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 속 성교육은 2가지다. 첫 기억은 6학년 때 여자아이들만 교실에 바글바글 모여 받았던 월경에 대한 수업이다. 그때 남자아이들은 축구를 하고 있었고 몇몇 호기심이 많은 아이들이 창문에 매달려 뭐하냐고 물었던 것이 기억난다. 그런데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이 나와 같은 초등학교를 다닌 친구가 아닌 것을 보면 선생님들 사이에서 이렇게 교육하는 것이 유행이었나 보다. 그리고 마지막은 고등학교 때 받았던 출산과 낙태에 관련된 것이다. 고등학교 때는 순결 서약과 비슷하게 낙태를 절대 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학교에서 단체로 쓰게 했다.(이것에 대해 할 말은 많지만 오늘은 성교육에 집중해서...)
그리고 학교에 대한 기억 외에... 가족과 연결된 것도 있다. 초등학교 5,6 학년 때인가 생일날 언니가 선물을 사준다고 하길래 그 당시 책을 좋아했던 나는 1초의 고민도 없이 서점으로 향했다. 서점에서 사춘기와 관련된 책을 하나 봤는데 가족이나 선생님은 얘기해주지 않는 성에 관한 내용들이 가득 있어서 꼭 사고 싶었다.(제목은 기억 안 나지만 누구누구의 봄이었던 것다. 제목도 참.. 사춘기 책답다) 책을 언니에게 내밀자 언니는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왜 이런 책을 보고 싶니?
라고 투덜거렸다. 그때부터 난 성은 부끄럽고 감춰야 하는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게 됐다.
고등학교 시절 수많은 순정만화를 보며 사랑을 꿈꿨고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결혼하는 상상을 해왔던 나의 마음 한편에는 만화가 알려준 내숭과 여자다움, 성과 관련된 편견이 자리 잡고 있었고 또 다른 한쪽에는 학교와 가족이 만들어낸 순종하고, 숨겨야 하는, 부끄럽고 무서운 성이 함께 커가고 있었다
아기가 어떻게 생기냐니... 나도 정자, 난자로 배웠는데... 어디까지 얘기해 줘야 하는 것지? 어디까지 알고 있지? 쟤가 왜 갑자기 그거에 관심을 갖지? 무슨 일이 있나? 이상한 것을 봤나? 생각의 고리는 쉬지 않고 연결됐고 내가 해줘야 하는 답과는 점점 더 멀어지는 느낌이었다.
인터넷에 유머글 안에서 아들이 아빠에게 섹스를 해봤냐는 질문에 '아니'라는 답을 했다고 하길래... 한참을 웃었는데, 나도 뭐 별반 다르지 않은 엄마였다.
학부모 연수에서 만난 부모들은(앞으로 부모라고 쓰지만 양육자를 포함하는 단어라고 이해하길 바란다) 내가 받은 첫 질문에 대한 답을 가장 궁금해했고 자신들도 그런 질문을 받을까 봐 두려워서, 잘 답해주고 싶어서 이 연수를 신청했다고 얘기했다. 그리고 많은 부모들이 성교육에서 다루길 원하는 주제는 바로 '성기' 이야기다. 나도 물론 그 생물학적인 성에 대한 질문에 답을 하기 어려워서 성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하지만 아이들과 성을 얘기하면서 '성지식'보다 먼저 선행되어야 하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건 삶에 대한 얘기다. 다른 성에 대한 얘기는 제가 해줄 수 있는데 성기나 성관계 얘기만 나오면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얘기를 하는 부모들을 만날 때마다 정말 삶과 연결된 성에 대한 얘기, 주체성과 자존감에 대한 얘기를 충분히 해주고 있는지 다시 묻고 싶을 때가 많다.
성은 임신 10주부터 이미 결정되기 시작해서 내가 생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함께 한다.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다양한 부분 중 하나이기도 하고 삶의 곳곳에서 나와 다른 성을 가진 사람들과 살아가며, 어려움을 겪기도 하고 잊지 못할 행복한 경험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삶의 일부분인 성, 한 번도 나와 떨어져 본 적이 없는 이것을 우리는 어떻게 배웠는가?
쉬쉬하며 숨어서? 아이들과 키득거리며? 불법이라 부르는 어둠의 경로로?
학교에서는 성교육 시간이란 특별한 시간을 만들었고 집에서는 성교육을 학교에 떠넘겼다. 그럼 학교는 부모의 기대와 바람을 담아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발달 수준과 흥미, 관심사에 맞춰 성교육을 했을까? 그렇게 해주길 바라는 것 자체가 욕심이다.
보건 선생님은 학교에 한 명인데 몇백 명이나 되는 학생들에게 1:1 수업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안전(?)하고 민원이 들어오지 않을 정도의 수위로 학년에서 꼭 알아야 할 성지식을 전달하고 사건이 생기지 않도록 성폭력 예방교육 등을 가르친다.(물론 생물학적인 성만 배우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과목과 연결해서 성평등이나 성편견에 관련된 내용을 배운다. 지금 얘기하는 것은 성교육이라고 이름 붙여진 시간들에 관한 것이다.)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진실을 얘기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아이들과 부모들의 이야기에도 그렇게 할 수 없는 이유는 그것을 원하지 않는 부모들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조금만 생각해보면 바로 예상이 가능한데도 왜 부모들은 자신들이 성교육을 하지 않고 학교에게 맡겼을까? 그리고 문제가 생기거나 우리 아이에게 피해가 생기면 바로 '학교는 뭐했냐, 담임은 알았냐? 너희들이 교육하기로 했으니 너희가 책임져라!'라는 얘기들을 하게 됐을까? 그러는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어떤 성교육을 해줬었나?
부모를 비난하기 위해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부모가 성교육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들도 방법을 배운 적이 없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못하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자신이 양육된 문화와 편견에 갇혀서 두려움이나 수치심 때문에 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럼 학교는 왜 부모교육을 하지 않을까? 함께 아이들을 키우는 교육공동체인데, 모든 책임을 왜 무리하게 떠안으려고 하는 것일까(난 학교 직원이 아니어서 잘 모른다.)
모 학교 연수에서 한 학부모님이 성교육이 도움됐다며 인사를 전했다. 지금 아이가 6학년이고 학교 연수 관심 있게 보고 참석하는 편인데 성교육은 6년 만에 처음이라고 했다. 학생은 필수 이수 시간이 있지만 학부모는 성교육이 필수 교육도 아니고 가정통신문으로 대체할 수 있다. 그러므로 부모 교육은 그렇게 미뤄지며 잊히고 있었다. (물론 부모들이 6년 동안 원하는 주제가 학습에 관련된 주제여서 열리지 않았다면 할 말이 없다.)
그럼 1년에 한 번 1시간 30분 동안(쉬는 시간, 소개 시간, 교장선생님 말씀 시간 다 빼고) 학부모 연수를 하면서 성기 이야기 외에 무슨 얘기를 할 수 있을까? 나 또한 그 짧은 시간에 성을 얘기하라고 하면 사춘기 성과 성폭력 예방을 얘기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부모들은 성교육을 얘기할 때 생물학적인 성 외에 관계나 주체성, 자존감으로의 관점 확장이 어렵다.
더 이상 교육시스템을 비난하고 학교를 욕하고, 썩어버린 세상을 들먹이는 일에 시간을 쓰고 싶지 않다. 물론 더 나은 세상이 되어야 하고 교육도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이 변하는 것을 기다리다가 우리 아이들은 다 커 버릴 테니 가장 마음 급한 우리가 움직일 수밖에.
비난과 원망이 아닌 연대와 실천으로 우리 아이들은 우리가 지킨다.
그러기 위해 특별한 시간에 성지식과 성 발달이 모두 다른 모든 아이들을 모아놓고 하는 성교육이 아니라 아이가 궁금해할 때 바로바로 알려주고 다시 물어봐주는 삶의 틈새, 생활 속 순간에 이루어지며 사랑과 믿음을 바탕으로 한 우리들(양육자)의 성교육이 진짜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