깍두기, 그 맛난 존재

놀이에서 깍두기 빠지면 뭔 맛?

by 한희

놀이에서 깍두기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는가?

만약 알고 있다면 정말 반갑게 인사하고 싶다. 예전에는 아이들만 깍두기를 몰랐는데 지금은 깍두기가 뭐예요? 라고 묻는 젊은 부모들도 자주 만나게 된다. 2~30대의 부모들도 생소해 하는 깍두기.

놀이에서 깍두기란 다양한 역할로 사용됐다.


첫 번째, 짝이 맞지 않을 때.

둘로 나뉘어 하는 팀 대항 형태의 놀이에서 홀수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다. 이때 깍두기는 쉽게 놀이를 진행할 수 있게 도와준다. 보통 짝이 맞지 않을 때 사용되는 깍두기는 있으나 마나한 능력을 가진 동생들이 하게 된다. 어디 들어가도 대세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동생. 인심 쓰며 상대팀에게 깍두기로 내어준다. 깍두기 하는 동생은 기분이 나쁠 수도 있지 않냐는 걱정을 할 수도 있는데 형님들 놀이에서는 깍두기 아니면 끼워주지도 않기 때문에 이도 감지덕지 하며 받아들인다.

놀이에 따라 두 번 뛰게 할 경우도 있다. 그냥 너 가져! 하고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팀에서 한번, 상대편에서 한번. 이렇게 두팀 모두에서 뛰는 것이다. 잘하는 깍두기 두팀에서 뛴다는 점은 같으나 몫을 살리거나 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마음은 굴뚝 같겠지만 아직 능력이 높지 않기 때문에 다른 아이들도 큰 기대를 하지는 않는다.


두 번째, 능력자가 존재할 때

정말 잘하는 친구가 있다면 그 아이는 꼭 깍두기를 시킨다. 실력차가 크면 놀이가 재미없기 때문에 이 친구를 깍두기 시켜서 두 팀 모두에서 뛰도록 한다.고무줄, 비석치기 등과 같은 놀이는 잘하는 같은 편이 다른 아이들의 몫을 살릴 수 있는 규칙이 있는데 이때 깍두기가 맨 마지막에 뛰면서 죽은 아이들의 몫을 살리는 역할을 한다. 물론 깍두기가 상대팀에서 더 잘 뛸 때 억울해하는 아이들도 있지만 깍두기도 사람이라 매번 최고의 기량을 발휘할 수 없다는 것을 아이들도 잘 안다. 깍두기도 편애를 한다는 오해를 받고 싶지 않아서 공정하게 하려고 최선을 다한다. 잘하는 아이가 깍두기를 할 때면 유명한 의사가 집도를 하는 수술대의 느낌이 나기도 한다. 3~4명의 아이들이 자신의 팀을 살려줄 것이라는 기대를 가득안고 손에 땀을 쥐며 깍두기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운명은 모두 너에게 달렸어!라는 기대를 한 몸에 받는 깍두기는 행복한 부담을 경험하게 된다.

놀이를 할 때 깍두기는 어떤 상황에서도 놀이를 이어가겠다는 아이들의 노력이었을 것이다. 아이들이 많지 않은 동네, 동생들과 함께 놀아야 하는 상황에서 재미있게 놀 궁리를 하며 만들어낸 방법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한명의 구성원도 빠지지 않게 놀이 공동체 안에 참여시키고 역할을 주어서 참여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리고 능력이 부족한 아이들은 깍두기로 두 번씩 뛰면서 충분한 기술 연습을 했고 나중에는 능력자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능력자로 성장한 아이는 나중에 동생들이 함께 놀아달라고 할 때 형님들이 했던 것처럼 깍두기의 기회를 선사할 수도 있다. 이런 의도하지 않고 계획하지 않은 관계의 선순환이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곳이 바로 골목길이었다.

누군가는 이렇게 얘기할 수 있다.

뭐, 자기들 재미있자고 한건데 그걸 그렇게 거창하게 해석할 필요가 있냐고. 뒷걸음질 치다가 쥐잡은 꼴이지. 동생들 안보면 혼나니까 울며 겨자먹기로 한거지 좋은 의도로 한 건 아니지 않냐는.

맞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어떤 이기적인 시작이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하나는 확실하다. 지금 아이들이 하는 이기적인 행동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짝이 맞지 않으면 친구한테 ‘야! 넌 빠져’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한다. 그리고 놀이를 못하는 친구한테도 ‘넌 못하니까 (네가 들어오면 우리팀이 지니까) 넌 빠져’라고 얘기한다.

친구들 사이에 경쟁이 치열해지고 학교는 경쟁을 더 부추긴다. 그 사이에서 놀이는 경기고 또 하나의 경쟁의 자리로 전락했다.

지면 어때? 다음 판에 다시하면 되지, 술래가 되면 어때? 술래가 되도 재미있는데. 죽으면 어때? 내 친구가 다시 살려줄건데.

이런 믿음은 아이들의 마음속에서 영원히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이기적 목적에서 시작 된 깍두기여도 좋다. 그냥 우리 아이들안에서 깍두기가 되살아났으면 좋겠다.

이전 07화다방구, 영웅의 탄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