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방구, 영웅의 탄생

내 삶의 영웅은 내 곁에 있다

by 한희

어린 시절 '다방구'라는 놀이를 많이 했다.

술래에게 잡혀 전봇대에 매달려 있으면서 친구가 '다방구'하면서 자유를 선물하기만을 간절히 기다린다. 어디서 달려 나올지 모르는 친구를 애타게 찾으며 또는 우리 편을 잡으려고 혈안이 된 술래 녀석을 방해하며 밀당을 한다. 그리고 친구의 손이 나에게 닿는 순간, 난 지금까지 모아놓은 모든 힘을 다해 밖으로 멀리 튀어나간다.

그때 기분은 세상을 다 얻은 느낌이랄까?

다방구라는 놀이는 2~3명의 술래(놀이 인원에 따라 다름)가 놀래(술래가 아닌 아이들)을 잡아서 기둥에 가둬 놓는 놀이이다. 술래들에게 잡힌 놀래들이 길게 손을 잡고 자신을 구해줄 다른 친구를 기다리고 있으면 술래들의 눈을 피해 아직 잡히지 않은 놀래가 아이들을 ‘다방구’ 하면서 치고 아이들은 다시 자유를 얻는다.


어느 날 박시의 오랜 친구들(어린이집을 함께 다닌)과 다방구를 할 때였다.

지성(가명)이는 달리기가 다른 친구들보다 느린 편이라 놀이에서 술래가 되거나 죽는 경우가 많았다. 다방구라는 놀이는 빠르게 뛰는 것이 중요한 기술이기 때문에 지성이에게는 불리한 놀이다. 놀이가 한참 진행되고 모든 놀래가 잡혀서 술래 곁에 길게 서있었다. 그리고 살려줘를 외치며 자신들의 편을 부르고 있었는데 뛰고 있는 놀 래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자 술래는 승리를 직감하고 있었다.


“야! 니들 다 잡혔어, 가위바위보 해!”

그랬더니 한 아이가

“아니야 지성이가 없어. 지성이는 살았어.”


그렇다. 뛰는 것이 느린 지성이는 어딘가에 숨어있었다. 술래는 지성이를 찾으러 다니기 시작했다. 지금 지성이가 나타난다면 지성이는 반드시 잡힌다. 다른 아이들을 살리고 나면 잡힐 것이 분명한데 나올까?... 아 놀이가 정말 길어지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아이들이 외치기 시작한다.


“지성아! 살려줘!”


그 순간! 풀숲에 숨어있던 지성이가 나타나서 친구들을 치며 ‘다방구’ 외쳤고 아이들은 ‘와~하면서 자유를 만끽했다’ 지성이는? 바로 잡혀서 포로가 되었다.

하지만 지성이의 표정은 포로의 표정이 아니라 동지를 살린 독립투사의 의연하고도 자신만만한 표정이었다.

그 후로 많은 아이들이 지성이와 같은 상황에 처했었지만 그 누구도 자신의 생명을 걸고 용기를 내어 친구들을 살린 아이는 없었다. 아이들이 살려달라고 외쳐도 다른 아이들은 그 ‘용기’를 내지 못했고 결국은 잡혀서 놀이가 끝났다. 아이들은 그 모습을 보고 지성이가 대단한 거였네, 그거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네...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모두가 느꼈을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힘들고 큰 용기가 필요한지. 그리고 그 후로 달리기를 좀 못해도, 순발력이 좀 부족해도, 상대를 밀어붙이는 힘이 없더라도. 지성이는 영원한 영웅이었다.

그리고 한참... 시간이 지난 후 아이들이 수다를 떨다 이야기를 한다.

그때 기억나? 우리가 다 잡혔을 때 숨어있던 지성이가 달려와서 우리를 풀어줬었잖아!

그래서 난 골목길 놀이가 좋다. 공부에 흥미가 없어서 어떤 교과목 시간에도 주목받지 못하고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라도 놀이에서 만큼은 반짝일 수 있고 영웅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모든 놀이에서 최고가 될 필요는 없다. 그냥 내가 잘하는 놀이 하나를 찾으면 그 놀이할 때만큼은 날아다닐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게 무슨 의미냐고 얘기할 수 있다. 모든 놀이에서 능력을 발휘해야 그게 진정한 능력자가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능력자가 되는 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이 있고 그것으로 누군가를 도와서 우리 팀을 살릴 수도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이다. 세상과 긍정적인 관계를 맺고 있지 않은 천재, 능력자들은 세상을 파괴하고 사람들을 잔인하게 괴롭힐 수 있는 괴물이 되기도 한다. 똑똑함으로 의사, 판사, 변호사, 경찰, 선생님이 되어서 사람을 살리고 공정한 사회를 위해 싸우며 사람을 키우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또 어떤 이들은 같은 직업에 종사하며 상대를 도구로 이용하고 짓밟으며 자신의 욕망을 해소하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나의 뛰어남이 자신의 성장과 발전, 이익에 도움이 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나의 뛰어남이 나의 삶을 개선하는 데만 쓰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몸담고 있는 공동체와 사회를 위하고 살리는데도 사용됐으면 하는 바람일 뿐이다. 그리고 아이들이 놀이에서 그 기쁨을 느껴봤으면 좋겠다.


우리의 영웅은 TV에 있지 않았다. 바로 내 곁에 있는,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나의 친구였다. 그 친구는 내가 힘들 때 언제든 달려와서 외쳐줄 것이다. '다방구!'






나는 놀이를 하다가 아웃을 당했을 때 죽었다!라는 표현을 쓰는 게 좋다. 그러면 놀이를 함께 하는 아이들이


“선생님 죽었다는 말은 너무 잔인해요. 그냥 아웃이라고 하면 안 돼요? ”라고 묻기도 한다.


하지만 난 아웃이라는 말보다는 죽었다는 말이 더 우리의 놀이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살아났을 때 부활의 기쁨을 더 잘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웃이라고 말하면 다시 살아나는 것은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 인이라고 하나? 그럼 내 친구가 날 살려줘서 놀이로 돌아올 땐 뭐라고 얘기해야 하지? 같은 편 아이들에게 내 몫을 살려달라고 외칠 때 뭐라고 외쳐야 하나. 복잡하고 자연스럽지 않다.

난 그냥 죽었다가 좋고. 살려줘~라고 얘기할 때 간절함이 좋고. 이야! 살았다!라고 얘기할 때의 그 쾌감이 좋다. 그래서 놀이에서 난 아웃이란 말을 쓰지 않는다. 금을 밟고 죽은 건 그냥 죽은 거다. 하지만 놀이에서의 죽음은 곧 부활을 의미하고 또 바로 돌아올 다음 삶을 준비하는 시간을 뜻하기도 한다. 영원한 죽음이 아니기에 친구에게 기대어 희망을 걸어볼 수 있는 시간을 선물 받기에 난 그 죽었다가 진짜 삶에서의 죽음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죽었다는 말이 하나도 잔인하지 않다. 아이들도 놀다 보면 놀이에서 하는 죽었다와 친구가 화나서 너 죽었다고 하는 말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 아이들이 놀이 안에서 더 많이 죽고 다시 부활하기를 바란다. 부활을 못하면 ‘한판 더’를 외치는 끈기와 용기, 낙관을 배웠으면 좋겠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서도 그 경험이 삶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죽을 것처럼 괴로운 상황에서도 다시 부활의 기회가 온다는 것을 믿고 버텨내는 힘. 지금은 세상이 끝난 것 같지만 그럴 땐 또 한판을 외치면 된다는 것. 그리고 어려운 순간에도 난 혼자가 아니라는 믿음을 가지기를 바란다.

그래서 놀이가 중요하다고 외치는 것이다.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지식을 쌓아서 안전하고 편안한 길을 알려주려고 한다. 하지만 남보다 뛰어난 지식은 편한 길을 알려줄 수는 있어도 넘어지는 것을 막아줄 수는 없다. 잘 닦인 길에서도 예상하지 못한 사고가 있을 수 있고 그땐 얼마든지 넘어질 수 있는데 그때 항상 부모가 손을 내밀어 줄 수는 없다. 그때마다 손을 내밀어 줄 수 있는 것은 바로 내가 경험으로 알게 된 믿음이란 친구다. 책에서 외운 명언이 아니라 내가 놀면서 배운 나와 세상, 사람에 대한 믿음이 넘어질 때마다 아이를 일으켜 줄 것이다.

지금의 실패가 인생의 실패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아이들이 소리 높여 외치길 바란다.


“얘들아! 한판 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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