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로 통보받은 이별의 맛

사랑했던 사람에 대한 마지막 예의

by 한희

초등학교 6학년 성교육 시간에 '첫사랑은 성공할 수 있을까?'를 주제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한 학생이 손을 번쩍 들면서 '우리 엄마 아빠는 성공했대요'라고 말했다.


그럼 혹시 다른 친구들 중에도 있냐고 물었더니 그 학생 빼고는 모두 서로를 둘러볼 뿐이었다. 부모의 연애사가 관심이 없어서 물어본 적도 없고 부모가 말해주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이라 손을 드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한참을 두리번거리던 아이들이 말한다.


'우아~ 첫사랑 쉽지 않네~'


아이들은 첫사랑의 성공 가능성이 낮다는 것을 알고는 안심하고 또 슬퍼했다. 이미 첫사랑에 실패한 아이들은 다들 그렇게 실패한다는 사실에 아픈 마음을 위로받고 사랑을 열렬히 하고 싶은 아이들은 앞으로 시작할 사랑이 실패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가슴이 아픈가 보다.


부모님과 살지 않거나 한부모 가정이어서 부모의 연애 스토리를 잘 모르는 학생들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걸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만나서 사랑하고 결혼, 이혼, 임신을 하는 모든 과정이 다 선택이라는 것을 설명하는 시간은 꼭 필요하다. 혹시라도 부모의 이혼이 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아이들이 있다면 더욱 중요한 시간이다. 아이들은 간혹 자기가 말을 잘 들었으면 부모가 싸우지 않고 이혼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서로 갈등이 생기고 이혼을 하는 것은 100% 그들의 문제지 너희들의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해주고 부모의 이혼이 자기 탓이라고 말하는 친구를 만났을 때는 꼭 말해주라는 당부도 잊지 않는다.






네 잘못이 아니야. 그냥 두 분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달라서 그래.






그리고 지금은 함께가 아니더라도 엄마, 아빠가 사랑했을 때 감정을 의심하지는 마. 그때 두 분의 마음은 진짜였어.


사랑을 시작할 때는 영원한 사랑을 꿈꾸지만 뜨겁게 불타는 사랑은 영원하지 않다. 가슴 두근 거리는 사랑이 계속된다는 것은 심장에 과부하를 만들어 내고 이것은 건강에 치명적일 수 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가슴 두근거리는 사랑은 편안함과 친밀감을 주는 사랑으로 업그레이드된다. 하지만 때론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나 나의 마음이 변해서 사랑이 끝나기도 한다. 내 마음이 변하지 않았고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이 생긴다 하더라도 상대의 마음을 존중하고 보내줄 수 있는 것이 사랑이다.


문자로 '이제 안녕'이라고 이별 통보를 했다는 남학생의 말에 여자아이들이 야유를 퍼부었다.

'그게 왜 잘못이야. 말은 해줬잖아. 잠수 탈 수도 있었어!'라며 억울해했다. 그러자 곁에 있던 남자아이가 여자아이한테 문자로 이별 통보를 받고 어떤 마음이었는지를 말해주며 '만나서 눈을 보고 하는 이별'이 사랑했던 사람에 대한 마지막 예의라고 말했다. 그래서 자기는 만나서 이별을 다시 통보받았다고 한다. 진지한 얼굴에 슬픔이 지나가는 것을 보니 마음이 짠했다. 친한 친구들도 이런 이야기를 처음 듣고 놀라워했는데 6학년 중에는 사랑을 떠벌리며 허세를 부리는 아이들도 있지만 이렇게 진심을 담아서 사랑을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어떤 면에서는 어른보다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꼬맹이들의 사랑을 아이들의 장난 같은 일이라며 웃어넘겨 버리기엔 그들은 너무 진지하다. 그리고 존중을 바탕으로 한 사랑에 대해 깊이 고민해보지 않은 아이들의 호기심은 사랑의 이름을 달고 위험하게 변질되기도 한다.




난 네가 참 좋아


나도 좋아


우리 특별한 사이 맞지?


응, 맞아.


그럼... 특별한 사이라는 증거를 대봐


뭐? 뭘... 증명해야 해?


남들한테 해주지 않는 거 해줘


그게 뭔데


너 성기 보여줘, 내 것도 보여줄게. 우린 특별하고 믿는 사이니까 괜찮아.



놀란 여자아이는 엄마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학교는 뒤집혔다. 그리고 남자아이는 전학을 갔다. 여자아이는 계속 학교를 다니지만 남자아이들을 볼 때면 자기가 좋아했던 그 남자아이의 배신이 떠올라서 힘들어했다.

한 사람의 진심은 한 사람의 호기심과 성적 욕구를 채우기 위한 도구가 될 때 무참히 깨지고 부서진다.


그런 사람을 내가 좋아했다는 죄책감과 멀리서 지켜봤던 시간들, 그 아이의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했던 순간들이 자꾸 떠올라서 여자아이를 더 힘들게 한다.


꼭 성기를 보여달라는 요구가 아니더라도 자신의 여자 친구와의 카톡 내용을 친구들과 돌려보다가 걸려서 깨지는 커플도 있고 진도가 어디까지 나갔냐는 집요한 질문에 상대와 있었던 일들을 얘기했다가 상처를 입히기도 한다.

'영희는 철수를 좋아한대요~ 좋아한대요~ ' 좋아하는 감정이 부끄러운 것이 아님에도 어렸을 때는 이걸 가지고 놀려댄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놀림거리였던 저학년에서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 것이 자랑거리가 되는 고학년까지. 아이들의 감정은 발달하는데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예의와 존중의 방법은 배우지 못하고 그렇게 반쪽짜리 연애를 시작한다.













아들이 6학년 때 '엄마가 알을 낳았대'라는 그림책을 유심히 보다가 달려와서 묻는다.

출처: 엄마가 알을 낳았대


엄마, 엄마는 아빠랑 어떤 체위로 날 만든 거야?


체위라는 단어도 알아?


어, 성관계할 때 자세 말하잖아. 친구들이 말해줬어.


어떤 체위야?


음... 기억이 잘 안나


쳇, 숨기는 거 봐. 나도 이제 비밀 만들 거야.


정말 기억이 잘 안나, 한 가지 자세만 하지 않기도 하고. 그리고 중요한 건 아빠의 동의가 없어서 말해줄 수가 없어.


뭐야... 아빠가 말하지 말랬어? 그냥 말해줘.


아니 그런 얘기 안 했지만 그건 사랑하는 사람과 지켜야 할 약속이야. 사랑하는 사람과 있었던 일을 자랑하듯 다른 사람에게 말하거나 동의 없이 말하는 것은 해서는 안돼.


이건 사랑의 원칙이지. 변하지 않아. 너도 잘 기억해. 그건 말하지 않아도 꼭 지켜야 할 약속이야.


그리고 아무리 친한 사이여도 그것을 물어보는 자체도 선을 넘는 거지. 성관계나 스킨십은 사적인 영역이야.



사랑을 시작하는 아이들에게 우리가 꼭 알려줘야 하는 것은

나의 호기심과 자랑을 위해, 욕구를 채우기 위해 사랑을 도구로 쓰지 않기.

상대가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사적인 영역 존중하기.




누군가를 100%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랑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존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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