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사랑 일리 없다

사랑이라는 마음의 오류

by 한희


밤 12시에 술을 먹고 들어와서 라면이 먹고 싶다는 말에 자다 말고 일어나서 라면을 끓여주는 것

출장을 간다는 말을 듣고 여행 가방을 대신 싸주는 것

모임에 가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말에 정말 만나고 싶었던 이들을 만나러 가지 않는 것

상대가 긴 머리를 좋아한다는 말에 미용실 갈 때마다 헤어스타일을 고민하는 것

너 때문에 화가 난다며 물건을 던지더라도 그 사람은 나를 사랑하지만 지금 정말 화가 났다고 믿는 것

스킨십을 거절하면 상대가 서운해하기 때문에 좋은 척 연기하는 것

외출을 했다가도 상대가 집에 올 시간에 급하게 들어가는 것



이것이 사랑인 줄 알았다.


어떤 날은 정말 기쁜 마음으로 할 때도 있다.

빈속에 술 먹고 얼마나 속이 안 좋으면 라면이라도 끓여달라고 할까? 그 얘길 들으니 안쓰러워서 잠이 확 달아나네/ 출장을 간다고? 내가 챙겨줘야지! 덜렁대다가 빼놓고 가는 게 있으면 거기서 얼마나 당황을 하겠어?


상대를 배려하고 이해하는 마음으로 할 때도 있고.

정말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지만 그 사람들이 내 삶에 지금 이 사람보다 더 중요하지 않아. 괜히 마음 상하게 하지 말자 / 긴 머리가 너무 불편해, 말리는데 시간도 많이 걸리고. 하지만 이 모습이 좋대. 나를 좋아하는 마음이 사라지는 건 싫어. / 사람이 화가 나면 마음에도 없는 말이나 행동을 할 수 있지. 날 사랑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어


불편한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 할 때도 있다.

내가 지금 싫다고 하면 화내고 삐지겠지? 난 지금 이 평화를 깨고 싶지 않은데. 그냥 좋은 척 하자. / '밥해놔야지 안 그러면 또 어딜 싸돌아다니냐고 집에 좀 붙어있으라고 할 거야 지난번에 그 얘기 듣고 기분이 나빴어. 싸우고 싶지 않아. 그냥 빨리 들어가자.'






그 정도도 못해줘?
날 사랑하는 것 맞아?






이벤트 같이 가슴 두근 거리는 연애가 삶의 일부로 자리 잡으면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특별한 사이의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얼마나 많은 자유를 구속해 왔는지. 사랑을 지키기 위해 사용된 보호라는 울타리가 어느 순간 통제로 바뀌는 순간이 되면 나는 삶의 주인이 아니라 객으로 살아가게 된다. 사랑은 상대의 삶에서 주인의 자리를 빼앗아 오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각자 삶의 주인임을 알고 그 사람이 자기답게 잘 살 수 있도록 돕는 관계를 유지할 때 지킬 수 있다.


그것을 난 결혼하고 알았다. 결혼 전에 받았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질문을 아무도 해주지 않았다. 아니. 내가 스스로에게 질문할 수 있어야 했는데 그 정도로 성숙한 사람이 아니었다.


뭐하는 사람이냐, 주량이 어떻게 되냐, 성격이 어떠냐, 집은 준비됐냐?, 얼마나 사귀었냐, 그 사람 뭐가 그렇게 좋으냐? 에 대한 질문은 받았어도 그 사람은 주체적인 사람이냐, 존중하는 법을 아느냐? 서로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알고 있냐? 결혼에 대해 어떤 환상을 갖고 있냐? 갈등이 생겼을 때 어떻게 해결하는 편이냐? 상대를 위해서 나답지 않은 행동을 할 때가 있었느냐? 상대에게 가장 좋은 부분과 변화해 줬으면 하는 부분은 무엇이냐? 상대가 영원히 바뀌지 않는다면 어떻게 조율하면서 살 거냐? 함께하는 취미가 있느냐? 가사분담과 서로의 커리어에 대해 얘기해봤냐? 명절 때는 가족의 집을 어떻게 방문하기로 했니?


다른 친구들에게 물어봐도 이런 질문을 받아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만약 이런 질문을 받았다 하더라도 완벽하지 못한 것이 사랑이고 결혼이다. 삶은 앞으로도 계속 서로를 시험하는 질문들을 쏟아낼 것이기 때문이다.


결혼 전에 이런 질문을 받았다고 해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모두 안다고, 다 참을 수 있다고, 집안 일도 모두 내가 하고, 배우자를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다는 대답을 할 수도 있다.


이것은 동기가 높았을 때 벌어지는 마음의 오류이다.


대학에서 자기 발견 수업 중 진로에 대한 주제를 강의할 때 일이다. 드라마의 주인공을 보고 멋져 보여서 5년 동안 요리사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는 학생을 만났다. 요리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호텔조리를 전공한 후 실습을 나가서 선배들을 봤더니 3~4년 동안은 설거지와 재료 손질만 하는 사실을 알게 됐다. 주방장이 되기 위해서는 앞으로 10년 동안 더 공부를 하고 현장의 경험을 쌓아야 한다. 처음에는 모두 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다고 장담했다. 5년 동안 사랑해온 직업이니까. 하지만 그 학생은 1년도 일하지 못하고 퇴사했다. 그리고 다시는 요리를 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비인격적으로 대하는 주방장과 운영시스템, 착취적 인력 구조, 건강하지 못한 조리 환경과 레시피를 보니 정이 뚝떨어졌단다. 드라마에서 본 주방문화, 학교에서 배운 요리와 너무 다르다며 전공을 살리고 싶지 않으니 사무직 취업을 하겠다고 한다.


동기가 높았을 때 벌어지는 오류 중 첫 번째, 동기가 높으면 나는 어떤 어려움도 이겨 낼 수는 의지력을 갖고 있다고 믿게 된다. 하지만 무한한 의지력을 가진 사람은 없다. 배우자를 만나기 전까지 의지력을 1도 쓰지 않고 잘 보존했다가 만나서 쓰면 가능하다. 하지만 의지력을 쓰지 않는 삶은 존재하지 않는다. 슈퍼에 가서 콜라 대신 물을 선택할 때 조차도 의지력을 쓴다.


두 번째, 앞으로 경험할 일들에 대한 감정을 잘못 예측한다. 긍정심리학에서는 그것을 정서 예측의 실패라고 말한다. '무서운 주방장? 괜찮아'라고 생각했는데 직원들 앞에서 혼나고 나니 상상했던 감정을 초월한 수치심이 든다. 시어머니가 좀 무서워 보이긴 했지만 우리 부모님도 엄하셨어~ 괜찮아 난 예쁨 받을 수 있어! 그리고 혼날 수도 있지. 사람이 처음부터 어떻게 잘해?라는 생각과 정서 예측은 한 번에 깨질 수 있다.







너랑 결혼하고 얘가 살이 빠진다. 잘 좀 해 먹여라.
결혼하고 살찐다. 건강한 음식 좀 해줘라.
여자애가 집안 꼴이 이게 뭐니?
너 병 있니? 왜 이렇게 쓸고 닦고야?







시부모님, 친정부모님, 남편의 정서 예측도 실패할 수 있다.


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명절날 술을 드시던 작은 아버지가 날 부르셨다.


'난 너 같은 장손 며느리를 원하지 않았다. 손도 크고 요리도 잘하고 집안의 어른으로 밑에 동서들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사람을 원했어. 난 네가 싫다.'


대학원 시험기간이어서 벌초에 가지 못했더니

'너 공부 이제 그만해라.'


상상도 못 한 막장 드라마의 시나리오 같았다. 이런 대화를 결혼 전에 예상이나 했을까?

서로의 기대가 너무 달랐고, 기대를 저버린 상대는 가족이란 이름으로 묶여서 볼 때마다 손가락 끝에 박힌 가시처럼 신경 쓰이고 아프다. 안 그래도 서로 다른 사람 둘이 만나서 서로를 알아가고 조율해 가느라 힘든데 가족들까지 달라붙어서 본인의 바람들을 쏟아내니 정신이 없다. 의지력은 여기서 바닥난다. 그리고 바로 전투.

결혼 전에 이런 얘기를 친구들이 아무리 해줘도 '우리 집은 달라, 얼마나 좋은 분들인데. 모두 이해주셔.'라는 착각은 미래의 삶을 더 힘들게 할 뿐이다. 상대가 나쁘고 악마 같아서 갈등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나와 사고방식이 다르고 약자를 존중하는 태도를 학습하지 못했으며 대화 기술이 부족해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하지만 이것은 내가 학습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상대를 바꿔서 살겠다거나 집안을 뜯어고치겠다, 내 팔자니 어쩔 수 없다, 참겠다는 생각보다는 차라리 '맞아 갈등이 있을 수 있고 상처 받을 수도 있어. 내가 원하는 것과 상대가 원하는 것이 다를 때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를 배우자와 함께 고민하며 서로와 가족의 경계를 확인하고 존중하는 방법, 보호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낫다. 결혼은 이벤트가 아니기 때문이다.

의지력을 발휘하면서 눈감아야 하는 사랑은 유통기한이 더 짧다.




그렇다면 현실에는 없고 내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결혼과 성에 대한 판타지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모두 미디어가 만들어낸 허상이다. 산타가 붉은색 옷을 입었을 때 산타답다고 생각하듯 첫눈이 오면 연인을 만나야 하고 크리스마스에는 꼭 특별한 밤을 보내야 한다는 것들을 드라마와 영화가 사람들의 무의식에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미지를 각인한 것이다. 가상 결혼, 맞선, 연애 프로그램은 사랑의 단맛만 골라서 보여준다. 사랑은 상처의 쓴맛, 눈물의 짠맛, 질투의 신맛, 비교당하며 느끼는 비린맛이 만들어 낸 요리다. 그리고 현실에서는 불가능하지만 단맛만 있는 사랑이 꼭 행복하다고 말할 수도 없다.


음란물이나 잘못된 문화 안에서 폭력적인 성관계를 학습한 사람들은 배우자를 성적 대상화할 수도 있다. 특히 성관계는 지극히 사적인 영역이라 부모에게서 배우거나 학교에서도 가르치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는 것 자체가 폭력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지금 관계가 성폭력적인지 알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배우자는 내가 원할 때 마음껏 성관계할 수 있는 법적으로 허용된 인간을 뜻하는 단어가 아닌데도 배우자를 소유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배우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성적 욕구를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쓴다. 배우자와의 관계가 건강한지를 알아보기 위해서 자신이 원하지 않을 때 싫다고 말할 수 있는지, 거절 후 일어날 일에 대해 두려움이 있는지, 거절 후 불이익을 경험한 적이 있는지, 거절할 수 없어서 불편한 마음으로 허락한 적이 있는지, 그때의 감정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는지 등을 스스로에게 질문해볼 수 있다. 부부 사이에서도 성적 자기 결정권은 존중되어야 하지만 쉽지 않다. 연애시절 존중하는 관계 맺기에 실패했다면 부부가 되어서 서로를 존중할 가능성은 더 낮아진다.


자신의 가족을 소유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아이들까지도 욕구를 채우는 도구로 사용하기도 한다. 맥락 없이 아이들에게 하는 스킨십이 아이들의 주체성 교육에 해가 된다는 얘기를 하면 '내 자식 내가 왜 마음대로 못하냐'라고 말하는 부모들이 있다. 맘껏 물고 빨려고 낳았다는 말까지는 못하지만 '이렇게 눈치 보며 키울 거면 왜 낳았냐'는 말을 한다.


이 말을 순화하고 순화해서 4학년 아이들에게 들려주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아이들을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해서 그러나 봐요.


우리도 생각과 감정이 있어요.


부모들은 우리를 주무르려고 낳나요?


저희 아빠가 저렇게 말씀하셨어요...


아이들이 소유물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부모의 대사만 듣고도 그것이 어떤 사고에서 나온 말인지 바로 이해하고 있었다. 미디어에서 나오는 성적 대상화와 부모가 하는 사랑의 표현을 연결하는 것은 과한 해석이라고 생각될 수 있다. 맞다. 부모들이 그런 생각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내가 원하지 않지만 사랑이나 친밀함을 전제로 하는 스킨십이라는 점이 비슷하기 때문에 아이들은 범죄로 넘어가는 시점을 빠르게 알아차리기 쉽지 않다. 그리고 상대가 싫어하지만 사랑해서 하는 스킨십의 밑바닥에는 '소유물'이란 단어가 숨어있음을 아이들은 알고 있었다.


혹시라도 비슷한 경험을 한 아이들을 수업시간에 다른 친구들이 하는 얘기를 들으며 자신의 감정이 옳았다는 것을 배운다. 그런 얘기를 처음 들어본 아이들은 자신을 존중하는 부모들에게 감사한다. 부모와 가족들은 아이들을 사랑한다. 하지만 사랑한다고 해서 표현까지 모두 옳은 것은 아니다.


'얘들아 부모님이 널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야. 그냥 표현이 서투르고 다른 방법을 몰라서 그러셔. 그러니까 알려드려. 화내실 수도 있어. 혼날 수도 있어. 하지만 네 몸과 마음의 주인이 부모님이나 다른 사람에게 있다고 믿어서는 안 된다. 넌 한 번도 다른 누구의 것이었던 적이 없어.'



부모들은 아이들이 무지 위에 세워진 순수함을 유지하길 바란다. 그리고 곁에서 평생을 위험으로부터 지켜 줄 수 있다고 자신한다. 나도 아이들을 최대한 마지막 순간까지 지켜주고 싶다. 하지만 지켜줄 수 없다. 지켜줄 수 있다고 해도 그래서는 안된다 부모는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성인으로 아이를 키울 의무와 책임이 있다. 세상으로 나가지 못하고 나의 울타리에 있는 아이는 영원히 어른이 되지 못한다. 그리고 완벽한 부모의 울타리라는 비현실적인 기대는 밖이 아니라 안에서 아이들의 손으로 뚫린다.


완벽한 울타리에서 소유하는 사랑이 진짜 사랑 일리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문자로 통보받은 이별의 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