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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파담 Sep 21. 2024

2.4일.행복하여라 순례자여

주비리서 팜플로냐로…순례길의 마음을 다시 잡다

사발디카 마을로 들어가는 다리. 오늘은 아르가 강 줄기를 따라 길을 걷기 때문에 건너야 다리도 많다

오늘은 팜플로나로 간다.

팜플로나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공부하면서 자주 들여다봤던 곳이다.

소몰이와 투우로 유명한 산페르민 축제, 헤밍웨이의 "태양이 떠오른다"의 주무대, 그리고 예쁜 골목들로 유명하다.

또 순례길을 동안 팜플로나에서 29일짜리 1차 유심를 구매해야, 레온에서 다시 29일짜리를 사는 합리적 소비생활이 가능하다는 정보들이다.


주비리에서 팜플로나로 가는 길은 경사가 거의 없다. 마지막 깔딱고개를 만나기 전까지는

오늘은 비도 없고 햇빛이 쨍쨍하다.

주비리에서 팜플로나로 가는 길은 오솔길이 많아 좋았다.

기분좋은 상태로 걷고 있는데, 앞에 가는 분은 나와 전혀 다른 분위기다.

배낭을 길에 내려놓고 힘겹게 숨을 쉬며 앉아 있는 사람이다.

가까이 가니 이전 발카로스의 알베르게에서 만났던 적 있는 필리핀 분이셨다.인이었다.

괜찮냐고 물어보니 손사래를 치며 죽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발카로스에서 '관리인에게 전화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줘서 고맙다'고 감사를 전했었지만, 언제 다시 만날까 싶어 다시 한번 고마움을 표하고 싶었다.

"발카로스에서 당신 덕분에 잠을 편히 잘 수 있었어. 정말 고마웠어."

"아니야.“

간략한 대화를 나누면서 그의 국적과 이름을 물었다.

"이름이 뭐니?"

"벨“

그의 대답에 "링어링? 벨?"

"노노, 뷀"

"스펠로 알려줘"

"V-e-l-l“

"알았어. 벨이구나!“

벨 역시 내 이름을 물어왔다.

내 이름을 전혀 발음하지 못했다.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천천히 말했더니, 내게 들려온 이름은 나도 모르는 사람 이름이다.

내 발음이 부족한 것을 탓하며, 내 이름을 다시 알려줬다.

"My name is Yoon" - 나는 윤이야.

그제서야 "윤"이라고 정확히 발음했다.

벨과 이름만 얘기하는 데도 10분이 훌쩍 지났다.

벨과의 대화는 이름 외에도 나이와 국적, 오늘의 목적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벨도 오늘 팜플로나까지 간다고 한다. 잘 쉬고 조심히 오라는 인사를 전하고 먼저 팜플로나로 향했다.

미라발레 고개를 넘어가는 길. 이 고개를 넘어가면 팜플로나가 눈에 들어온다

한참을 걷다가 사발디카라는 마을에 카페가 들러 간단한 식사를 했다.

바로 옆에 스테파노 성당이 있어 들어갔다.

스테파노 성당(경당)에 들어가자마자 입구에 놓여있는 종이가 눈에 들어왔다.

거기에 한글로 적힌 종이를 신기해하며 쳐다봤다.


‘순례자의 행복’

종이 한 장을 집어 들고 뒤편 의자에 앉아 하나하나 읽어 내려갔다.

행복하여라. 순례자여......

계속 읽어 내려가면서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러나 아홉 번째 글과 열 번째 글은 꼭 나에게 말하는 것 같아 기분이 이상해져 온다. 

‘행복하여라 순례자여, 당신이 이 길에서 참된 자신을 만나게 되고, 서둘지 않고 충분히 마음속에 그 이미지를 간직할 수 있다면. 순례자여, 이 길이 큰 침묵을 품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고, 그 침묵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하느님을 만나는 기도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대는 정녕 행복하여라’ 


기도는 하느님과의 대화다.

대화는 서로 주고 받는 이야기다.

나는 하느님과 대화해 본 적이 있던가?

하느님을 만나기 위한 열쇠는 침묵이다.

그냥 침묵하고 기다려라.

그러면 응답을 받을 것이다. 

‘하느님! 저는 당신의 말이 들리지 않아요. 내 귀는 당신께 열려 있지 않아요. 내 마음은 세상의 것에 익숙해져 있나 봐요. 저에게 욕심뿐인가봐요. 단단해진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겠어요.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어요’ 

이런 기도가 내 입에서 흘러나왔다. 

순례길을 걷는 내 마음이 완전히 무너지는 순간이다.

단단해지고 싶다는 결심이 진정 나에게 필요한 것인지 의심스러워졌다.

행복해지기 위해 더 단단해지고, 행복해지기 위해 더 열리고, 행복해지기 위해 지혜와 평화가 무엇인지 성찰해 왔는데,

참된 행복은 그 분의 응답을 듣는 것이라 느껴졌다.

막달레나 다리 위에서

사발디카를 뒤로 하고 팜플로나를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오늘도 깔딱고개다. 고개를 넘으니 마을들이 보인다.

도로변 인도를 따라 한참을 걸으니 막달레나 다리가 나왔다.

막달레나 다리를 건너면 팜플로나 시내다.

오늘 팜플로나에 도착한 시간은 2시 30분.

나와 장 회장님은 어제 예약한 알로하 오스탈(호스텔)에 체크인하기 위해 비아나 광장으로 향했다.

알로하 호스텔은 2성급으로 저렴한 숙소. 오늘과 내일, 연박을 예약했기 때문에 숙소에 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내일은 걷지 않아도 된다.’

팜플로나 들어가는 막달레나 다리. 막달레나 다리는 12세기에 만들어져 800년동안 여전히 프랑스길을 통해 온 순례자들을 반갑게 맞아주고 있다

팜플로나라는 이름은 기원전 1세기 로마의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의 내분이 있던 당시, 카이사르 군대의 장군인 폼파엘로라는 사람이 이 곳에 막사를 지어 생겨난 이름이라고 한다.

폼파엘로가 변형돼 팜플로나가 된 것이다.

이 도시는 ‘이루나’라는 다른 이름도 가지고 있다. 이루나라는 말은 바크스 언어로 도시라는 뜻이란다.

이 지역에 바스크인들이 거주했던 시기는 기원전 3,000년전부터라고 하니, 도시 이름이 ‘팜플로나’보다 ‘이루나’가 더 어울릴 것 같다고 생각했다.

바스크인들에 대해 알아보면서 슬픈 역사를 가진 민족임을 알게 됐다.

스페인 내전 당시 독일군이 게르니카 일대를 폭격한 사건이 있었다.

게르니카는 바스크인들이 거주하는 동네다. 이 마을이 폭격 당해 천여명의 민간인이 희생된 것이다.

당시 스페인 독재자로 알려진 프랑코(국민당) 정권의 홍보지였던 아리바 신문은 12명이 폭격으로 희생됐다고 발표했다. 또 독일 나치측은 공화당 군인들이 게르니카를 떠나면서 불을 지르는 만행을 저질렀다고 발표했다.

이 발표는 진실이 은폐된 자작극이다.

게르니카의 비극이 밝혀진 것은 피카소에 의해서다. 피카소는 <게르니카>를 그려 발표했고, 온 천하가 프랑코와 나치의 만행을 알게 됐다.

마드리드에 가면 레이나 소피아 국립미술관에 가서 바스크인들의 비극을 그린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꼭 봐야겠다 결심했다.

알로하 호스텔에서 바라본 팜플로나 시내 전경

오늘은 신라면이다.

한국에서부터 스페인의 아시아마트를 모두 기록해놨다.

순례길에서 첫 번째 만나는 아시아마트는 팜플로나에 있다. 구글지도를 이용해 마트에 도착하니, 신라면이 있었다. 컵라면 2개를 사서 숙소로 가져와 저녁을 먹었다.

‘컵라면! 오늘 저녁은 최고다’

팜플로나의 비아나광장. 비아나광장은 카스티요광장에 이어져 있으며, 도심 상업지구와 구도심을 연결하는 사통팔달의 요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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