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사가 노만 29
(①에서 계속)
"이번에 <춘향전>에도 출연하셨으니 출연자로서의 애로라든지 에피소-드 라도 말씀해주셨으면 감사하겠읍니다."
"이번 제가 현대 극영화에 출연한 것은 전에 고대영화의 그 어떤 연기의 단조로운 점이 있지 않을가 하고 피했읍니다. 그러나 막상 출연하고 보니까 퍽 후회가 되요. 우선 제게는 어울리지 않고요 그저 저는 치마 저고리 입고 나오는 고대영화가 알맞다는 걸 느꼈어요. 이제 겨우 세 작품에 출연해가지고 뭐 알 수 있겠어요. 허지만 이번 <춘향전>에서는 머리를 고치는 일 같은 소소한 것이지만 이러한 것까지도 전문가 하나 없이 혼자 손질 한다는 그 번거로움과 더욱 춘향전의 그 머리를 자리잡느라고 퍽 애먹었어요"
"좋아 하시는 작품이나 연기자는?"
"뭐 모두 좋으니 알 수가 없어요. <황혼> 같은 작품이나 <백주의 결투>에 나오는 '제니퍼.죤스'와 '비비안.리-' 같은 분을 좋아해요. 그런데 외국 영화를 보고 촬영하러 나가면 기분이 내키지 않어요. 언제 나도 저만큼 연기를 할 수 있고 그러한 작품 수준에 오를가 하는 생각에서 통 연기가 되지 않어요"
"앞으로의 계획이나 희망은?"
"없어요. 앞으로 국악이나 좀 배울가 하고 있어요. 그리고 좋은 작품에 출연하고 싶어요. 여기에 대비해서 연기 공부를 하느라고 하였지만 가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정신을 바로 여기에만 둘 수는 없어요. 그러나 연기 공부를 해서 보담 낳은 연기자가 되고 싶어요"
바쁘신 시간을 보내주신 데 감사를 드리며 방을 나섰다. 이 선생님과는 다음 기회에 만나뵙고 좋은 의견을 듣기로 했다.
*
며칠 후 이 선생님께서는 본사로 내방해주셨다. 첫 인상은 먼저 큰 키와 무게를 보여주시는 저음성이였다. 내방에 대한 감사를 드리고 앉으시자마자 곧 질문의 화살을 던졌다.
"제작자가 되신 동기를 말씀해 주십시오"
"제 학창시대 동경서 '학생 예술좌'라는 학생들이 모인 극단에서 친구들과 일을 했읍니다. 그때 저는 와세다(早稲田) 대학에 적을 두고 있었는데 그때의 친구들은 지금 무대에서 활동하시는 이해랑, 김동원 씨와 이진순 및 소설가 황순원 씨, 극작가 김영수, 김진수 씨 등 여러 분이 계셨는데 학창시대부터 이러한 환경에서 지내왔고 제 자신 여기에 또 취미도 있고 해서 처음으로 <해연>의 제작을 하게 됐읍니다"
"그럼 처음부터 제작자가 되시려고 하셨는지?"
"저는 처음 평론을 쓰려고 했읍니다. 그리고 '씨나리오'도 공부하고 있었읍니다. 그러다가 친구들의 권고와 또 저 역시 한번 해 보고 싶은 생각에서 처음으로 <해연>의 제작을 맡아보게 됐읍니다"
"이번 <춘향전>의 제작을 보시고 더욱 절실히 느끼신 제작자로서의 애로를 말씀해 주셨으면......"
"우선 절실히 느낀 것은 기업체화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일하기가 힘이 들고 또 충분히 발휘할 수가 없다는 점입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계획이라고 뭐 이렇다고 할 것은 없으나 꼭 천연색 <춘향전>을 만들고 싶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16미리 밖에 안되고 있읍니다만은 앞으로 35미리의 천연색 <춘향전>을 만들어 보려고 계획 중에 있읍니다. 기술적인 시험이 끝나면 내년 쯤에나 어떻게 되지 않을가 하고 있읍니다. 이 작품을 끝내면 제가 하고 싶었던 씨나리오로 돌아갈가 합니다"
이 선생님은 이번 또 제작을 맡으신 모 영화 때문에 퍽 바쁘신데도 불구하고 시간을 내셔서 오신데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리며 우리 영화계에 공헌하시는 두 분 선생의 행운을 비는 바다. ■
(잡지 《영화세계》1955년 12월호, 영화세계사, 1955, 54~5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