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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희 Jun 19. 2021

난 네가 싫다.

저도 당신이 싫어요.

나의 시댁은 대가족이다. 시아버지 형제들만 7명이니 제사를 지내거나 명절을 보낼 때면 밥을 한번 먹고나도 설거지가 산처럼 쌓이고 음식을 할 때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 잠을 잘 때도 온 가족이 따닥따닥 붙어서 잠들어야 한다.


지금은 많이 적응됐지만 처음 결혼해서 시댁의 문화를 접하는 것은 놀람 그 자체였다. 밥을 먹고 있다가도 남자가 들어오면 넌 그만 먹고 일어나서 자리를 비켜주라는 시할머니. 음식을 함께 하자는 말에 그럼 여자들이 장작을 패라고 얘기하는 작은 아버지. 설거지와 음식을 하는 동안이면 끊임없이 술을 마시며 안주를 찾은 남자들 사이에서 괴로웠다.


예전부터 제사상에 올라가는 음식들 중에 가장 이해가 되지 않는 음식은 산적이었다. 맛도 없고 질긴 비싼 소고기를 보며 늘 안타까웠던 나머지 하루는 스테이크용 고기를 사서 소금과 후추로 구워낸 적도 있다. 이 사실을 집안 남자들은 모른다. 산적에는 손을 대지도 않던 아이들이 스테이크 맛을 보고는 순식간에 먹어버려서 어른들은 맛도 못 봤기 때문이다.


떡도 내가 좋아하는 떡이 아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좋아한다는 핑계를 대며 꿀떡을 사서 조상님들께 꿀떡으로 장식한 분홍 하트를 선물하기도 했다. 이런 소소한 즐거움도 없다면 무슨 맛으로 제사를 지내나. 제사는 조상님께 감사를 표하고 기억하는 것이라고 재미있자고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어른들이 계시겠지만 제사를 지내며 돌아가신 분들과의 추억을 말하거나 그들에게 감사하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자신을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것에 대한 감사를 며느리들의 손으로 표현한다는 것이 영불편했다. 불편함을 잘 넘길 수 있었던 것은 제사상 안에 숨겨놓은 나만의 재미 요소들 덕이었다.











난 장손 며느리다. 남편은 친척 동생들과 나이차가 커서 아주 오랜 시간 며느리는 나 혼자였다. 그래서 가족들 모두 나에 대한 기대가 컸었나 보다. 하지만 난 그들이 원하는 훌륭한 장손 며느리는 아니었다.


결혼 초 남편의 가부장적인 사고방식과 문화에 잦은 갈등을 겪으며 힘들어했던 나. 그런 나를 작은 아버지는 못마땅해하셨다. 그렇게 싫은 티를 가끔씩 내시더니 결국 설 명절에 나와 남편을 부르셨다.





난 네가 싫다.





그럴 줄 알았다. 하지만 남편을 옆에 두고 직접 말로 듣게 될 줄은 몰랐다. 남편은 머리를 조아리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난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부터 어른 말씀을 잘 들어야 한다. 사랑받아야 한다. 무조건 잘 보여야 한다는 말을 듣고 살았던 내게 작은 아버지의 말씀은 큰 충격이었다. 게다가 나에게는 어른께 말대답을 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그래서 두려웠다. 하지만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저도 작은 아버지가 싫어요





작은 아버지는 놀란 눈을 하시며 날 쳐다보셨다. '이게 미쳤나.' 하셨을 것이다.



눈물을 참으며 하고 싶었던 말을 모두 쏟아냈다.



우리는 가족이라면서요. 가족은 힘들고 어려울 때 감싸주는 사람들이지 싫다고 때려치우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아니잖아요.

작은 아버지 어른이시죠? 어른은 아랫사람이 잘할 수 있도록 가르치고 도와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이 말을 들으시고 작은 아버지는 아무 말도 안 하셨다.


예전부터 내가 혼자 있을 때면 다가와서 마음에 안 든다고 이혼하라고. 난 너 같은 장손 며느리 원한적 없다고 말씀을 하셔도 그냥 참고 넘겼는데 이렇게 남편까지 옆에 앉혀놓고 자리를 마련해 말씀을 하시니 참을 수가 없었다.


옆방으로 건너와서 남편은 내게 말했다.

'너도 잘한 것 하나 없어. 어른이 말씀하시면 그냥 네, 네 하면 되지. 그걸 대답하고 있어? 어휴...'


시어머니는 '말로 널 누가 이기니...'라고 말씀하셨다.


칭찬인지 욕인지 모를 말들을 들었지만 지금도 후회하지는 않는다.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으려고 애썼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나도 나 싫다는 사람 싫다.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을 필요 없다.


이렇게 관계와 사랑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나니 세상 편하다.


참고 참고 또 참으면 좋은 날이 올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좋은 날이 내게 좋은 날은 아닐 수도 있다. 참을 인 3개로 살인 면하려다가 내가 사라질 수 있으니.  


한번 선 넘었을 때, 여기 선 있어. 몰랐나 봐?

두 번째 넘었을 때, 어머! 여기 선 있다고 얘기해 줬었잖아. 조심해 줄래?

세 번째 넘었을 때, 이제 마지막 경고야. 내 눈을 봐. 나 지금 기분이 정말 안 좋아. 나한테 소중한 거야. 지켜줘. 다음번에는 크게 화낼 수 있어.



아무도 모르게 세 번 참다가 막장 드라마 찍지 말고 미리미리 알려주자.





여기 선 있어.






나이가 들어서 인지, 긴 시간 함께하며 정이 쌓이고 이해가 되는 부분이 많아져서 인지 모르겠지만 작은 아버지와의 관계가 많이 좋아졌다. 서로 농담도 하고 때론 편을 들어주기도 한다. 하지만 서운한 것을 참고 쌓아두며 나의 경계를 내 손으로 무너뜨렸다면 지금의 이런 관계는 오지 못했을 것이다.



작은 아버지께 감사한 것은 내가 하는 말에서 진심을 들어주셨다는 것이다. 당신은 어른도 아니고 가족도 아니야!라는 말로 죄책감과 수치심을 주려는 것이 아니었다. 난 가족의 보호와 어른의 돌봄이 필요해요를 말하고 있었다. 너무 떨리고 무서워서 마지막 말을 하지 못했는데 그 말을 들으셨나 보다.



선을 보여주고 지켜달라고 요청하는 것은 칼선을 그어 관계를 자르자는 것이 아니다. 점선을 보고 접으며 서로의 면을 존중해 달라는 것이다. 그래야  연결을 유지하며 관계를 완성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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