인데, 11코스는 초입에 숙소를 잡아 배낭을 내려놓고 짐 없이 가볍게 걸을 계획이다.
사계 해변은 해안사구가 길고 넓게 펼쳐져서 산책을 하는 느낌으로 편하게 눈 맛이 시원한 시야가 툭 트인 길을 걸을 수 있다. 이어진 발자국 화석이 발견된 곳은 바닷가 접근을 철책으로 막아 도로 옆에 있는 풀밭 길을 걸어가게 되는데, 드론이 날면서 촬영을 하고 있다. 하늘 높이 올랐다가 바다 쪽으로 깊이 들어갔다가 다시 머리 위로 돌아온다. 길가에 서 있는 오토바이에서 조종을 하고 있는데 드론을 다루는 솜씨가 범상치 않다. 그런데 걷다 보니 잠시 후에 오토바이가 빠르지 않은 속도로 지나가는데, 드론이 살짝 떠서 오토바이를 뒤에 붙듯이 따라간다. 운전을 하면서 조종이 이루어지는 모양인데 신기해서 계속 보다 시야 밖으로 벗어나게 되니 조금 아쉽다. 그리고 조금 더 가다 보니 드론이 걷는 길 위에 떠서 걸어가는 사람들을 촬영을 한다. 신기하고 반가운 마음에 손을 들어 흔들어 인사를 하니 드론도 살짝 몸을 움직여준다.
송악산 가는 길로 들어서 마라도로 들어가는 배 선착장을 지나 산 아래 진지동굴을 보게 되는데, 위험하다고 들어가는 것은 통제가 되었다. 신혼여행 때 운전기사 아저씨가 여기서 꼭 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데리고 와서 사진을 찍다가 선글라스를 놓고 가서 분실한 기억이 있는 장소라서, 여기를 기억하느냐며 사진을 찍어 가족 톡에 올리니, 참 별걸 다 기억하고 있다는 칭찬이지 알 수 없는 답장이 온다.
송악산을 올라가는 길은 의도하지 않아도 지나온 길들을 다시 보게 만든다.
산방산과 박수기정 군산봉 한라산까지 겹쳐지면서 하나의 그림을 만든다. 한참 보다가 ‘아! 저 멀리부터 걸어왔구나’, ‘많이 걸었네’하고 느닷없이 자신을 칭찬해 준다. 각각의 길을 걸었던 기억들이 빛보다도 빨리 스쳐서 지나갔다.
아저씨가 말을 씻겨 주고 있는 한가로운 목초지와 반짝이는 물살을 뚫고 나아가는 배를 가진 검푸른 바다 사이 절벽 위의 길을 따라 전망대로 가니, 파도에 부딪히며 깎이고 무너지면서도 강건하게 서 있는 웅장한 주상절리 절벽과 멀리 마라도와 가파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데크길을 오르내리며 다음 전망대에 오르니 물에 얕게 떠있는 듯한 가파도에 넓게 펼쳐진 보리밭이 보인다. 가파도 청보리가 장관을 만드는 요즘, 바람과 어울린 청보리의 푸른 물결을 보고 싶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있었는데 송악산을 내려와서 걷다 보니 이곳 밭에도 곳곳에 청보리가 많이 심어져 있어 바람에 날리는 청보리의 물결을 감상하며 대리 만족을 취한다.
송악산을 내려가서 걷는 길은 본격적으로 다크투어로 이어진다. 일제의 침략 전쟁을 위해 만들었던 군사시설들과 4.3의 학살 장소들이 연이어 나타나 숙연한 마음을 가지고 지나게 된다.
섯알오름은 서쪽의 알오름이란 의미라고 하는데 오름이라고 느끼기 힘든 작은 언덕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국전쟁 발발 직후 예비검속자들의 집단 학살이 이루어졌다. 시신 수습 요청도 묵살되다 6년 만에야 공동 장지에 안장할 수 있었다 한다. 지금은 명예회복진혼비와 희생자추모비가 세워져 있어, 그 앞에서 잠시 묵상을 하며 희생자들을 추모한다.
이어 섯알오름 고사포 진지, 비행기 격납고, 알뜨르 비행장 등 일본군의 지역 군사요새화 흔적들이 생생하게 남아있다.
하모 해안은 방파제 건설과 해안사구 개발로 인해 모래유실이 심각해져서 해수욕장 기능을 잃어버린 곳인데, 해안사구의 개발이 많이 이루어지면서 이런 현상이 곳곳에서 많이 일어나고 있다. 이곳에서는 여름에 해수욕과는 달리 바닷속을 걸어 다니며 열대어와 산호초를 볼 수 있는 ‘씨워킹’이라는 이색 해양 스포츠를 경험할 수 있다고 한다.
모슬포항에 도착하여 예약해 놓은 게스트 하우스에 짐을 풀고 점심을 먹으러 나간다.
좋아하는 고등어 회를 먹을 요량으로 게스트하우스 주인이 소개해준 항구 옆의 유명 고등어 횟집을 찾아 가는데 벌써 대기줄이 길다. 아직 빈자리가 있는 옆집으로 가서, 혼자 먹으니 양을 적게 주문할 수 있는 가를 물어보나 관광객들이 많은 음식점들이 그렇게 할 리가 없다.
고등어회는 육지에서는 먹어보기 힘든 음식인데, 식감이 좋고 맛이 고소해 처음 먹어본 이후에는 즐겨 찾는 음식이 되었다.
혼자 먹기에는 많은 양의 고등어회 작은 것을 시켜서 그동안 먹지 못했던 한(?)을 풀어가면서 다 먹고 나니 포만감이 크다.
배를 꺼뜨리기 위해 고기잡이 배들이 쭉 대어져 있는 모슬포 항을 천천히 산책하며 구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