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화 60년: 영화>(1968) ③

영화사가 노만 78

by 유창연

(에서 계속)


<꿈은 사라지고>(1959, 노필 감독)의 주연 문정숙, 최무룡


한편 영화계는 소위 '반공예술인단'이 창설되고(1959) 정치 바람이 휩쓸기 시작, 반공이란 이름으로 <독립협회와 청년 이승만>이라는 영화가 나왔고 60년 4.19까지 영화계는 그 독선적 횡포에 유린당했다. 그런 가운데서도 <종각>, <인생차압>, <곰>, <십대의 반항> 등의 가작이 나왔다. 한편 이 시기에 신상옥이 <어느 여대생의 고백>으로 흥행적인 성공을 거두어 <별아 내가슴에>, <산 넘어 바다 건너> 등 흥행에 톱을 달리던 홍성기와 후일 춘향전으로 대치하게 된 기초가 되어 신필림을 창설했다.

1960년, 4.19 혁명 후, 당국의 검열의 횡포를 지양하기 위해 민간기구로서 한국영화윤리전국위원회가 8월 5일 정식 발족되었다. 초기에 많은 잡음과 불편을 업자에게 주었지만 순수한 민간단체로서 영화의 질적 향상과 사회 윤리의 건전성을 목적으로 한 영륜의 활동은 5.16 군사혁명까지 커다란 영향을 준 것만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 시기의 영화계는 진실한 표현 자유를 구가하지 않고 '옷을 벗기는데'만 신경을 쓰고 있었으니 아까운 자유를 놓치고 만 셈이었다. 그런대로 <흙>, <로맨스 빠빠>, <박서방>, <하녀> 등의 작품이 나왔고 <춘향전>과 <성춘향>의 불붙는 경작이 화제를 모았다. 칼라 시네마스코프 대형으로 제작되는 춘향(春香)은 1961년 신상옥의 <성춘향>의 승리로 오늘날 신필림을 있게 한 기반이 되었다.

5.16 혁명으로 영화 기업의 고육책으로 영화법을 공포, 10개의 제작사와 외화수입권이 제작자에 귀일시키는 것과 아울러 무리한 시설 기준 등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그런 가운데서 서울서 개최한 9회 아세아영화제에서 <상록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등 작품상을 비롯 7개 부문에서 수상했고, 제11회 백림영화제에서 <마부>가 특별은웅상(特別銀熊賞), 이어 12회에서는 <이 생명 다하도록>에서 특별상을 획득하여 한국영화의 국제적 면목을 일신시켰다. 한편 문공부에서 대종상을 제정 수상작에 특혜를 주는, 강력한 고육책을 강구하고 있었으나 비현실적인 영화법 -- 200평 이상 스튜디오 건설, 전속 감독 배우, 기사와 카메라, 녹음 시설, 현상 시설 등 -- 은 급기야 비정상적인 풍토를 형성시켰다. 연간 15편 이상 의무적으로 제작을 해야만 영화사를 유지하기 때문에 대명, 외화수입권을 매각하고 급기야는 안이한 제작 태도의 악습으로 표절 영화 소동을 벌이게 했다. 그런 가운데서 <혈맥>, <잉여인간>, <김약국의 딸들> 같은 가작이 발표되었다. 1965년 <7인의 여포로>로 반공법에 의해 피소되는 사건이 발생되었다. 그래도 <벙어리 삼룡>, <갯마을>, <흑맥>, <순교자> 등 소설 원작의 소위 문예물들을 풍성히 거둔 해였다. 이러한 경향은 공보부의 보상으로 인한 것으로 우수작, 반공영화의 풍성한 제작을 촉구했다. 그러나 당국은 연간 120편으로 제작 편수를 제한하여 영화법의 모순을 나타냈다. 66년에는 156편 생산에 124편이 상영되고 67년에는 172편 생산에 159편이 상영되었다. 이 해 국제영화제에 출품작은 12편 뿐으로, 보상 쿼터로 수입된 외화는 50편이었다.

제작 쿼터로 인한 분규, 스크린쿼터 문제, 배급 흥행의 문제 등을 내포하고 <장군의 수염> 같은 작품이 생산되고 있는 현재, 당국의 정책적인 문제가, 좀 더 거시적인 안목이 그 타개책의 일환이 될 것이다. ■


(잡지 《공간》 1968년 12월호, 공간사, 1968, 18~23쪽)


(좌) <7인의 여포로>(1965, 이만희 감독) (우) <장군의 수염>(1968, 이성구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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