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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파담 Sep 27. 2024

11.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때

11일차, 일자무식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사다 … 흔들리는 내 마음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사다까지 평평한 길이 계속 이어진다

오늘은 생각이 참 많은 날이다.

아침 출발 전, 한국으로 전화를 걸어 어머니와 통화를 했다.

“엄마! 괜찮아? 아픈 덴 어때?”

그러나, 어머니는 자신의 상태보다, 내가 밥은 잘 먹고 있는지, 아픈데는 없이 잘 지내고 있는지 걱정의 소리를 하신다.

오늘 나의 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물집 안에 또 물집이 새로 잡혀 오른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고통이 너무 심하다.

장 회장님은 빨리 나을려면 물집 잡힌 발 껍질을 뜯어내라고 조언하지만 나는 그 말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내가 알고 있는 의학 상식에 따르면 물집을 뜯어 내는 행위는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위험한 행동이다.

자칫 세균과 바이러스에 의해 곪게 되면 생각보다 큰 문제가 되기에, 실로 물을 빼내는 것이 좋은 응급처방이라고 알고 있다.

지금 장 회장님은 갈라진 이 때문에, 나는 물집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아조푸라마을. 여기서부터는 성탑 종탑모양이 달라진다

오늘 장 회장님과의 대화하면서 서로 감정이 자꾸 엇갈린다.

먼저, 오늘의 여정에 대해.

나는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사다까지를, 회장님은 더 걸어서 그라뇽이라는 마을까지 가자고 한다.

회장님은 거리가 짧으니 더 가는 것이 좋겠다 하신다. 

그라뇽도 산티아고 순례길에서는 중요한 장소이기에 머물 가치는 충분하다.

특히 이곳에 기부제 알베르게가 있는데, 많은 순례자들이 이 곳의 하루를 체험하고 싶어하는 곳이다.

“회장님? 회장님은 그라뇽까지 가세요. 저는 산토도밍고까지만 갈께요. 숙소는 거기서 로사 자매님의 도움을 받으시면 되요. 꼭 제가 아니더라도 어려움은 없을거에요.”

“함께 왔는데 같이 윤 국장이랑 같이 행동해야지.”

“꼭 그러실 필요 없어요. 원하는 데로 해야죠. 저는 엄마 수술하는 동안에는 칼사다에 머물러 있을 예정이에요. 하루 더 쉴 수도 있어요. 도밍고 성인에게 엄마 수술 잘 되게 해달라 부탁드릴려구요.”

어머니 암 수술이 내일 오후로 시간이 잡혔다.(당일엔 오전으로 변경됐다.)

오늘은 거리가 짧더라도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사다에 꼭 머물러야 한다고 장회장님께 이미 말씀드린바 있다.

그라뇽까지 가자는 말을 들었을 땐 내 사정을 잊고 있는 것 같아 무척 섭섭했다. 

둘째는 몇차례 갈등이 있었던 우리들의 식사비용 문제다.

지금까지 회장님과 나의 순례길 경비는 내가 도맡아 처리하고 있었다.

아침, 점식, 저녁식사와 숙박비용, 슈퍼마켓에서 물품 구입에 대한 지출에 대한 책임이 나에게 있었다.

“윤 국장은 너무 잘 챙겨 먹으려고 하는 거 아냐?”

들어보니, 음식류의 영양소에 과하게 집착한다는 이야기였다.

회장님이 말씀하시는 의도가 궁금해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실것을 부탁드렸다.

회장님의 답변은 나를 매우 당혹케했다.

“보통 사람들은 윤 국장처럼 그렇게 잘 챙겨 먹지 않아. 그런데 윤 국장은 하나하나 너무 챙기자나.” 

문규현 신부님이 나를 걱정하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화나는 감정이 쌓이면 즉각 반응 하는 버릇이다.

이 부분 때문에 신부님께 매번 혼난다.

오늘 이 감정이 장 회장님께 쏟아졌다.

멀리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사다 마을이 보인다. 가운데 큰 탑이 70m의 리오하주에서 가장 높은 대성당 종탑이다

“회장님? 혹시 회장님보다 내가 먹는데 돈을 많이 써서 불편하신거 아니에요?”

“그게 아니고. 너무 신경 쓴다고.”

공용 경비가 나에게 더 지출되고 있는 것이 불편하신 것 같다는 생각만 들었다.

물집 잡혀 잘 걷지 못하는 내가 반가웠다. 

서로 거리를 두고 걸을 수 있어 화난 감정을 가라앉힐 수 있기 때문이다.

회장님을 먼저 보내고, 절뚝이며 느릿느릿 걸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 감정을 받아주신 회장님의 인격 됨됨이가 훌륭한 분이라 생각한다.

'나라면 벌써 헤어지고도 남았을텐데!' 

오늘 속도는 정말 느리다.

다른 순례자들이 나를 추월해 지나갔다.

지나치는 순례자들은 대부분 한번은 얼굴을 보았던 사람들이다. 절뚝절뚝 걷는 내 모습이 불쌍했는지 ‘화이팅’을 외치며 지나가는 로그로뇨 기부제 알베르게에 함께 있었던 프랑스 청년도 있었다.

대충 웃음으로 화답하긴 했지만, 그의 응원은 전혀 힘이 되지 않았다.

‘지금은 홀로 있어야 할 시간이다.’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사다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3시.

여기에 도착할 즈음에 마음은 많이 누그러졌 있었다.

먼저 도착한 장 회장님은 마을 입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장 회장님과 공립 알베르게에 들어가 체크인을 마쳤다.

그리고 도밍고 성인의 무덤이 있는 성당으로 바로 향했다. 

“회장님? 여기는 도미니코 성인 유해가 있는 곳이에요. 여기는 꼭 보셔야 해요. 함께 가시죠.”

화해의 말로 받아 주시길 원하며, 함께 가기를 청했다.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사다 대성당의 모습

칼사다의 도미니코 성인은 별명이 ‘일자무식’이다.

하느님을 위한 삶을 원하는 그였기에 수도원에 들어가고자 하는 마음이 강했다.

수도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라틴어’가 필수였다.

그러나 도미니코는 글을 전혀 몰랐기에 입회를 거절당했다.

지금부터 라틴어를 배운다는 것도 입회까지 걸리는 시간이 너무 길다.

결국 수도회를 포기하고, 이곳에 머물며 순례자를 위해 길을 정비하고, 다리를 세우고, 병원을 만었다.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사다 라는 마을이 생긴 것도, 마을 이름도 도미니코 성인 때문이다.

도미니코 성인의 최후는 길을 정리하던 중 강도를 만나 죽임을 당한다. 그의 유해가 칼사다 대성당 지하에 놓여 있다. 성인의 일생은 대성당으로 들어가는 회랑에 벽화로 그려져 있다.

칼사다의 도미니코성인 무덤. 대성당지하에 관이 놓여 있으며 1층부터 지하1층까지 무덤 부조가 연결돼 있다

또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사다 대성당은 살아있는 두 마리의 닭(암탉, 수탉)이 있는 성당으로도 유명하다. 살아있는 닭이 있는 이유는 야보고의 기적사화(칼사다편)에 있다.(내용은 믿거나 말거나) 닭장은 도밍고 성인 지하무덤으로 내려가는 입구쪽을 살펴보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산토도밍고 데 라 칼사다 대성당 종탑도 유명하다.

13세기에 올려진 70m의 종탑으로, 리오하지방에서는 가장 높다.

종탑에 다가가면 시계에 대한 설명글이 있다.

‘이 시계는 지금까지 한 번도 멈춘 적이 없다.’

시계는 그다지 오래돼 보이지 않는다. 설명문을 함께 읽었던 벨과 서로 마주보며 웃었다. 

지금은 새벽 4시. 한숨도 못 잤다.

어제 저녁 7시 미사에 참여했다.

오늘은 어머니 수술이 끝날 때까지 이 마을에 머물며 기도할 생각이다.

어머니 수술시간이 갑자기 변경됐다.

한국시간으로 오전 8시. 내가 있는 스페인에서는 밤 12시에 수술이 시작된다.

이곳 알베르게는 밤 9시가 되면 침실을 소등해야 한다.

나는 이 때부터 응접실로 나와 ‘어머니의 수술이 잘 되도록 해 달라’는 청원의 기도와 성모님의 간구, 성인성녀의 통공을(칼사다의 도미니코 성인) 부탁드렸다.

‘마음이 불안하다.’

옷을 껴입고 나오긴 했지만, 너무 추워서 침실로 들어갔다를 반복했다.

4시에 한국에 전화를 걸자 어머니 수술이 잘 돼서 회복실로 가셨다고 한다.

그제야 안심하고 내 침대로 들어가 쪽잠을 청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베로니카 성녀와 피묻은 예수의 얼굴 작품. 대성당에 입구 쪽 회랑에 전시물들이 많다. 오늘 나에게 무엇을 말하는 것 같아 한참을 머물러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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