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친구 엄마들과 아이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밥을 먹을 기회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한 엄마가 아이에게 하던 말이었다. 그러자 아이가 정색하면서 얘기한다.
아이 : 엄마, 나 지금 피아노, 미술, 태권도, 바둑, 축구를 다니고 있잖아요.
엄마 : 야! 그게 무슨 학원이냐. 노는 거지. 영어, 수학, 과학. 이런 걸 배우는 게 학원이야. 그건 노는 거지.
밥을 먹으며 듣고 있던 아이들이 입을 모아 외쳤다.
"내가 좋아서 하는 거 아니면 다 학원이에요!"
저학년의 경우 영어, 수학 학원을 집중적으로 보내지 않는다. 아직 어리니까, 앞으로 시간이 없을 테니까 저학년 때 끝내야 한다고 생각해서 피아노, 미술, 태권도, 수영, 축구 등 예체능 학원에 집중한다. 그리고 고학년이 되면 국, 영, 수, 과 학원으로 바꾼다. ‘우리 애는 학원 안 보내요.’라고 자신 있게 얘기하는 엄마들, 그리고 나조차도 예체능은 학원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들의 대답을 듣고 난 후에는 '하고 싶냐는 질문'을 먼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질문은 참 어려운 질문이다. 아이에 입에서 나온 답이 '아니, 싫어'일까 봐...
아이들은 여러 이유에서 학원에 간다. 엄마들의 미래에 대한 불안, 아이가 잘 컸으면 하는 바람, 내가 없는 동안 안전하게 지켜줄 것에 대한 믿음의 응집체가 바로 학원이다.
왜 사교육 시장으로 아이를 몰아넣었냐고, 아이들에게 놀이 시간을 주라고, 엄마들 잘못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우리 집 와서 아이좀 봐달라고' , ' 내가 원하고 좋아하는 일 하면서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나라에 살게 해 달라고' , ' 우리 애가 다른 아이들과 다른 길을 걷는 다고 할 때 비교하고 비난하지 말라고',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안에서 하는 실수들과 방황들을 이해하고 기다려 줄 수 있냐고' 말이다.
애가 조금만 문제행동을 하면 대개는 엄마에게 화살이 꽂힌다. '집에 엄마가 없어서, 일하는 엄마 집 애들은 다 저 모양이지, 집에 있으면서 엄마는 뭐 하는 거냐고..'
애가 학원을 안 다닌다고 하면 지금 안 하면 따라잡기 어렵다, 애를 왜 방치하냐는 말이 엄마에게 돌아온다.
말하는 사람들이 곁에서 바람을 넣고 엄마의 죄책감의 불씨는 이 바람을 받아서 활활 불타오른다.
왜 이 질문과 답들에는 아빠가 없는지 궁금하다. 엄마나 아빠, 둘 중 하나만 있거나 아님 부모가 아닌 양육자들에게는 어떤 욕과 부담, 책임이 추가될지... 가슴이 답답해서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박시가 1학년 되기 전까지 강의가 많아서 새벽같이 아이를 맡기고 강의장으로 달려갔다. 열이 나는 아이를 학교에 보내며 마음 아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그런 마음으로라도 일 할 수 있었던 것은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는 학교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가 다니는 학교는 규모가 작아서 신청하면 모두 돌봄 교실에서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학교 엄마들은 돌봄에 지원한 아이들이 많아서 뽑기를 한다고 했고 뽑기를 하는 날이면 걱정을 가득 안고 뽑기를 하기 위해 줄을 서거나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리곤 했다. 그리고 돌봄이 끝나는 5시 이후에는 학원 한 두 가지를 넣어서 부모가 퇴근해서 집에 들어오는 시간, 7시를 맞출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았다. 그나마 학기 중에는 학교와 방과 후가 있으니 시간을 채워줄 수 있지만 방학이 되면 불안은 하늘을 찌른다.
돌봄도 방학이 있고 학원들도 방학 기간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 방학기간 아이가 혼자 집에 있지 않도록 일하지 않는 엄마에게 부탁을 하거나 부탁이 어려우면 아이에게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얘기한다. 그런데 도서관 휴관일과 겹치는 날이면 아이는 집에 혼자서 9시간 이상을 있어야 한다.
3학년이 되면 그전까지 했던 고민이 행복한 고민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제 돌봄 교실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방과 후를 매일 넣고 방과 후 시간을 모두 학원으로 채운다. 그리고 간식비를 주며 학교 앞 분식집 앞에서 뭐라도 먹으라고 일러두고 3학년이 되기 전 주말마다 동선을 연습시킨다. 시어머니나 친정엄마가 가까이 사는 엄마들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물론 그들 나름대로 미안함과 부담감, 그리고 내가 상상하지 못할 어려움이 있겠지만 가족의 지원이 전혀 없는 워킹맘은 멀리서 바라보며 그저 부러웠다.
박시도 1학년까지 이런 삶을 살았다. 차가 막혀서 늦게 가는 날이면 피아노 학원에 혼자 앉아 있거나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어야 했다. 그리고 피아노 학원이 없는 날에는 돌봄 선생님과 교문 앞에서 날 기다리며 서있던 적도 있었다. 박시는 엄마가 제시간에 안 올지도 모르는 두려움이 늘 있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 놀이시간을 어떻게 줄 수 있단 말인가?
일하는 엄마는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아이들이 놀기 바란다 하지만 그 울타리는 지금 사교육이 담당하고 있다. 사교육은 결과물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아이들을 놀릴 수 없다. 전업주부는 아이들을 마음껏 놀릴 수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아니다. 일하지 않는 죄(?)로 아이들의 성적은 모두 엄마 책임이다. 집에서 놀면서 왜 아이 교육은 이 모양이냐고 얘기한다. 일하는 엄마는 일하는 엄마라 애 인성 이 모양 만들었다고 하고 일 안 하는 엄마는 집에서 하는 일도 없이 애 교육 똑바로 못 시켰다고 욕먹는다. 참 피곤하다.
물론 충분히 놀 수 있는 자원이 많음에도 아이들을 사교육으로 몰아넣는 부모들도 있다. 권력의 자리를 선점하라고, 또는 힘을 가져야 행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심어주기도 한다. 때로는 공부 잘하고 성공해서 돈을 많이 버는 것이 행복의 조건이라고 알려주는 부모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렇게 해서 행복한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 부모라고 생각한다. 한 가지 길이 있다고 몰아가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길 안에서 네가 원하는 것을 기억하고 길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알려주는 부모가 되고 싶다.
지금 이 세상에서 아이들이 논다는 것은 가장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아이들의 교육과 양육에서 아버지란 단어를 찾는 것은 더, 더, 더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엄마가 되고 알았다.(물론 아빠, 다른 사람이 교육, 양육을 담당하고 있는 가족도 있다. 이 생각은 우리 가족, 내 경험에서만 나온 결론이다. 시간이 지나면 이것도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 믿지만 적어도 나의 현재는 그런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