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것도 아닌
* 이미지 출처 : pixabay (by Jeon Sang-O)
“아이쿠”
바로 뒤에 따라오던 엄마의 소리에 놀라 얼른 뒤돌아보니,
작은 돌부리에 걸려 앞으로 넘어지면서 땅에 무릎을 짚으셨다.
전망대가 있는 숲 속 산책길을 올라갔다 내려오는 길이었다.
손을 잡고 내려오다 평평한 길이라 손을 놓고 걸어가던 차였다. 그런데 산길이라 평평한 길에도 돌이 살짝 나와 있는 곳이 있어 발이 살짝 걸린 모양이다.
크게 넘어지신 것은 아니라 손을 잡아 드리니 얼른 일어나신다.
다치신 데는 없나 살펴보니 다행히 손바닥만 살짝 긁혀있다.
그런데
“아니, 괜찮아. 괜찮아. 봐! 아무렇지도 않잖아.”
다리를 들어 올리고 몸을 돌려 보이면서 괜찮음을 증명해 보이시는 과장된 몸동작에서 마음의 당황함이 여실히 묻어난다.
항상 철저하게 상황을 장악하고 자신이 할 바를 깔끔하게 처리해 나가는 것을 무척 자랑으로 생각하는 엄마는 자신이 실수하는 것을 남들에게 보이는 것을 강박적으로 싫어한다.
그것이 노화와 관련된 것이라면 더욱이 내어 보이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러니 이런 상황에서는 어디가 다쳤을까 봐가 아니라 길을 걷다 크지도 않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는 것에 무안함을 느끼시는 거다.
“예, 괜찮아요. 다행이에요. 우리 엄마 놀라셨겠네.”
손을 잡고 다른 손으로 먼지를 털어 드리고 등을 쓸어드리고 하니, 마음이 안정이 되시는지,
“나이가 들면 넘어지는 게 제일 무서운 일이라는데, 윗집 할머니도 침대에서 내려오다가 그냥 주저앉아서 엉덩이뼈가 깨져서 움직이지를 못한데. 그래도 난 아직 괜찮아. 움직이는 게 불편한 게 없는걸.”
아직은 건강하다는 것을 피력하신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딱 요런 만큼씩의 불편함을 준다.
할 수가 없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하고도 남을 마음과 몸의 상태인데, 불현듯 발이 걸려서 넘어지는 일이 생긴다. 그리고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자식들을 포함해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이 여간만 싫지가 않은 것이다.
그러다 보니 조심스러워지는 어떤 위축이 생긴다.
행동과 선택에서 아주 작은 걸림들이 조금씩 쌓여간다는 것이다.
손에서 물건을 놓치는 순간에 아주 작은 힘의 공백이 있다.
감지하지 못할 만큼의 짧은 순간이지만, 일단 손에 잡혔던 것이 살짝 빠지며 떨어지고 나면 그 소리가 의외로 크다.
그 소리의 요란함 때문에 사실은 짧은 순간의 공백이었을 뿐이라는 것이 확장되어 인지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호들갑을 떨며 마음을 위축시켜서는 안 된다.
단지 요만큼씩 불편한 것들이 생기는 것일 뿐이다.
그 요만큼이 커 보이기도 하고 작아 보이기도 하는 것이니, 마음의 용기를 가지고 볼 일이다.
엉겅퀴, 방가지, 익모초, 자운영, 산사나무 자귀나무, 때죽나무 ~
산책로 내려오는 길 옆으로 여러 가지 꽃들이 피어 있고, 나무와 산나물들이 엄마의 입을 통해서 딸에게 존재를 드러낸다.
“할머닌 어떻게 나무 풀이름을 잘 아세요, 다 똑같아 보이는데.”
엄마는 기억력이 참 좋으시다. 가족, 친척들의 생일이며 나이, 기일, 사람들의 내력 등을 정말 놀라운 기억력으로 알려주신다. 자식들 뿐 아니라 손자 손녀들의 친구들까지도 다 기억을 해서 당사자들을 놀라게 하기도 한다. 아마 종갓집 맏며느리로서 집안을 건사해 나가기 위해서 노력하며 살아오신 지난 시간의 결과일 것이다.
시골마을에서 자랐던 엄마는 나무나 풀이름을 잘 아시는데, 특히 식용이 가능한 나물을 아주 잘 아시고, 숲길을 지나가다 그런 나물들을 보고 그냥 지나치게 되면 아쉬운 마음을 감추지 못하신다.
“예전엔 산에 나물 하러도 많이 다녔으니까 이름을 알지. 삼태기에 가득히 따와서 손질하고 무쳐서 먹으면 쌉쌀한 것이 참 입맛을 돋우고, 삶아서 먹으면 참 맛이 좋았지. 향이 많고”
이런 말을 할 때의 모습에서는 소녀 같은 천진함이 읽힌다.
연세가 들어가시며 조금씩 약해지고 불편해지며 위축되기보다 삶의 경륜과 지혜로 넓어진 모습을 드러내시며 더 편하게 살아가시길 기대해 보는 산책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