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초반, 연애할 때 참 많이도 들었던 질문이다. 그렇게 처음인지를 묻는 질문들도 다 이유가 있겠지만 답하는 상대는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된다.
처음이라면 당당하게 '응 네가 처음이야!'라고 말하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미안해하거나 때로는 죄스럽게 생각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누군가와 사랑을 주고받았던 경험이 왜 비난의 대상이 되어야 하며 앞으로 나누게 될 사랑에 대해 잘 아는 것에 왜 부끄러워야 할 것들인지 그땐 의문을 갖지 않았다. 그냥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날 마음에 들어하길 바라는데 급급했고 어떤 꼬투리도 이별의 원인이 되게 하고 싶지 않았을 뿐.
초등학교 5학년 교실에서 한 아이의 질문, 성에 대해 잘 아는 친구를 변태라고 놀린다.
어린 시절부터 성에 대해 잘 아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었다. 넌 어떻게 그런 걸 잘 알아? 변태. 가장 안전한 어른에게 물어볼 때조차 '조그만 게 별게 다 궁금하다, 크면 저절로 알게 돼! 공부나 해'라는 소리를 들었으니 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가장 가까운 연인이나 부부 사이에서 조차 쉽지 않다.
게다가 서로에 대해 잘 모르고 신뢰관계가 충분히 쌓이지 않은 연애 초기에 연애 경험과 성지식이 많다는 것을 얘기하면 바람둥이나 카사노바, 까졌다는 소릴 들을 수도 있고 상대에게 아무 하고나 사귀고 연애하는 가벼운 사람으로 의심받을 수도 있다. 이 의심은 결국 지금의 사랑도 우습게 생각하고 쉽게 깨버릴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모험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초등학교까지는 생명의 신비와 임신에 대해서 배웠다면 중학생부터는 임신을 피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초등 아이들은 '정자와 난자는 엄청나게 만나기 힘든 확률로 만난다. 그럼에도 꼭 만나야 한다! 그래야 내가 태어나니까!'라는 생각을 하며 정자와 난자가 만나는 것을 응원하지만 사춘기 몸의 변화가 시작되고 월경을 하면 임신은 꼭 행복하고 좋은 것만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된다. 어떨 때는 귀찮고 아프지만 한 달이라도 거를 때는 걱정되고 두려운 것이 월경이다. 성적 자기 결정권을 가진다는 것은 자신의 몸에 대해 잘 아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이 임신을 원하지 않을 때 임신을 피할 수 있는 피임 지식, 피임도구를 사용할 수 있는 기술, 피임에 대해 상대와 대화할 수 있는 태도를 모두 포함한다.
학교에서는 피임과 피임을 위한 도구 들에 대한 정보를 안내받는다. 그리고 성병까지도 예방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피임도구인 콘돔 착용법을 배운다. 모든 아이들이 실습할 수는 없지만 원하는 아이들이 대표로 나와서 남자 성기 모형에 실습을 하고 다른 아이들은 관찰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그럼 45분은 끝나 있다.
그래서 아이들의 콘돔 교육은 실패한다. 아이들은 콘돔에 대해서도 알았고 착용법도 배웠는데 왜 실제 성관계를 경험한 아이들 중에서는 콘돔 사용률이 낮을까? 이 질문 자체가 불편한 사람들도 있다. 콘돔 사용률에 대한 설문은 다양한 감정의 온도를 확인하게 해 준다.
'애들이 성관계를 경험했다고? 날라리 같은 것들이 공부는 안 하고 무슨 연애질이야.'라는 말을 하며 분노하는 어른부터 '애들이 이걸 쓰면 안 되지. 그냥 알려준 것이지 쓰라고 알려주는 것은 아니에요. 성관계에 대해 겁을 줘야 해요. 무서워서 안 하게.', ' 다른 애들은 모르겠고 우리 애는 몰라도 돼요. 우리 애는 순진하거든요.' 라며 눈을 감는 어른까지 다양하다. 하지만 이런 접근은 질외사정을 피임 방법이라고 말하는 상대의 말을 믿거나 주방에서 쓰는 식품용 랩을 콘돔 대신 써도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어떤 이는 콘돔 교육이 문제가 아니라며 다른 대안을 제시했다.
'학원을 여러 개 보내고 틈을 주면 안 돼, 용돈을 없애. 성관계 장소를 못 구하게!'
수업시간에 중3 남자아이들이 말한 장소는 돈이 필요하지 않았다. 학원 화장실, 아이들이 등교하기 전 이른 아침 교실, 아파트 옥상, 맞벌이하는 부모님이 있는 친구네 집 안방.
'콘돔을 애들한테 팔지 마!' 그럼 다시 질외사정과 주방용 랩.
모든 아이들이 성관계를 한다는 것도 아니고 하라는 의미도 아니다. 그냥 성관계에 대해 무조건 하지 말라고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를 써볼 수 있도록 도와주라는 것이다. 아이들이 여러 상황에 대해 예측할 수 있는 과정과 결과를 생각해보고 판단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면 자신을 일부러 위험으로 밀어 넣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럼 아이들과 함께 가상의 시나리오를 써본다.
연인과 여행을 가기로 했어. 그럼 가방에 꼭 있어야 하는 것은?
촛불, 향수, 예쁜 속옷, 블루투스 스피커....
중요한 게 안 나왔어. 바로 콘돔이야.
에이~ 저는 손만 잡고 잘 건데요. 저희는 성관계 안 할 거라 괜찮아요.
필요해. 계획은 감정에 의해 지켜지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안전장치 같은 거지.
그거 못 사요.
왜? 안 팔아? 그거 나이 제한 없는데?
쪽팔려요. 이상하게 본 단말이에요. 아님 어른처럼 변장하고 사던가. 그래도 사기 어려워요.
그래? 친구가 집에 있는 거 하나 갖다 준대. 다음은?
아싸! 쓰지 않을 거지만 공짜니까 챙겨요.
아니, 유통기간 확인.
고무도 썩어요? 헐?
아니 삭아. 유통기한 여기 있지?
오~ 나 첨 알았어!!!
유통기한 확인했어. 기간 충분.
콘돔을 사는 것이 어려워서 쓰지 못할 것이라고 했었는데, 이제 콘돔이 생겼으니 만약 성관계하게 된다면 사용할 수 있을까?
네!!!
아니, 지금부터가 시작이야.
가방 속 콘돔을 본 상대가 '날 성적 욕구를 채우기 위한 도구로 생각했어? 오늘 그거 하려고 여기 온 거야? 더러워!'라고 한다면?
콘돔에 대한 동의가 됐어. 성관계 중에 콘돔을 언제 끼워야 하는데 타이밍은? 누가?
콘돔은 하나밖에 없는데 거꾸로 끼웠어. 하나 더 필요해, 누가 사러가? 사러 가긴 할 거야?
성관계를 시작하려고 누웠는데 가방 속 콘돔이 생각났어. 옷 벗고 가방까지 갈 수 있겠어?
콘돔 사용해도 100% 피임 아닌 것 알지? 임신하면 어떻게 할 거야? 상대도 알고 있는지 확인했어?
다음 월경까지 상대와 함께 걱정할 수 있어?
아기가 생기면 누가 돈 벌 거야? 지금 취업이 가능해? 부모님이 키워주시는 것은 동의받았어? 서로의 꿈을 알고 있어? 임신과 출산, 육아로 원하는 진학을 하지 못하거나 직업을 얻지 못하게 된다면 어떻게 할 건데?
으아! 피곤해! 그냥 안 하고 말지. 그거 하나 해보겠다고 저런 미래 계획까지 세워야 해요? 그냥 한번 즐기는 건데요.
나와 성관계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꼭 물어봐. 내가 성관계를 원할 때도 상대에게 물어봐줘야지. 그래야 주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을 테니까.
시나리오 플래닝 됐어?
가상의 미래를 그려보고 대책을 세우는 것은 '기업'을 운영할 때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내 삶에도 꼭 필요한 능력이다.
성적 흥분을 극대화하기 위해 가상으로 만들어진 영상을 보고 사랑을 배우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큰 고통을 줄 수도 있다. 화장실, 옥상, 교실 같은 장소는 콘돔을 사용하기에 적합하지 않고 상대의 동의를 받지 않았을 가능성도 높다. 당시의 욕구를 참지 못하고 서로 합의하에 했다고 하더라도 임신까지 합의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스킨십과 성관계는 즐겁고 짜릿한 것만 있는 것이 아닌데도 책임과 신뢰라는 가치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가벼운 쾌락만 보여준다. 아이들은 이 쾌락에 쉽게 빠져든다. 그리고 학원 화장실이라는 성적 판타지를 갖게 된다. 첫 경험 장소로 아름다운 해외의 풀빌라를 꿈꿨던 여자아이와 학원 화장실을 꿈꾸던 남자아이. 두 사람이 만나서 이야기하는 안전한 장소가 학교 성교육시간이다. 서로가 묻고 싶은 질문과 꼭 해야 하는 질문들을 듣고 답하는 시간이 진짜 콘돔 수업에서 필요한 내용이다.
스킨십에 대한 대화, 동의와 거절은 스킨십이 시작됐을 때 하기가 어렵다. 상황 안에서는 이성적 판단보다는 거부당했다는 서운함과 분노의 감정이 더 크기 때문이다. '뽀뽀해도 돼?'라는 질문이 찌질하게 생각됐다는 것은 서로 스킨십에 대한 가치관과 동의에 대한 대화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대화가 끝난 상태라면 그것을 세련되게 질문하는 아이디어가 부족했을 수도 있고. 꼭 뽀뽀의 허락을 구할 때 말을 할 필요는 없다. 야구에서 투수와 포수가 수신호로 전략을 주고 받듯 허락을 구하는 질문, 승낙과 거절의 표현을 미리 정해 놓은 수신호로 물어보고 동의를 확인 할 수 있다.
여기서의 핵심은 스킨십과 관련된 대화의 시간이 꼭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 대화 자체가 불편하면 동의를 구하는 질문과 솔직한 답변. 기꺼운 동의를 주고 받는 과정이 모두 괴롭게만 느껴질 것이다. 사랑하니까 상대도 내마음과 같겠지라는 생각은 착각이다. 일심동체라는 말은 둘중 누구하나는 사라져야 한다는 뜻이다.
사랑을 시작한다는 것은 대화를 통한 관계 맺기가 시작된 것이다. 몸의 관계 맺기만이 아니라 한 사람의 과거, 현재, 미래를 만나게 되는 시간들이다. 그 사람의 생각을 듣고 조율하고 가까운 미래를 함께 얘기하는 것이 맛집 투어나 인생 사진을 남기는 것에 밀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수업시간에 진행하는 콘돔 실습 반대 민원을 넣거나 아이들에게 피임방법을 가르치지 말라고 말하기 전에 우리는 가정에서 콘돔이라는 지식과 기술을 뺀 나머지는 잘 가르쳐 왔는지를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어쩌면 부모들의 두려움은 본인이 하지 못한 교육에서 나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사람들 대하는 태도와 진솔하게 자신의 생각을 나누는 방법을 아직 가르치지 못했으니 학교에서 가르쳐줬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부모들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면 학교는 또 다른 종류의 민원을 받게 된다.
쓸데없는 것 가르치지 말고 영어 단어나 더 외우게 해요!
이 말에 선생님들이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아왔는지 들어서 알고 있다. 그래서 학교는 갈팡질팡한다. 민원을 내가 대신 막아줄 수도 없고 성교육 과목을 만들어서 12년 내내 가르치는 것이 시행 되더라도 우리 아이가 학교 다니는 시기와 맞지 않을 수 있다. 교육이 바뀌고 어른들 인식이 언젠가는 바뀌겠지만 우리 아이들이 학교를 다닐 때는 아닐 수 있다. 그러니 기다리지 말고 그냥 집에서 시작하자.
내가 첫사랑이야?
'아들, 네가 혹시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넌 어떻게 말하고 싶어?
엄마는 이렇게 말하지 못했어. 그런데 과거의 내가 이 질문을 또 받는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