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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파담 Sep 24. 2024

2.10일. 거룩한 부르심 '성소'에 대해

로그로뇨 기부제 알베르게…걷는다는 것엔 이끌림이 있었다

산티아고 알베르게의 주방과 응접실의 모습. 장 회장님은 요즘 통 입맛이 없으시다. 이빨 통증때문에 다른 것도 잘 못드신다.

로그로뇨의 산티아고 성당에서 운영하는 기부제 알베르게는 한정된 인원만 받고 있다.

이 곳 알베르게는 1층에 침실, 세면실,그리고 화장실이 갖춰져 있다.

침실은 전체적으로 10개 정도의 2층침대가 놓여 있어 20명이 최대 수용인원임을 직감할 수 있다. 

2층은 아늑한 응접실과 기능적인 주방, 그리고 다양도로 활용 가능한 회의실이 있었다. 

체크인을 마치고 휴식을 취하는 지금은 오후 4시. 

알베르게에 들어와 여장을 푼 후, 나는 곧장 회의실로 향했다. 

2층 주방에서 티백으로 우려낸 차 한잔을 손에 쥐고, 다른 손에는 책을 들고 회의실로 향했다.

독서에 열중하고 있는데, 갑자기 김예솔(사라, 가명)씨가 들어왔다.

그녀 또한 책을 읽기 위해 올라온 것 같다.

손에 든 책을 살펴보니 ‘순례길에서 만나는 성당들’이라는 제목이다.

이 책은 한국에서 이미 대충 읽은 적 있어, 어떤 내용에 있는지는 이해 하고 있는 상태다.

원주교구 신부님이 쓰신 책으로 기억하는데, 나의 기억을 더듬어 그 책(순례길에서 만나는 성당들)에 대한 감상은 산티아고 길에서 만나는 성당의 역사와 전통을 소개하다 보니 비슷비슷한 내용이 많아 되레 여기가 거긴지 거기가 여긴지 헷갈리는 하는 마법같은 책이었다 소회다. 

지금 김예솔씨처럼 오늘 지나는 성당을 만나면 책을 펴서 그때 그때마다 보는 편이 이 책을 대하는 더 지혜로운 것은 아닌지 생각했다.

“오늘 지나온 성당에는 새로운 것들이 많았나요?”

“아뇨. 모르겠어요. 그게 다 그것 같아요. 책을 괜히 가져온 것 같아요. 지금 이 책도 짐덩어리에요. 무거워 죽겠어요.” 무거운 짐덩어리라는 그녀의 말이 마음에 와 닿는다.

그런데 갑자기 다른 주제로 이야기를 걸어온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왜 오셨어요? 이 길을 왜 걸으세요?”

“모르겠어요. 처음엔 단단해지자는 마음으로 걷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단단해진다는 것이 뭔지 모르겠어요.(피식~). 내가 깨달아야 하는 것은 단단해지는 것이 아닌 다른 것인가 봐요.”

솔직한 내 마음을 보이자, 그녀는 자신이 성소를 찾아 걷고 있다는 것을 얘기했다. 


김예솔씨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동기에 대해서는 이미 장 회장님께 전해 들어 알고 있었다.

그 이유는 ‘성소를 찾기 위한 길’이다.

현재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중이지만 자신의 길이 선생님이 아닌 수녀님이 아닌지 고민하고 있었다.

지금 이 길을 걷고 있는 이유는 그녀의 길을 찾는 것이다. 

가톨릭에서의 성소(거룩한부르심)는 두 가지 핵심과정으로 이뤄져 있다.

첫 번째는 하느님과 인격적 관계 속에서 끊임없는 성찰의 과정으로, 어떤 부르심이 있는지 발견하거나 식별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가장 깊은 마음속에서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과정이다.

거룩한 부르심에 대한 응답을 위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 한걸음 한걸음을 그녀는 지금 내딛고 있다.

나는 그녀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거룩함의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가능한 한 그녀에게 방해되지 않도록 최대한 주의했다.

김예솔씨를 만나도 먼저 말을 걸지도 않고, 웃음으로만 인사를 주고 받았다. 그녀의 동선에서 피해 주는 것이 최선이라 여겼다. 

그녀는 전북 익산에 위치한 글라라 봉쇄수녀원을 자신의 성소로 삼고 있다고 했다.

글라라 봉쇄수도원에 들어가면, 외부 세계와는 단절된 생활을 해야 한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듯 ‘스스로 감옥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 기도와 묵상(관상)이 전부다.

일생동안 기도하며 사는 곳이다.

그녀의 성소를 위해 나 역시 나의 지난 과거와 그때 내가 느낀 감정들, 그리고 지금 나를 이끌고 있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해줘야만 할 것 같아 과거 삶을 잠시 고백했다.

김예솔씨가 성소를 발견하기를 간절히 바라며 오늘밤은 꼭 그녀를 위해 기도를 올려야겠다는 다짐이 마음에 싹텄다. 꼭 글라라 수녀회가 아니더라도 말이다. 

‘성소’

그것은 하느님과의 절대적 관계안에서만 성립된다.

그 누가 개입한다 하더라도 그분의 뜻이라면 바뀌지도 않으며, 바꿀 수도 없다.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데리고 이집트를 떠나 온 모세와, 신약에서 예수를 믿던 자를 박해했던 바오로처럼.

우리 모두는 성소의 길을 걷고 있다.

로그로뇨에서 가장 오래도니 성당으로 12세기에 지어져 16세기에 완성됐다. 바르톨로메오 성인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성당으로, 입구 부조들은 바르톨로메오의 삶을 표현한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회칙.

“사람은 되어가는 것.” 어쩌면 이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진 성소라고 생각한다.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수없는 잘못을 저지르지만, 하루하루 치로운 삶을 향해 나아가는 것. 

나는 '사람은 되어 가는 것' 이라는 말이 그런 뜻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배려란 무엇일까?’

많은 순례자들은 배려를 하고 있는 것일까? 배려를 받고 있는 것일까?

엉뚱한 상상을 해 본다. 

저녁식사 후 특별 프로그램은 기도다.

이 곳 알베르게는 성당으로 향하는 지하통로와 연결돼 있다.

10여명이 이 통로를 통해 산티아고 성당으로 들어왔다.

관리자분께서 각 나라의 저녁기도문 나눠주셨다. 우리에겐 한국어로 된 기도문을 주신다.

기도에 앞서 잠시 산티아고 순례길을 어떻게 걸어야 하는지 설명하신다.

식사 때도 얘기했던 ‘Keep Going’이다. 어떤 장애물이 오더라도 계속 나아가라고 하신다.

더불어 ‘점프(Jump)-버스로 이동해 길을 가는 것’를 경계하라고 말씀하신다.

산티아고성당의 제대화. 이 제대화에는 2가지 모습의 야보고가 표현돼 있다. 전사(matamoros)와 순례자의 모습이다.

저녁기도문을 나눠줄 때는, 오늘 모인 다국적 순례자들이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영국, 프랑스, 독일, 한국, 스페인, 캐나다.

저녁기도문은 각 국의 언어로 다 비치돼 있었다.

한글로 된 기도문을 맡은 장종혁 회장님, 김예솔씨, 그리고 나는 저녁기도 끝의 3문장을 읽기로 되어 있다.

기도가 끝난 후 우리는 산티아고 성당에서 스탬프를 받고, 내일 여정을 위해 모두 숙소로 향했다.

내일 아침, 문규현 신부님께 전화를 드려야겠다.

지금은 아침 7시. 한국은 오후 3시다.

문규현 신부님은 전화를 받더니 잘 지내는지 물어오신다. 둘 사이에 문제는 없는지 걱정의 소리다.

“장 회장은 어떻게 하고 있어?”

“장 회장님 이빨 때문에 고생이세요. 잘 먹지 못해요. 정신력으로 버티시는 것 같아요.”

“처음부터 준비를 못했으니 당연한 결과지. 견뎌야지! 장 회장에게 몸 관리 잘하라고 전해줘.”

신부님은 또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은총의 시간을 가질 것을 당부하셨다.

“순례길은 수세기 동안 하느님의 부르심이 있던 길이야. 그 길을 걷는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소중한지 기억해.”

산티아고 성당의 감실. 전주교구 치명자산 성당에 있는 감실과 비슷한 느낌이 들어 찍어봤다. 설명문을 찍어 자세히 보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

대야고보(산티아고)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다.

하루는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이 예수님에게 와서 이렇게 말했다.

“예수님? 하늘나라에서 나와 요한을 예수님 오른편과 왼편에 앉도록 해 주십시오.”

이 말을 들은 예수는

“너희가 무엇을 청하는지 아느냐? 너희는 내가 마시고자 하는 잔을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을 고난의 세례를 받을 수 있겠느냐?”

그들은 당당하게 대답했다.

“예, 할 수 있습니다.” 

야고보는 예수가 모세와 엘리야와 만나는 장면을 목격한 사람이며, 겟세마니 동산에서 기도할 때 그 곳에서 함께 했던 인물이다. 그 날, 군인들에게 예수가 잡히자 무서워 도망갔던 사람이기도 하다.

그리고 야고보는 복음전파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예수를 증언하다 첫 번째로 죽임을 당한 최초의 사도다.

나는 순례길은 다양한 내면의 야고보가 하느님을 만나러 가는 은총의 길이라고 확신한다.

오늘 또 한명의 야고보는 순례길의 아침을 맞았다. 

발바닥에 생긴 물집에 실을 매달고 고통을 참으며 걷기 시작한다.

로그로뇨 순례길 표시. 지팡이와 조개, 봇짐이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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