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천아홉굿의자마을, 용수저수지, 저지오름
13코스로 들어설 때쯤 해서는 점심을 먹어야 할 시간을 조금 지나고 있었다. 근데 도통 식당이 있을 것 같은 분위기의 길이 아니다. 마침, 집 마당에서 커피를 드시며 말씀을 나누고 계신 어르신 부부를 보고 근처 식당에 대해 물으니, 아주 자세히 한 식당을 소개해 주시다가, 잘 못 찾아갈 것 같아 보이시는지 한참을 앞서 가시면서 길을 설명해 주신다. 친절한 마음에 감사드리며 인심 좋은 마을을 흐뭇하게 지나 소개해 주신 지서개 식당이란 곳을 찾아가 점심밥을 먹는다. 이름이 특이하다 싶어 물어보니 마을 이름이란다. 할아버님의 소개를 배신하지 않는 음식 맛을 보여준다. 배가 부르니 다시 힘이 나고 주변이 아름다워 보인다. 역시 행복의 기본은 배부르고 등 따신 것.
길가에 여러 모종이 판에 담겨 죽 늘어져 있는데 곱고 예뻐서 화분에 꽃이 담겨 있는 것 같다. 저것들이 농부들의 삶을 유지해주고 우리의 먹거리를 책임지니 꽃보다 소중하겠다.
끝없는 넓은 밭들이 이어진 들판 도로를 따라가다 보니, 돌담으로 쌓인 기념비와 특색 있는 구조를 가진 작은 교회 건물이 길 양옆으로 위치해 있어 이채로운 느낌을 준다.
돌 구조물은 가문의 효열(孝烈)을 기리는 정문(旌門)과 비(碑)이고, 길 건너편 건물은 순례자의 교회이다.
좁은 문을 통해 들어가면 만나는 순례자의 교회는 작고 아담한 규모에 인상에 남을 건물 디자인을 하고 있는데, 목회자 없는, 관광객 등 순례자들이 잠시 명상을 하며 이용할 수 있는 장소라 한다. 종교가 오히려 배려의 마음이 부족하고, 기복 신앙을 중심으로 성장한다고 생각해, 우리나라 종교의 모습에 별로 좋은 인식을 가지고 있지 않은 터이지만, 작은 교회의, 길 위에서 묻는다는 성찰의 자세에서 작은 울림을 받고 간다.
용수 저수지는 의외의 잔잔한 감동을 주는데, 크기나 아름다움 이런 것보다는 한적한 분위기에서 오는 여유로움 때문이다. 잠시 의자에 앉아 물 위로 한가로이 흰 두루미가 날고 있는 모습을 보며 선경이 따로 없다는 느낌을 받는다. 흰 두루미가 날아가고 나니 물속에 청둥오리일 것 같은 물새 한 마리가 자맥질을 하면서 유유히 헤엄을 치며 가는 모습이 보인다. 조금 전 흰 두루미 날며 갈 때 보지 못했던 장면이다. ‘멋진 모습 하나에 가려진, 많은 평범한 일상이 이렇게 보이지 않고 지나가는 것일 텐데’ 하는 생각을 하며 둘러보니 물 한쪽을 덮고 있는 부레옥잠이 눈에 들어온다. ‘저것도 못 보고 있었네’ 생각하며 보고 걷다가 “아이쿠” 뭔가에 걸려 휘청하며 넘어질 뻔한다. 뒤만 보고 걸으면 앞에 놓인 것을 못 보고 걸려 넘어질 수 있다는 것을 몸으로 체득한다. (이러다 깨달음 많은 현자가 될 지도 ㅋㅋ)
선녀가 목욕을 하고 날아갔다는 선세비(仙洗飛 ) 연못을 지나는데, 그럴 법하지 않은 장소에 붙은 이야기에 좀 의아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간다.
포장된 길을 계속 걷고 있어서 발바닥에 피로감이 느껴지는 상황이라 숲 속 흙길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특전사 숲길 입구에는 사유지라서 출입을 할 수 없게 되어 코스가 변경되었다는 안내판이 서 있다. 포장된 길을 계속 걷게 되면서 기분이 살짝 우울해진다. 사유지로 인해 코스가 변경되는 경우를 종종 보는데, 경우마다 다른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들은 이유 중에는 땅 소유자나 올레 이용자들의 배려 부족이나 무례한 행동으로 인해 생긴 갈등이 있다고 해서 입맛이 쓴 경우도 있었다.
낙천마을까지 가는 길은 한 두 개의 숲길을 지나면서 위안을 받긴 하지만 대체로 지루한 느낌을 받으며 걸어간다.
낙천아홉굿의자마을은 호기심을 자극하는 마을 이름을 가지고 있어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는데, 굿이라는 것이 샘이라는 말인 것을 안내판을 보고 알게 되었다. 그러니 하늘에서 내려준 아홉 개의 샘이 있는 마을이라는 의미인데, 설화에 의하면 설문대할망이 무더운 여름날 깊은 바닷속 흙을 퍼서 이 동네를 만들다 땀방울을 떨어뜨렸는데, 그 자리마다 조화가 생겨 아홉 개의 연못이 생겼다고 한다. 설문대할망이 쉬어 가라고 주민들이 천 개의 의자를 만들어 마을의 특색이 되는 공원을 조성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름을 새롭게 의미 부여하여 ‘아홉 가지 좋은 것(good)이 있는 즐거운 마을’이라고 하여 마을을 홍보한다.
(실제 아홉굿은 과거 대장간이 성행해 쇳물을 담아 솥, 쟁기 등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흙을 채취한 곳에 물이 차서 연못이 생겨났다고 한다.)
전망대가 있어 오르면 근처의 풍경을 다 감상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금방 도착할 오름엘 올라 보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아 굳이 오르지 않고 지나갔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다고 한다.
낙천리 사무소 앞에 농산물 매장을 겸한 매점이 있어 간식을 사 먹을 수 있을까 하여 가까이 가 보니 운영을 안 하고 있다. 평일이라 그런지 전망대에도 방문하는 사람이 별로 보이질 않는다. 특색 있게 조성한 마을 사람들의 노력에 맞게 관광객들이나 체험객들이 많이 방문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낮은 돌담 이어진 낙천 잣길을 빠져나간다.
저지오름으로 향하는 뒷동산아리랑길이라는 곳을 지나는데 길가에 큰 개가 줄에 묶여 있다가 인기척을 느끼고 크게 짖으며 목줄에 반동이 심하게 느껴지도록 뛰어오르기를 반복한다. 시골 개들이 혼자서 심심하게 있다가 이렇게 사람을 보면 반가워하는데, 개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보면 공포심을 느끼기에 딱 좋다. 꼬리를 흔들며 반가워하는 모양이라 천천히 다가가 친밀감을 표하다가, 묶여서 오래 지내는 것으로 보이는 처지를 안쓰럽게 생각하며 아쉬움을 남기고 지나간다.
저지오름을 오를 때 즈음하여서는 구간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첫날치고 좀 많이 걸었다는 신호가 몸에 전달된다.
입구에 저지오름 닥모르오름이라 적혀 있다, 마을 일대에 닥나무가 많이 자라서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닥나무 저(楮) 자를 쓰고 있어 마을 이름의 내력을 알 수가 있었다.
저지 오름은 키 큰 삼나무 숲길을 따라 오르게 되는데 양쪽으로 뻗어 오른 삼나무들을 따라 걷다 보면 자못 장엄한 맛이 느껴진다. 여러 다양한 나무들이 무성하게 멋진 숲을 이루고 있는데, 그 나무들을 잘 알지 못하는 도시 놈의 눈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대상을 받았음을 안내판을 통해 알게 될 뿐.
오름 정상부 둘레길을 따로 걷는데, 분화구 안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할 뿐 아니라, 숲을 다 흔들고 지나가며 청량하고 경쾌한 소리를 만들어낸다. 그 시원함과 청량함에 우화등선(羽化登仙 :날개가 돋아 신선이 되어 하늘에 오른다)이라는 시구를 현실감 있게 체험하며, 날아갈 듯한 기분으로 정상엘 도착한다. 정상 산불감시 초소 위의 전망대에 오르니 하루의 노독이 싹 날아갈 절경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오전에는 12코스의 수월봉에서의 멋진 전망에 감탄을 하고 왔는데, 저지오름에서 바라본 풍경은 그 어느 것에도 뒤지지 않는 시원 통쾌함이 있다. 중산간 지역까지 들어와서도 바다의 차귀도 비양도가 한눈에 들어오고, 금악오름 한라산 당오름 이시돌오름 산방산 수월봉으로 돌아가며 이어지는 봉우리들과 그 아래 터 잡고 있는 마을과 드넓은 뜰, 큰 나무처럼 서 있는 풍력 발전기가 멋진 구름을 가진 파란 하늘 아래 펼쳐진다.
신발을 벗고 발을 숨 쉬게 해 주면서 한참이나 바라보며 행복감을 만끽하다가 내려가기 시작했는데, 갑자기 너무 급하게 계단을 내려간다. ‘이건 뭐지? 이러면 분화구 안쪽으로 가게 되는데...’, ‘혹시’, '역시'. ‘이상하다 분명 오름 내려가는 길 표지를 본 것 같은데...’
아무 생각 없이 분화구 전망대로 내려가 버렸다. 분화구 내려가는 길이라고 알았어도 내려갔다 왔을 길이지만, 이렇게 의도하지 않게 가면 약간 속은 듯한 마음이 들어 괜한 분함이 있다. (누구에게 일까???)
계단을 한참 내려가 만난 풍경은 익숙하진 않다. 한라산에 오르거나 오름에 올라 분화구를 위에서 내려다본 적은 많은데, 이렇게 분화구 안으로 들어와서 위를 바라보면서 감상한 것은 기억에 없는데, 마침 사람도 없으니 분위기를 느끼며 한참을 둘러보게 된다. 나무와 수풀이 온통 얽혀 있는 산굼부리에서 마음은 뭔가 미지의 원시적 신비함을 만들어낸다. 사실 분화구 안에서 농사도 짓고 했었다니 이런 마음은 괜한 여행자의 것일 뿐일 텐데~.
그리고 올라가는 길, 계단이 가파르다. 그리고 많다. 어차피 올라갈 길, 멀리 보지 않고 앞에 가까운 계단만 보고 하나하나 오른다. 힘이 부친다 싶을 때쯤 다시 산불감시초소 앞에까지 올라왔다. 그리고 옆을 보니 오름 내려가는 길을 알리는 안내판이 조금 더 옆에 있는 길을 가리키고 있다.
삼나무 숲 계단 길을 내려가는데 아까 차귀도 포구 앞에서 올레길을 묻던 처음 걷기 시작했다는 청년이 숨차게 올라오고 있다. 웃으며 인사를 하니 반갑게 응대를 한다. ‘즐겁게 잘 걸으시라.’
발에 닿는 느낌이 좋은 오름 둘레길을 따라 저지마을로 내려오며 오늘의 일정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