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심심해...”
다리를 붙잡고 ‘심심해’를 외치는 아이에게 놀이터에 가면 친구들이 있을 테니 놀이터에 가서 놀라며 내보냈다. 그런데 집 앞 놀이터에 나갔던 아이가 금세 들어온다.
“왜 이렇게 일찍 왔어? 친구들 없어?”
“어, 친구들 없어. 친구 아니라 아무도 없어.”
학부모 연수에서 학부모들에게 놀이에 필요한 세 가지 요소가 무엇인지 질문을 한 적이 있다. 그러자 한 아버지가 손을 높게 들고 자신 있게 외쳤다.
"놀 시간과 장소. 돈이죠. 요즘은 돈 없으면 못 놀아요."
그 말에 여기, 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런데 한쪽에서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학부모들도 있었다. 놀이라는 단어를 듣고 놀이동산이나 키즈카페, 체험학습, 장난감을 가장 먼저 생각했다면 돈이라고 얘기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것들이 진짜 놀이를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진짜 놀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바로 함께 놀이할 친구이다. 그래서 놀이가 정말 어렵다고 말하는 것이다. 내가 놀이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아이에게 놀 시간을 준다면 놀이 시간을 확보한 아이는 놀 장소를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놀이터라는 이름을 붙이고 서있는 그곳이 있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놀이 친구다. 친구가 어디에도 없다. 모두 학원에 가 있어서 학원 안 다니는 친구를 찾아야 하는데 한 반에 1~2명 있을까 말까 하다. 그래서 선택을 해야 한다. 학원 안 다니는 아이와 친해지게 하던가 아니면 친구가 다니는 학원에 아이를 보내는 것이다. 그러면 이동하는 차 안에서, 학원 쉬는 시간에, 수업시간에 눈치 보며 놀 수 있다. 그리고 운이 더 좋으면 학원 끝나고 놀 시간이 생길 수도 있다.
아이들은 그 운 좋은 날을 기다리며 학원에 간다.
아이들에게 진짜 놀이가 시작되려면 안전하다고 느껴지는 환경이 필요하다. 그래서 가장 좋은 곳은 집 앞의 놀이터이다. 과거에는 차가 많이 다니지 않는 좁은 골목길이었으나 이제는 골목을 찾아보기 힘들고 골목이 있다 하더라도 차들이 많아서 놀이하기에는 위험하다. 물론 집 앞 놀이터가 100점짜리 놀이 장소라고 얘기하기는 힘들다. 놀이기구가 바닥 놀이를 어렵게 한다. 천편일률적으로 만들어진 놀이기구는 타는 용도 이외에 쓸모가 없다. 차라리 아무것도 없는 장소가 놀이판을 그리고 놀기에 더 편하다. 특히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바닥은 여름엔 뜨겁고 시간이 지나면 부서져서 넘어졌을 때 흙바닥 보다 더 많은 상처를 남긴다. 게다가 요즘은 모래놀이 공간도 사라지고 있는 곳이 많아지고 있어서 자유로운 놀이의 도구들이 많지 않다. 모래 놀이 공간이 있어도 고양이 배설물 때문에 위험하다고 아이들을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 아이들이 들어가지 않으니 동네 주민들의 담배 피우는 장소가 되어 모래 안은 담배꽁초가 가득하다.
가장 좋은 곳은 흙과 넓은 공간을 제공할 수 있는 학교 운동장이지만 그곳은 집 앞 놀이터보다 멀고 동네 친구를 만나기에 부족한 곳이라 동네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놀이터를 최고의 장소로 선택했다.
키즈 카페나 놀이동산을 선택하지 않은 이유는 매일 갈 수 없기 때문이다. 매일 가는, 익숙한 곳이 놀이에서 중요한 이유는 익숙하고 친숙한 장소에서 안전함을 느끼고 안전함과 편안함을 느낄 때 놀이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새로운 장소를 편안하게 인식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데 사용시간이 제한된 경우 편안해져서 놀려고 하면 집에 가야 할 시간이 올 수도 있다.
미세먼지가 많은 요즘, 둘째와 나는 집 앞에 키즈카페를 자주 찾는다. 아이 입장료 8,000원과 내 음료비 5,500원이면 2시간 동안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운이 좋게도 집 앞에 키즈카페가 있어서 우리는 카페를 자주 찾았고 그 덕에 아이는 장소를 탐색하지 않고 바로 놀이를 시작한다.
물론 돈이 없으면 놀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고 키즈 카페처럼 넓고 안전하게 놀 수 있는 실내공간이 많지 않다는 것이 답답하다. 하지만 안타깝고 답답한 마음만으로 그런 것들이 생기기를 기다리기만 할 수는 없으니 우선은 키즈 카페를 찾는다.
요즘은 아이들과 함께 키즈 카페를 찾는 부모들을 많이 볼 수 있다. 2시간의 짧은 시간이지만 아이는 즐겁게 놀 수 있고 부모는 다른 사람에게 미안해하지 않으면서 커피 한잔을 마실 수 있는 시간이 생긴다. 한가롭고 편안하게 마시는 커피는 아니다. 아비규환의 한가운데에서 마시는 커피가 어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겠지만 엄마, 아빠를 외치며 놀아달라고 하는 아이들에게서 두 시간만이라도 벗어나 쉴 수 있는 장소가 많지 않기에 키즈 카페를 찾는다. 또한 그곳은 쉬고 싶은 아빠들이 아내의 잔소리를 피해 쉴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카페의 구석에 인형을 껴안고 잠들어 있는 모습의 아빠들을 보면 안쓰러울 때가 있다. 한번 가면 4~5만 원씩 들어가는 (내가 찾는 키즈 카페는 밥 값이 15,000원 정도, 점심을 그곳에서 해결하면 4~5만 원은 우습게 쓰인다) 그 부담스러운 장소를 자주 찾는 이유는 아이의 즐거움과 나의 죄책감 없는 휴식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서다.
하지만 아이의 즐거움이 진짜 놀이에서 시작된 즐거움일까? 새로운 장소에 대한 체험과 흥분이 즐거움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가 크리스마스에 ‘환상적인’ 장난감을 받고 흥분해서 팔짝팔짝 뛰는 모습을 보면 부모는 참 뿌듯하다 하지만 그것을 보고 ‘아이가 장난감으로 즐겁게 놀고 있구나...’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처음 키즈카페나 놀이동산을 들어갔을 때 좋아하는 모습은 바로 ‘팔짝팔짝 뛰는 순간’ 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키즈카페는 진짜 놀이가 시작되기에는 제약사항이 많다.
첫째, 진짜 친구가 없고
둘째, 장소가 낯설고
셋째, 놀이기구가 꽉 차있다.
나와 친하지 않은 아이들이 옆에서 뛰고 있기 때문에 그 아이들과 친하게 어떤 놀이를 시작하기 힘들고 친해진다 하더라도 다시 만날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에 관계를 돈독하게 하기 위한 노력 또한 필요 없다.
놀이기구가 꽉 차있는 환경은 기구를 타고 노는 놀이에 집중하게 한다. 사회적 관계가 필요한 놀이보다는 혼자 놀이를 반복하게 하는 것이다.
긍정심리학에서는 행복의 질과 빈도수에 대한 얘기를 한다. 자주 경험할 수 없는 특별한 긍정적 사건은 질적으로 높은 도파민을 분비하게 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365일 유지하게 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놀이공원이나 여행을 가는 경험이 가슴 두근거리게 하는 도파민의 행복이다. 세로토닌의 행복은 가슴이 빠르게 두근거리는 것은 아니지만 만족감과 편안함을 주는 경험이다. 매일 올라가는 뒷산이나 놀이터 마을 산책로를 한 바퀴 도는 것은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지는 않지만 일 년에 한두 번이 아닌 매일 경험할 수 있는 편안함의 행복이다. 물론 도파민을 마구 분비하게 하는 자극적인 행복도 필요하지만 삶의 만족도를 높이는 것은 작은 행복감을 자주 맛보는 것이다. 작지만 언제든 손쉽게 느낄 수 있는 행복의 요소를 삶의 구석구석에 배치해 놓는 것이 일 년에 한, 두 번 경험하는 행복보다 더 삶의 질을 높여준다. 놀이도 마찬가지다. 일 년에 한두 번, 한 달에 한두 번 가는 특별한 놀이동산이나 키즈카페가 아니라 집 앞에 마음만 먹으면 누구의 도움 없이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즐거움이 있는 곳. 아이가 그런 곳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