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를 돈으로 살 수만 있다면...
교육 지원청에서 놀이 관련 학부모 연수가 있었을 때 일이다.
2시간에 걸친 강의가 끝나고 강사님 앞에 질문을 하기 위한 학부모들의 긴 줄이 생겼다. 다양한 궁금증을 갖고 서있는 학부모들 중에 한 분이 이런 질문을 했다.
" 강의 잘 들었어요. 우리 아이들 정말 놀이가 중요하네요. 저도 아이들이 맘껏 놀았으면 좋겠어요. 그럼 어떻게 해야 놀게 할 수 있을까요? 강사를 파견하는 단체가 있나요? 얼마가 필요할까요?"
제일 쉬운 방법을 찾고 계셨다. 돈 대신 그곳에 친구가 있어야 하고 울타리 역할을 할 어른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 말이 놀이에 대한 열정과 의지로 불타는 어머니들의 마음에 찬물을 끼얹는 것 같아서 할 수가 없었다.
놀이 관련 책들을 보면 '아이들을 놀리고 싶으면 학부모들이 공동체를 만들어라, 학교에서 놀이 시간을 만들고 학부모가 봉사하면 된다고 한다.'라며 쉽게 말한다.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정말 쉬운 일인 것처럼 말이다. 결국은 혼자서는 할 수 없으니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찾고 연대해서 힘을 만들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돈으로 가짜 놀이를 사는 것이 가장 쉬운 일이라고 얘기했는데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해야겠다.
'혼자, 돈으로 가짜 놀이를 사는 것이 가장 쉬운 일이다.'
나 혼자 결정하고 나 혼자 애써서 되는 일이라면 열심히 하라고 얘기하겠다. 하지만 이것은 나와 뜻을 함께 하는 이들을 만나야 이루어지는 일이다. 그 뜻이 같은 사람 만나려면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 그리고 많은 얘기를 통해 나와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지 확인해야 하고 신뢰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그래야 나의 아이를 돌봐주지는 않더라도 자신의 아이를 내게 보내줄 것이 아닌가. 일하는 엄마들에게는 불가능한 일이고 가정을 돌보고 있는 엄마에게 조차 쉬운 일은 아니다.
우리 아이와 절친인 아이들과 놀이공동체를 만들자. 그럼 첫째 아이들이 같은 동네 살아야 하고, 둘째 아이들의 부모가 같은 놀이 철학을 갖고 있어야 하고, 셋째 부모들의 관계가 원만해야 하며 서로 신뢰해야 한다.
이런 모임이 생기면 좋은 점은 같은 또래 아이들이 친해지는 시간 없이(원래 친한 아이들이니까) 바로 놀 수 있다. 사실 이렇게 모인 아이들은 서로에 대한 이해가 높기 때문에 갈등이 적고 놀이를 빠른 시간에 쉽게 즐길 수 있는 사이가 된다.
그럼 반대로 엄마에 의해 만들어진 놀이 모임은 어떨까. 엄마가 열심히 사람들을 찾았고 어렵게 뜻이 같은 사람들을 모았다. 그래서 아이들이 모이기는 했는데, 아이들끼리 친하지 않거나 나이 차이가 많이 나거나 성별이 맞지 않아서 남자 5명에 여자 1명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성별은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4학년이 되면서 여자아이들은 사춘기가 시작되고(아이마다 다르지만) 남자아이들과 뛰고 뒹굴며 노는 놀이를 선호하지 않게 되기도 한다. 그럼 놀이에서 점점 빠지게 되거나 불편해하며 엄마 옆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진다. 엄마들 수다에 끼는 것을 더 즐거워할 수도 있다.
친하지 않거나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모임은 왜 어려움을 겪을까? 친하지 않다는 뜻은 친밀함과 신뢰가 쌓이지 않은 상태고 서로에 대한 이해와 심리적 경계(뭘 좋아하고 뭘 정말 싫어하는지, 어느 정도까지는 이해해주고 어디까지 가면 정말 피곤해지는지 등)를 알 수 없다. 그 과정은 오랜 시간 놀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것인데 그것이 없으니 계속 싸우고 갈등이 생긴다. 놀이의 단맛을 보기도 전에 관계의 쓴맛을 먼저 보면 놀이는 피곤해지기 시작한다. 엄마표 놀이학원처럼 느껴질 수도 있는 것이다.
부모들은 다양한 연령대의 아이들이 섞여있는 것이 어쩌면 더 긍정적이지 않느냐는 질문들을 한다. 위의 아이가 동생들을 돌보며 놀고 있으니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이냐며 뿌듯한 그림을 상상하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어린 시절 동생과 노는 것이 친구들과 노는 것보다 즐거웠는지. 동생은 배려해야 하고 돌봐야 하는 존재처럼 느껴진다. 게다나 신체능력도 나보다는 부족해서 놀이가 재미없다. 놀다가 내가 밀어서 다치기라도 하면 동생을 돌보지 않았다는 불호령이 떨어지기도 한다. 동생은 그냥 짝 모자를 때 있음 껴주는 존재였는데. 내 동생도 아닌 다른 아이 여럿을 동생 삼아서 놀라는 어른들의 부탁은 부탁이 아니다. 선택할 수 있어야 부탁인데 아이들이 동생을 끼워주기 싫다고 하면 부모들의 표정은 싸늘하게 바뀐다. 아이들은 부모들의 강요를 거절하지 못한다. 그리고 동생들과의 심심한 놀이가 시작된다. 내 또래는 한, 두 명이고 동생 네, 다섯 명을 데리고 놀아야 한다는 강요가 깔려있는 놀이터에서 진짜 놀이를 하기 어렵다.
놀이 철학을 함께 한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어떤 부분의 내용은 쉽게 동의하면서도 어떤 부분은 동의하지 않을 수 있으므로 자세한 내용까지 공유하고 생각을 나눠야 한다.
놀이를 하기 전에 확인할 것들
1. 우리가 앞으로 하게 될 놀이는 목적이 없다.
놀이를 통해 주체성, 사회성, 자기 조절 능력, 갈등 해결 기술들을 배울 수는 있다. 하지만 우리가 할 놀이는 이런 것들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우리가 놀이를 아이들에게 돌려주려고 하는 이유는 놀이의 주인은 원래 아이들이었고 그것이 그들의 권리이기 때문이자. 내 삶의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권리는 그 삶의 주인에게 있는 것이다. (물론 안전의 울타리는 부모의 몫이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목줄을 하며 널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서라고 얘기하지는 말자)
그러므로 놀이를 한 후에 어떤 점이 나아지고 좋아졌는지. 어떤 사회적 기술을 익혔고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는지 확인하는 부모가 있다면 함께하기 어렵다. 놀이를 학습으로 생각하고 있다면 결과에 연연할 수밖에 없고 결과가 좋지 않다고 판단되면 바로 놀이의 끝을 외칠 것이기 때문이다.
2. 놀이에서 안전의 책임은 모두 나에게 있다.
학교와 어린이집에서 놀이를 하다 보면 선생님들께서 참관하시는 경우가 간혹 있다. 그러면 가끔 얘들아 뛰지 마, 밀지 마, 천천히 움직여~라고 외치는 선생님들을 만나곤 한다. 만지지 않고 뛰지 않고 안전하게 움직이는 것은 놀이가 아니다. 선생님들을 이렇게 만든 것은 부모들이다. 아이가 다치면 모두 선생님과 학교, 보육시설에 책임을 묻는 부모들이 겁쟁이 선생님들을 만들었다. 아이들이 도전하지 않고 호기심을 갖지 않으며 친구와 함께 할 때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고 있을 때는 선생님께 책임지라고 하지 않으면서 왜 무릎이 까질 때는 선생님께 소리를 치는 것인가. 무릎의 상처나 멍이 성인이 되어서까지 고통스럽게 남는 경우는 많지 않다. 하지만 호기심과 관계에서 느끼는 즐거움,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도전하는 용기의 결핍은 어른이 되어서까지 아이들을 따라다니며 행복과 멀어지게 할 것이다.
놀이의 안전에 대한 책임은 모두 아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이 합의되지 않으면 놀이 안에서는 책임을 피하기 위한 다양한 울타리가 생길 것이고 그것이 아이들의 안전망이 아닌 놀이의 방해물이 되어 더 먼 미래에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