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피레네산맥과 론세스바야스 … 고통이라는 또 다른 이름
발카로스 공립 알베르게에서 첫 날을 보낸다.
"큰일이네. 이런 곳에서 어떻게 잘 수 있을까!"
공립 알베르게는 오래된 건물에다 방도 어두워 빈대(bad bug)가 숨어 살고 있을 것 같은 환경이다.
한국에서 챙겨 온 계피 나무 껍질을 침대 이쪽 저쪽에 쑤셔 넣었다.
빈대가 계피나무를 싫어한다는 정보를 미리 알고 비해 오길 잘했다.
순례길의 힘든 여정보다 빈대에 물리는 상상을 하면 그 공포가 더 크다.
아침이 되니 어제 설정해 놓은 알람이 울렸다.
다행히 가려움도 없고, 몸도 개운했다.
세수를 마친 후, 전날 슈퍼마켓에서 산 음식을 꺼내 아침식사를 했다.
입 맛에 맛지 않았다.
그럼에도 모두 먹는 이유는 살기 위해서 라는 표현이 어울릴듯하다.
"윤 국장은 잘 먹네. 여기서 살아도 되겠어.” 장 회장님이 무심히 꺼낸 이 말을 들었을 때 살짝 기분이 상했다.
"오늘 걷기 위해 먹는거에요. 정말 살기 위해 먹는 기분이에요. 입 맛이 없어도 어떻게든 드세요.“
알베르게를 나오려고 짐을 정리하고 있는데 관리자인 호세씨가 들어왔다.
호세는 거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사람으로 스페인 아프리카와 스페인 혼혈처럼 보였다.
우리는 호세씨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 후 알베르게를 떠났다.
아침 공기가 상쾌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면서는 음악을 듣지 않기로 결심했었다.
'내가 이 곳에 온 이유는 하느님과 대화하기 위함이니까!'
기도는 하느님과의 대화라고 여긴다.
그런데 정말 나는 대화를 하고 있었을까?
지금까지 내가 기도할 때 청원은 참 많이 했다.
무엇을 해 달라는 청원은 항상 해 왔는데 반대로 그렇다면 나는 응답을 기다린 적이 있는가?
"난 네가 이렇게 생각해 보면 좋겠어!"
혹시 계속 나에게 말하고 있지만 내가 귀를 닫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하느님은 나의 청원을 항상 듣고 있었지만, 나는 하느님의 응답을 듣고 있었는지.
순례길을 통해 그 분이 뭐라고 하는지 들어보자는 것이 내가 걷는 동안 음악을 듣지 않기로 결심했던 이유다.
첫날부터 이 결심은 산산히 부서졌다.
생장에서 발카로스로 올라올 때 너무 힘들어서 음악을 들었다. 음악을 들으면 피곤함이 덜했다.
출발 전 숙소에 도착해 사용할 무선 이어폰 2개를 챙겨왔었다.
그 중 하나는 골전도 이어폰으로 관자놀이에 붙여 놓으면 음악이 들린다.
주변 소리와 음악까지 들을 수 있는 고급 이어폰이다.
그런데 발카로스에 도착하자 골전도 이어폰이 고장났다.
하늘의 뜻인가보다.
'나와 대화한다고 여기까지 와서 지금 뭐하는 짓이야!' 호통 소리가 내 머릿속에 울린다.
그 분이 이어폰을 고장낸 것이 분명해!
‘첫날 여기까지 힘들게 올라 왔으니, 오늘은 어제보다는 쉽겠지’ 했던 생각은 어리석었다.
어제보다 더 급경사의 오르막이다. 오르막은 끝없이 이어졌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겠냐만, 이 길은 버겁게 느껴졌다.
숲길을, 도로를, 다시 숲길을, 계속 오르기를 반복했다. 쉴 장소도 없다.
그러다 피레네산맥 이바네타 골짜기를 4km 앞둔 지점에서 일이 터졌다.
장 회장님이 걷지를 못하신다. 10m를 가면 멈추고, 또 10m를 가면 쉬기를 반복했다.
나 역시 한발 한발 움직이는 것이 너무 버겁다.
힘든 상황에 길을 걷는 서로의 스타일도 달랐다.
나는 1시간을 걸으면 30분을 내리 쉬는 것에 반해, 장 회장님은 걷다가 2분, 걷다가 2분씩 짧게 끊어 쉬어 가는 스타일이다. 이제부터는 서로의 걷는 루틴에 맞춰 따로 움직여야 한다.
나는 회장님보다 앞서 올라가 30분을 쉬겠다며 앞서 길을 재촉했다.
‘아이고 죽겠네!’ 이 말만 되뇌이며 걸었다.
다리가 천근만근이다.
그렇게 걷다보니 이바네타가 눈에 들어왔다.
‘다 왔다!’
갑자기 다리에 힘이 다시 붙는 신기한 경험이다.
이바네타에 도착해 산살바도르(구세주) 경당을 발견했다.
이바네타의 고도는 1,057m로, 올라서자 매서운 바람이 몰아쳤다.
부는 바람은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강력했고, 그 바람을 피해 살바도르 경당 입구에 가서 휴식을 취했다.
몸은 추위에 부들부들 떨고 있지만 눈만은 정말 즐거웠다.
피레네 산맥의 풍경은 아름답고 황홀했다.
내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이렇게 아름다운 길을 걸어 올라왔구나!'라는 생각에 대견스럽기도 했다.
장 회장님을 기다리며 쉬는 동안 현실 자각의 시간(현자타임)이 찾아왔다.
피레네 산맥을 오르며 '왜 이런 미친 짓을 하고 있을까!' 하는 회의감이 밀려왔다.
순례길을 걷는 사람들이 '미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아직 40여일을 가야 한다는 생각에는 숨이 막혔다.
순례를 시작한 지 겨우 둘째 날인데 벌써부터 밀려오는 회의감이 밀려온다.
내 배낭은 8kg인데 반해 장 회장님의 배낭은 12kg로, 출발 전부터 그의 무거운 배낭을 걱정했었다.
고집이 센 회장님이었기에 무리한 무게를 지고 가실 생각이셨나보다.
‘젊어서 고생은 사사도 한다 했으니, 65세 먹은 청년이기에 스스로 고생을 선택했겠지!’
한참을 이런 저런 생각에 하다 회장님 걱정에 이바네타 고개길로 돌아갔다.
멀리서 장 회장님이 올라오는 모습이 보였다.
배낭이 아닌 다른 무엇을 업고 올라오는 모습이다.
얼굴은 땅에 묻히고 허리를 90도로 굽힌 채, 양 손은 사람을 업은양 등 뒤로 무언가를 붙잡고 오는 모습이 굉장히 어색하고 안쓰러웠다.
드디어 이바네타에 도달했고, 환영과 응원의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회장님의 눈에 초점이 없다.
‘정신줄 놓은 사람이다.’
나는 장시간 쉬기를 권하지만, 그는 오래 쉬면 갈 수 없다며 잠깐 쉬고 가자고 했다.
이제부터 론세스바야스까지는 내리막길이다.
우리는 1시간 정도 더 걸어 그 곳에 도착했다.
론세스바야스는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알베르게가 유일한 숙소다.
나라바 왕 산초 7세와 그의 부인 클레멘시아의 유해가 이곳 산타 마리아 왕립성당에 묻혀 있다.
13세기 초에 산초 7세가 프랑스 고딕 양식으로 성당을 지으라는 명령을 받아 만들어졌기에 죽어서도 이곳에 묻혔을 것이라 추측해 본다.
나와 장 회장님은 순례자 저녁 식사를 마치고 산타마리아 성당의 저녁 7시 미사를 보러갔다.
또 순례자 강복도 받았다.
오늘의 복음(루가 10장 25절~37절)은 율법 교사와 예수의 대화를 담은 '착한 사마리아인 이야기'였다.
한 유대인이 강도에 당해 거의 죽을 위기에 처해 길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첫 번째 만난 사람은 유대인 제사장인데, 그를 두고 지나쳐갔다.
또 다른 사람은 유대인 종교 지도자였는데 그의 곁을 지나갔다.
같은 유대인이지만 그를 도와주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다른 민족인 사마리아사람이 그 곳을 지나치다 강도당한 사람을 불쌍히 여겨 치료해주었다.
그리고 그를 여관에 데려가 밤새 돌봐주고, 여관주인에게 돈을 주며 그들 돌봐달라고 부탁했다.
예수님은 이러한 비유를 통해 "그러면 이 세 사람 중에서 강도를 만난 사람의 이웃이 되어 준 사람은 누구였다고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을 던지고, 율법 교사는 "그 사람에게 사랑을 베푼 사람입니다."라고 답했다.
예수는 "너도 가서 그렇게 하여라"라는 말로 끝맺는 이야기다.
이 착한 사마리아인 이야기는 순례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국적과 인종, 배경이 달라도 필요할 때 도우라는 교훈을 주는 것 같다.
나는 오늘 혹시 장 회장님을 혼자 두고 온 것은 아닌지 생각해봤다.
이로 인해 오늘 복음이 나를 훈계하는 것 아닐까 생각했다.
나는 오늘 착한 사마리아인 이야기에 등장한 한 유대 지도자처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