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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에 희소식 군촬영소 완성되다>(1955)

영화사가 노만 34

by 유창연
영화세계 1955년 12월호 필명 'R 기자' 노만의 기사 <한국영화에 희소식 군촬영소 완성되다>


한국영화에 희소식 군촬영소 완성되다

R 기자


군영화에 다대한 공헌을 세우고 있던 국방부 정훈국 영화과에서는 지난 9월 초하루 한국 최초의 스타디오 낙성식을 거행했다. 이러한 계기로 활기를 띠우고 있는 우리 영화계에도 커다란 발전을 가져올 수 있는 도움을 주리라 생각한다.

기자는 아침 일찍 남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군촬영소를 찾았다. 2백 12평이라는 적은 대지나마 설비는 거의 되어 있었다.

먼저 기획계장님을 뵙고 온 뜻을 전하니 무척 반가히 맞으신다. 먼저 스타디오 구경을 하기로 했다. 이번 낙성된 스타디오는 건평 90여평으로 동시녹음을 위한 방음장치를 앞으로 계획 진행 중에 있다. 그리 크지 않은 이 스타디오에는 5평의 아나운서실과 레코다실 및 영사실이 있다. 이것이나마 아쉬운 대로 쎗트 촬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설비된 조명기는 10K 2대와 5K, 3K 등 수십대가 있었다. 이것으로도 조명은 족할 수 있을 것이나 여기에 사용될 전구가 없어 앞으로 구입해야 할 형편이었다. 이 조명에만 사용되는 전력은 100K 정도고 특히 군촬영소에서는 직접 고압선을 끌어다가 2백여K의 전력을 우리의 전기 사정에 비하면 충분히 사용할 수 있었다.

이 스타디오의 설계는 최신 식으로 아나운서실이나 레코다실 같은 설비는 스타디오로서의 규모를 가추고 있는 것이다.

바로 스타디오 옆에 자리잡고 잇는 제작계에 들려 여러 기계를 구경했다. '애프레코' 2대가 있고 녹음실에는 35미리형 테푸 녹음기가 있다. 이 녹음기는 마그네틱 녹음기라 명칭이 있으며 그 외에도 한국 유일의 오티칼 녹음기 한 대가 있다. 이것으로 최초의 시험으로 영화 <막난이의 비사>를 녹음했다. 모두 RCA회사의 우수한 기계들이라 이번 녹음의 대성공을 보았다고 한다. 더욱 여기에 종사하는 기사들의 그 우수한 기술과 노력을 생각해야할 것이다. 다음 편집실로 발을 옮겼다. 이 편집실에 이채를 띠우는 것은 농도계(Photovolt)는 기계로 역시 한국 유일의 것으로 앞으로 들어올 감광계와 아울러 필림 현상에 없지 못할 중요한 기재인 것이다. 이것을 사용하므로서 더욱 정밀한 현상을 할 수 있는 것이다.(주: 이 기계에 대한 설명은 영화과 김창수 씨의 원고가 있다) 이 외에 편집기 한 대가 있다. 현상실은 마침 작업 중이므로 볼 수는 없었으나 여기에도 완전한 설비를 가추었기 때문에 비록 작은 규모의 촬영소이나마 그 기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하루에 현상되는 필림은 얼마나 됩니까?"

"하루 8시간이라면 포시가 무려 6천피트와 4천오백피트의 네가가 현상되고 있읍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제작계장님은 퍽으나 만족하신 표정이셨다.

이 군촬영소의 책임자이신 영화과장 이종태 대령님을 뵙고 여러가지 말씀을 들었다.

"군영화과에서는 몇 계(係)가 있습니까?"

"기획계 관리계 제작계 기술계 이렇게 네 계로 되어 있읍니다"

"여기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은?"

"군인 및 문관이 삽십여명 있읍니다"

"한 달에 몇 작품을 제작하시고 계십니까?"

"군영화 및 국방뉴-스를 한 달에 6본씩 제작하고 있읍니다. 이것도 참 벅찬 일입니다. 모두들 열심히 일하고 있지만요"

이렇게 말씀하시는 이 과장님께서는 앞으로 이 스타디오를 일반 영화인들에게도 쓸 수 있도록 노력하시겠다고 하신다.

이 군촬영소는 비록 군대서 하고 있지만 어떤 그러한 기분은 없고 모두들 가족적인 분위기에서 종사하고 있다. 이 군촬영소는 앞으로 군영화의 발전은 물론 우리 한국영화 발전을 위해서도 커다란 공헌을 남길 것을 확신하며 물러나왔다.


(잡지 영화세계 1955년 12월호, 영화세계사, 1955, 45, 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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