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다시 나를 낳는다면?

답이 정해져 있는 질문

by 한희

아들 박시가 5학년 때, 저녁을 먹고 산책 삼아 집근처 카페에 갔었다.

앞에 다정하게 걷는 연인들을 보며 저 사람들은 이제 결혼하는 것이냐고 묻길래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다고 했더니 깜짝 놀란다. 물론 첫번째 만나고 사랑한 사람과 결혼하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오랜 시간 자신과 상대를 맞춰보고 평생 같이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본 후 결정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지금 손잡고 껴안았는데?'


박시는 사춘기 호르몬이 퐁퐁 솟아나며 주변 연인들과 사랑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 그래서 주변에 연인들만 보면 관찰하기를 멈추지 않는데 특히 스킨십에 관심이 많은가 보다. 공원에 가면 숨어서 뽀뽀하는 연인들을 귀신같이 찾아내고(숨어서 하는 걸 왜 찾아내는지, 또 그런 것이 그리도 잘 보이는 것도 참 신기하다) 지나가는 연인들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다. 그냥 모르는척하고 지나가는 거라고 얘기를 해줘도 12살 귀에는 들리지 않는 잔소리였다. 다행히 연인들은 세상에 둘만 있다고 믿는 이들이기에 그들은 우리를 신경쓰지 않는다.


그날도 또 호르몬 발사하는구나~하고 있었는데 거기서 질문은 멈추지 않았다.


'엄마도 아빠 전에 만난 남자들이 있어?', '아빠보다 키 크거나 똑똑한 사람도?', '그런데 왜 아빠랑 결혼했어?'


이렇게 폭풍 같은 질문이 계속되다가 마지막으로 물었다.



엄마 과거로 돌아가서
나보다 더 나은 아이를 낳을 수 있다면 어떤 애를 낳고 싶어?



지금의 자기를 업그레이드한다면 어떤 기능을 넣고 싶냐는 질문이었다. 더 똑똑하고 말 잘 듣고 공부 잘하는 아들을 만들 수 있다면? 난 잠깐 고민했다. 그리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박시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얘기했다.



엄마는 더 뛰어난 박시를 만들 수가 없어.
왜냐하면 내가 만들 수 있는 최고의 아기가 너였거든.
엄마 난자가 아빠의 최고 정자를 선택한 거라 더는 잘 만들 수 없지.
내가 낳을 수 있는 최고의 아기는 바로 너야.
그리고, 난 박시의 지금 모습이 참 좋아!



그 말을 들은 아이가 세상을 모두 얻은 표정으로 웃으며 내 앞으로 뛰어간다. 부끄러워서일 수도 있고 자기가 원하는 답을 들어서 일 수도 있고, 그 이유는 몰랐지만 아이의 뒷모습에서 본 것은 하늘을 날 것처럼 들썩이는 엉덩이와 땅을 부드럽게 내딛으며 달리는 두 다리였다.


그리고 그 후로 박시는 그 질문을 다시 하지 않았다.(만약 내가 다른 말을 했다면 계속 물었을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더 잘할 필요 없고 존재만으로도 온전이 받아들여지는 그 느낌이라는 것은 상상만 해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말을 들어봤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런 말을 누군가에게 해달라는 부탁을 해본 적은 없다. 부탁은 거절이란 것도 예상해야 하고 부탁을 들은 상대가 당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괜히 질문하고 상처 받고 싶지는 않다.


성교육을 하다 보면 박시의 질문을 받은 경험이 있는 엄마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연수에 아빠 참석자를 만나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대부분 오전 10시에 시작하는 양육자, 부모 연수는 아빠들이 참석하기에는 부담스러운 시간이다. 물론 월차나 반차를 내고 오시는 분들을 만날 때면 뭐라도 드리고 싶을 만큼 반갑고 감사하다.)

연수에서 내가 이 사례를 얘기하면 이미 질문을 받았던 엄마들은 표정이 어두워진다. 공부 잘하는, 똑똑한, 용감한, 끈기 있는, 편식 안 하는, 말 잘 듣는 등 아이에게 부족한 점들을 모두 얘기했을 뿐 아니라 때로는 반품하고 싶다는 얘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그 답을 들은 아이는 풀이 죽고 뭔가 더 노력하고 애쓰지 않으면 엄마의 마음에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것이다. 그리고 안도하기 위한 노력을 하며 살겠지.


기쁨을 위한 삶과 안도의 삶은 전혀 다르다. 기쁨을 위한 삶은 나의 진짜 모습이 온전히 받아들여지고 내가 되고 싶은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고 안도의 삶은 그렇게 살아야 하니까,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애쓰는 삶이다. 그래서 그런 사람이 되지 못하면 불안하고 초조하다. 만약 그런 사람이 되어도 기쁨보다는 안도와 안심으로 가슴을 쓸어내린다.


우리 아이는 이제 다 커서 그런 얘길 안 해줘도 되니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강의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내가 느끼고 생각한 것은 '어린 시절 듣지 못했던 인정의 말은 어른이 되서라도 꼭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취업을 준비하며 자존감이 낮아지고 불안이 높아진 청년들을 만나서 자기 발견 수업을 할 때 일이다. 수업을 마치며 갑자기 우리 아이의 사례가 떠올라서 청년들에게 말해준 적이 있다. 이미 선택을 통해 태어났고 지금 내 모습이 최고의 모습이라는 얘기를 전했다. 그랬더니 30대중반의 한 남성분이 다가와 진지한 표정으로 말한다.


'우리 엄마한테 저도 물어보고 싶은데. 겁이 나고 무서워요. 환불해버리고 싶다고 하실까 봐... 평소에도 그런 말을 많이 하시거든요'


그래서 엄마 대신 내가 그의 가슴에 대고 천천히 얘기해 줬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기억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람으로... 엄마에게 듣고 싶은 이야기였겠지만 상처보다는 아쉬운 마음이 더 나을 것 같아서...


엄마가 아니어도 된다. 아빠여도 할아버지, 할머니, 가족 또는 지인, 선생님이든 누구여도 좋으니 제발 한 명이라도 더 늦기 전에 얘기해 줬으면 좋겠다.


넌, 최고의 아이야. 더 나은 아이는 나올 수 없었지. 그리고 난 지금의 네가 참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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