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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파담 Sep 25. 2024

10. 기적,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

10일차, 나바레떼와 나헤라 왕실무덤 클뤼니수도원

오늘은 로그로뇨부터 나헤라까지 30km를 걷기로 했다.

로그로뇨는 도시를 벗어나기까지 공원을 산책하는 느낌이 들게 한다.

내가 살고 있는 전주의 아중리에 있는 아중 호수길을 걷는 것 같다.

상쾌한 아침공기와 호수를 가로지르는 오리떼들, 다람쥐가 뛰노는 길이다.

길이 아름답기 때문에 힘이 들지 않는다.

발바닥에 물집은 어제보다 더 번져 있음에도, 걷는 데 무리가 없다.

30km를 거뜬하게 소화할 것만 같다.

철조망에 붙어있는 나무십자가들. 철조망으로 돼 있는 전 구간에 나무로 엮은 십자모양이 가득하다

오늘의 길을 초반, 중반, 후부로 나누면 초반은 산새소리를 들으며 걷는 산책길이다.

중반은 차도 옆과 도로를 가로지르며 오가는 도로길, 후반은 마을을 자주 만날 수 있는 마을길이다.

나바레테로 들어가는 중반 구간에는 도로변에 설치한 철조망에 셀 수 없이 많은 나뭇가지 십자가가 걸려있다.

‘누가 이렇게 많은 십자가를 만들었을까?’

철조망에 걸린 십자가들은 전쟁에서 또는 순례길에서 죽은 사람들을 기리는 표식 같아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고개의 정상에 도착한 후 잠시 지나, 장 회장님이 철조망 고개에 올라왔다.

우리가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이탈리아인 3명이 도착했다.

‘이분들은 동키서비스로 움직이고 있구나’

나중에 커피 한잔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이분들은 4명이 함께 움직이며, 한 분이 숙박이며 배낭이동을 도맡아 처리하고 계셨다. 한 명은 차로 이동하고, 세 명은 걷는다.

‘효율적이기는 하지만 한 사람이 너무 희생하는 것 아닐까?’ 

이탈리아 분들은 우리가 휴식 중인 것을 보고, 우리의 배낭을 들어보며 말을 걸어 온다.

“It’s too heavy! how many kilograms?”-너무 무거워! 몇 킬로야?

내 배낭은 8kg, 장 회장님의 배낭은 10kg정도일 것이라 얘기했더니, 우리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감탄사를 표하신다.

죽은 순례자를 기리는 순례자헌양탑. 장 회장님과 로사 자매님이 나란히 걷고 있다.

그분들이 지나 가자, 이번에는 재미교포 로사 자매님이 나타났다.

이 분은 푸엔테 라 레이나에서 만나 에스테야에서 헤어졌다가 이 곳에서 다시 만났다.

워낙 말하기를 좋아하시는 분이라 홀로 걷지 않을 분이라는 내 짐작이 빗나갔다.

오늘 혼자 고개를 올라오는 모습을 보니 대화상대를 찾지 못하신 것 같다. 

나는 발에 물집이 있어 내리막길은 천천히 걸어갈 예정이라, 장 회장님과 로사 자매님을 앞에 보냈다.

아침에 문규현 신부님과 통화 한 것이 생각나, 여기서 쉬는 김에 어머니와 여자친구에게도 전화를 걸어 소식을 전했다.


그러고보니, 엄마의 암 수술 날짜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엄마는 오늘부터 요양병원에 들어가 수술을 위한 몸 관리에 들어가신다고 한다.

목소리를 들으니 안심이 됐다. 

어머니의 큰 수술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때 어머니가 교통사고를 당해 전북대병원에서 뇌수술을 받으신 적이 있다.

생사를 판단할 수 없는 수술이라는 것을 주변 분들로부터 계속 듣고, 이웃분들이 나를 보면 ‘어떻하냐’ 하며 걱정의 소리를 많이 하셨기에, 당시에 나는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것 아닌가 무척 걱정했었다.

‘성모님? 우리 엄마 살려주세요.’

학교가 끝나면 매일 장계성당 성모상 앞으로 달려가 묵주기도를 바쳤다.

문규현 신부님보다는 문정현 신부님과의 인연이 더 먼저다.

내가 장계성당에 다닐 때 문정현 신부님이 본당신부님이셨고, 나는 당시 복사단(미사 집전 때 신부님을 도와주는 역할)으로 활동했었다.

내가 매일 성모상 앞에서 기도하는 모습을 문정현 신부님 어머니(수산나)가 보고 끌어 안아 주셨던 그때가 생각난다.

기도가 끝나면 집으로 데려가 과일을 깎아주셨었다.

아무튼 성모님이 함께 간구해 준 덕분에 우리 어머니의 수술도 잘 됐다고 믿었다.

‘어머니의 뇌수술. 성모님 감사합니다.’

나는 이때를 슬픈 내 인생이 시작된 첫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오늘부터 묵주의 기도를 꼭 해야지.’

이렇게 결심하고, 기도의 지향을 어떻게 세울까 고민했다.

묵주의 기도는 1단부터 5단까지 5개의 지향을 만들 수 있다.

1단 지향과 2단의 지향, 3단에서 바칠 지향, 그리고 4단. 순례길을 걷는 모든 이를 위하여

그리고 5단의 지향은 ‘나를 위해’로 결정했다.

가장 갈등이 심했던 것은 5단 ‘나를 위해’였다. 이것이 과연 지향으로서 가치가 있는지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성모님께서 나를 위해 필요한 것을 가르쳐주시겠지 하는 믿음속에 더 이상 의심치 않기로 하고, 내가 생각한 지향대로 기도를 드리기로 했다.


11세기에 지어진 순례자병원터.

나바레테와 나헤라로 가는 길목은 유적과 유물 등 볼거리가 다양하다.

나바라왕국의 수도였던 만큼 순례자를 위해 마련된 다양한 시설도 볼 수 있고, 길에서 죽은 순례자를 위한 기념탑, 성모승천성당의 문화적 가치가 뛰어난 제대화도 볼 수 있다.

어느덧 나헤라까지 30km를 왔다.

나는 하루 걷는 적당한 거리가 20km정도로 생각한다. 30km까지 온다면 몸에 상당한 무리가 온다. 오늘은 30km를 걸었으니, 몸에 상당한 부담이 쌓였다.

나헤라에 들어섰을 땐 걷는 것조차 힘들다.

아직 발의 상태를 보지 않았지만, 고통의 무게로 볼 때 물집이 더 커졌다는 확신이 들었다.

내가 나헤라에 들어섰을 때, 장 회장님과 로사 자매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로사 자매님과 헤어진 후, 공립 알베르게로

나헤라 공립 알베르게의 겉모습은 허름하다.

그러나 내부로 들어가니 새로 깨끗하게 리모델링을 해 놓아서 그런지 상당히 깨끗했다.

나바레테 성모승천성당 제단화. 17세기 바로크양식의 진수라는데 미술을 모르는 나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웅장하긴 했다.
나헤라 성마리아수도원 제단화. 우리가 입장했을때 스페인사람들이 해설사로부터 내용을 듣고 있었다.

여장을 푼 후 바로 성 마리아 클뤼니수도원으로 향했다.

이 곳 수도원은 기사들의 무덤으로 유명하다.

다으은 수도원 입구에 설치된 나헤라를 소개하는 내용이다.

나헤라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나헤라는 1000년대(923-1,076년)의 나바라의 수도.

보통 나바라-팜플로나 왕국으로 익히 알고 있지만, 여기에서는 나헤라-팜플로나 왕국으로 소개하고 있다.

수도원 입구에는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나헤라가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는지 간략히 쓰여 있다.

대충 해석하면 프랑스길은 9세기에 만들어졌고, 이 순례길은 론세스바야스부터 산티아고 콤포스텔라까지 야보고성인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 졌다는 것.(여기서 기록된 내용은 생장이 출발점이 아니다.)

또 산초 3세 ‘대왕’이 숙소며 병원이며, 다리를 만들어 나헤라를 순례길의 중요 장소로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내용들이 담겨 있다. 그리고 400년이 지나 카스티야 왕국의 엔리케 4세가 나헤라에 ‘매우 고귀하고 귀한 도시’라는 칭호를 하사했다는 내용이다.

바르셀로나 몬세라트에 검은 성모상이 있다면, 나헤라에는 기사들의 성모상이 있다.

천주교 순례자 입장에서는 봐야 할 다른 부분이 있다.

이 수도원에서 있는 성모상이다. 내가 알고 있던 스페인에서 유명한 성모상은 바르셀로나의 검은 성모뿐이었는데 나헤라에서 유명한 성모상 목록이 추가됐다. 성 마리아 수도원이 만들어진 이유도 바로 성모상 때문이다.

산초 대왕 아들인 가르시아 6세가 매사냥을 나갔다 놓쳐버렸다. 가르시아 왕이 매를 찾아 헤메는데, 주변 동굴에서 신비한 빛이 흘러나왔다고 한다. 들어가 보니 백합 화병과 성모상이 있었다. 왕은 거룩한 땅이라고 여기고, 이 곳에 성당을 지으라고 명령했다.

성당 건설 과정에 수많은 순교자의 유해가 발견됐다고도 한다.(산티아고 한국순례자협회 자료, 내의 생각은 다르다. 나헤라는 스페인 역사에서 끊임없는 내전이 있었던 지역이다. 나바라, 아라곤, 카스티야, 무슬림 우에미야왕조까지 이 곳은 전쟁의 땅이다. 믿음을 증거하다 죽은 사람보다 전쟁으로 죽은 사람이 많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이 때문에 떼라사(Caballeros de Terraza)기사단-산티아고까지 순례자이 안전하게 걸을 수 있도록 치안은 물론 숙박, 병원 운영, 길과 다리 등 토목에 관여했던 기사단-이 탄생했다.

그래서 성모상을 기사들의 어머니라고 불렸다.

이 수도원에는 기사단의 회랑이며, 산초대왕의 부인이자 알폰소 8세의 어머니인 도냐 블랑카의 무덤과 기사들의 무덤을 볼 수 있다.

묘지위에 세워진 수도원 내부라 칙칙하고 코를 자극하는 냄새가 난다.

장 회장님께 시체에서 나는 냄새라는 말을 듣고 나서는 오래 있고 싶지 않아 대충 둘러보고 나왔다.

수도원으로 들어가는 입구. 성 마리아 클뤼니수도원 내부입장을 위해서는 정문이 아닌 옆문으로 들어가야 한다.

수도원 탐방 후 나헤라 마을로 들어가 산책을 했다.

오르테가 강을 사이로 마을이 줄서 있는 모습은 평화롭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골목골목을 구경하던 중에 벨을 만났다.

벨과 반가운 인사를 한 후 팜플로나에서 아침 대접 받은 것이 고마워 커피 한잔 하자고 했다.

그를 만나기 전 이미 확인해 놓은 맛있는 빵집으로 데려가 빵과 커피를 시켜놓고, 한동안 순례길 여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함께 공통 주제인 순례길에 대해 영어로 얘기하니 공부도 되고 일석이조다.’

나와 장 회장님은 보통 목적지에 도착하는 시간은 이르면 오후 1시에서 3시 사이다.

그런데 벨은 이르면 3시, 늦을땐 6시다. 물론 6시도 해가 중천에 떠 있다. 밤 9시가 되야 어두워진다.

곧 시작되는 4월에는 스페인은 ‘썸머타임’이 적용된다.

벨과 헤어진 후 공립 알베르게로 돌아와 물집이 생긴 발에 가로 3줄, 세로 2줄 격자로 실을 통과시킨 후 얼른 아물기를 기도했다.

‘내일은 잘 걸어야 할텐데.’

나헤라 공립알베르게 벽화. 내부 인테리어를 새로했다. 내부에 들어가면 상당히 깨끗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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