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차, 로그로뇨 성모경당의 웅장함…르네상스의 거장이 숨어 있다
오늘은 로그로뇨가 목적지다.
로그로뇨는 팜플로나에 이어 두 번째 만나는 큰 도시다.
토레스 델 리오에서 로그로뇨까지의 거리는 겨우 20km에 불과하다.
비교적 짧은 거리임에도 날씨가 더워 걷기 힘든 날이다.
로그로뇨까지는 그늘은 거의 없고, 햇빛에 노출된 채로 이어진 길을 따라 걷는다.
토레스 델 리오를 출발한 시간은 아침 7시.
끝없이 펼쳐지는 포도밭이 멋진 풍경이다.
와인을 즐기는 순례자들은 로그로뇨에 도착해 한 잔 하는 상상만해도 걷는 데 도움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장 회장님이 주신 양말을 신었다.
나의 순례길 준비물 중 양말은 발목 양말 3켤레였다.
걷는 일주일 동안 트레킹화 속으로 작은 돌맹이들이 들어와 벌써 양말 바닥에 구멍을 2개나 뚫어 놓았다.
장 회장님은 내 양말 상태를 보고, 새 양말을 건네주셨다.
순례길을 오기 전, 나는 한국에서 하루 10km 이상을 걸었다.
주말과 휴일에는 20km도 걸었기에, 걷는 것에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 열심히 준비한 나인데, 설마 물집이 잡힐까! 한국에서도 그렇게 걸었는데 물집은 안잡혔었지!’
물집이 잡히는 이유는 평소 걷지 않다 무리하게 걸어 발바닥에 부담이 걸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이미 피레네 산맥도 넘었고, 일주일 넘도록 20여km를 걸어온 상태에도 물집과 관련된 문제가 없었기에 방심하고 있었다.
오늘은 장회장님이 주신 양말을 신고 걷고 있다.
그런데 걷는 동안 계속 발이 거슬렸고, 불편했다.
양말이 큰 편이어서 내 발에 맞지 않았다.
‘이러다 물집 잡히는 거 아닐까?’
로그로뇨로 향하는 길에서 결국 물집이 올라 온 것이다.
걱정 속에, 쉴 때마다 신발을 벗어 양말을 다시 강하게 끌어올려 말려 들어가지 않도록 계속 조치했다.
걷기가 불편해 비아나라는 마을을 지날 때부터 장 회장님을 앞서 보냈다.
천천히 걸어 로그로뇨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1시.
로그로뇨에 들어섰을 때에, 내 걸음걸이는 이미 이상해져 있었다. 오른쪽 발을 땅에 댈 때마다 엄청난 아픔이 느껴졌다.
‘올 것이 왔구나!’
생장에서 순례길을 출발하기 전 회장님과 약속한 일이 하나 있다.
그 약속은 순례길을 걷는 동안 상대방에게 탓을 돌리지 않고 걷는 것을 지키기로 한 것이다.
‘모든 일은 내 탓이다.’ 이것이 회장님과 내가 만든 규칙이었다.
순례길을 준비하는 동안 갈등이 생기는 다양한 상황을 확인한 바 있다.
함께 온 사람들 사이의 갈등이 의외로 많았다.
서로가 살아 온 환경이 다르기에 투정과 다툼이 되는 상황들이 펼쳐질 수 밖에 없다.
분쟁의 원인을 정리해 보면 ‘너 때문에’라는 말이 '루비콘강'을 건너는 것과 통하는 듯 했다.
‘우린 서로 탓하지 않기.’
이런 규칙을 정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통증이 느껴질 때마다 원망의 감정이 쏟구쳤다.
‘주님! 물집 생긴 것도 내 탓이잖아요. 왜 자꾸 장 회장님을 떠오르게 하세요?’
원망의 대상이 장 회장님을 넘어 생각나게 한 하느님까지 확대된다.
‘자꾸 떠오르게 한 것도 그 분 탓이 아닐텐데!’ 말이다.
나는 로그로뇨에서 점심을 먹기 위해 가장 큰 중앙광장인 메르카도로 향했다.
메르카도 광장 성 마리아 성당 근처의 멋진 카페 발견하고, 곧장 들어가 맥주 한잔과 샌드위치를 시켰다.
‘맥주가 이렇게 맛있다니! 천상의 맛이다.’
한참을 이 카페에서 휴식을 취했다.
쉬면서 이것저것 검색하다가 성 마리아 대성당(ConCatedral Santa Maria de la Redonda)에 대한 흥미로운 글을 발견했다. 이 성당의 특징은 두 개의 첨탑 사이에 둥근 아치가 있는 것으로, 이 모양 때문에 성당 이름에 Redonda라고 붙여졌다.
마리아 대성당을 검색하면서 성당을 뜻하는 이글레시아(Iglesia)와 주교좌성당을 뜻하는 카테드랄(Catedral)이 혼용되어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또한, 이 성당이 카테드랄이면서도 앞에 콘(Con-함께)이 들어간 것이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한국의 예를 들어보자면, 전주에 있는 중앙성당은 전주교구 주교좌성당이다. 반면에 서울에 있는 명동성당은 서울대교구의 주교좌성당이다.
따라서 전주교구 주교는 중앙성당에 대한 관할권을 가지고, 명동성당은 서울대교구 주교가 관할권을 갖는다.
만일, 전주교구 주교가 명동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기 위해서는 서울대교구 주교의 허락을 받아야만 한다.
가톨릭교회의 복잡한 관할 문제를 성 마리아 대성당에서는 두 교구가 함께 처리해야 하는 것이다.
성 마리아 대성당은 팜플로나-투델라 대교구와 칼라오라-칼사다-로그로뇨 교구가 함께 관할권을 가지고 있었다.
마리아 대성당은 3개의 경당이 있다. 이 중 가장 유명한 경당은 성모경당(프루덴시오)이다.
성 푸루덴시오(축일 4월 28일)의 유해가 있는 경당이기도 하다.
그는 아르멘시아라는 곳에서 태어나 은둔생활을 하다 서품을 받고, 아라곤 지방 타라조나 주교가 됐다고 한다.
현재 타라조나 교구의 수호성인이기도 하다.
스페인에는 총 70개의 교구가 있다.
타라조나 교구 위치를 살펴보니 성 마리아 대성당의 관할지역이 아니었다. 이웃에 있는 교구다.
관할 교구가 아닌 타 교구의 수호성인이 여기에 잠들어 있는 점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성 마리아대성당 내부 경당에 들어가기 전에 엄청난 문구를 발견할 수 있다.
다른 순례자들이 이 성당에 가게 된다면 꼭 그 문구를 확인했으면 한다.
‘침묵으로 들어와라, 행복한 이 땅으로, 천국으로 바뀔지니!’
경당에 발을 들였을 때, 마치 바티칸 박물관에 온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돔에 그려진 천정화부터, 성령을 상징하는 빛이 들어오는 장미창, 그리고 그 이래 놓인 푸르덴시오 유해까지 내 눈을 압도했다.
경당에서 기도 중에 장 회장님으로부터 카카오 메시지가 왔다.
광주에서 온 김예솔씨가 산티아고 교구에서 운영하는 기부제 알베르게가 열려있는 것을 확인했다는 내용이다.
나는 즉시 장 회장님을 만나, 오늘의 특별한 경험을 가져 올 알베르게로 향했다.
‘순례자 산티아고 교구 알베르게.’
산티아고 교구에서 운영하는 알베르게로 기부제다.(산티아고 대교구에 소속 되어 있는 것도 신기하다. 여기는 로그로뇨 교구의 관할 지역이다. 어쩌면 이름에 억매여 잘못 이해하고 있을 가능성도 높다.)
기부제는 내가 원하는 만큼 내고 오는 비용을 내는 곳이다. 돈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특징이다.
기부제 알베르게에서는 특별 프로그램이 운영되지만, 이조차 순수하게 자유의지에 따라 결정할 수 있다.
나는 여기에 왔으니, 이곳의 규율을 따르기로 하고 특별 프로그램을 확인했다.
저녁 7시 식사와 공동기도. 이 두 가지가 전부였다.
내가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 아시아마트를 가서 라면과 김치를 사는 것이다.
숙소에서 마트까지는 1시간 거리였다.
이미 물집이 잡힌 발로 절뚝이며 천천히 걸었다.
온 몸에 고통이 올지라도 포기할 수 없는 라면.
‘라면은 천상의 음식일까’
신라면과 볶은김치를 들고 돌아오는 길은 즐거웠다. 로그로뇨 시내 구경도 동시에 할 수 있어 일석이조였다.
'내일 아침엔 든든하게 먹고 출발해야지!'
저녁식사 시간이 돼, 2층의 응접실로 향했다.
저녁식사를 하기전 우리에게 순례길과 관련된 노래를 가르쳐준다.
나이 지긋한 남자 관리자 분께서 의미를 하나씩 설명해 주시는데, 영어를 잘 하지 나에게는 정확하게 이해하기란 불가능했다.
대충 내용을 조합해보면 ‘순례길을 걷게 되면 받게 되는 은총(선물)’을 얘기같다.
노래의 내용도 비슷한 의미다.
‘Keep Going’-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걸어라 이 말 뜻이리라.
이 말을 자주, 가장 많이 했다.
노래가 끝나면 모두 식사를 시작하고, 후엔 설거지도 함께 한다.
오늘 저녁 식사에 참여한 사람은 모두 15명가량이었다. 대부분은 20대 유럽 청년들이다.
내 옆 자리는 마드리드에서 온 부부였는데, 그들은 2주간 시간을 내서 레온까지만 걸을 계획이라고 한다.
오늘 주 메뉴는 마카로니 파스타였다.
가정식파스타, 맛있었다.
로그로뇨 산티아고 성당에서는 특별한 인연을 만났다.
우선 이 곳 알베르게는 산티아고 성당에서 운영하는 기부제 알베르게는 한정된 인원만 받고 있다.
이 곳 알베르게는 1층에 침실, 세면실,그리고 화장실이 갖춰져 있다.
침실은 전체적으로 10개 정도의 2층침대가 놓여 있어 20명이 최대 수용인원임을 직감할 수 있다.
2층은 아늑한 응접실과 기능적인 주방, 그리고 다양도로 활용 가능한 회의실이 있었다.
체크인을 마치고 휴식을 취하는 지금은 오후 4시.
알베르게에 들어와 여장을 푼 후, 나는 곧장 회의실로 향했다.
2층 주방에서 티백으로 우려낸 차 한잔을 손에 쥐고, 다른 손에는 책을 들고 회의실로 향했다.
독서에 열중하고 있는데, 갑자기 김예솔(사라, 가명)씨가 들어왔다.
그녀 또한 책을 읽기 위해 올라온 것 같다.
손에 든 책을 살펴보니 ‘순례길에서 만나는 성당들’이라는 제목이다.
이 책은 한국에서 이미 대충 읽은 적 있어, 어떤 내용에 있는지는 이해 하고 있는 상태다.
원주교구 신부님이 쓰신 책으로 기억하는데, 나의 기억을 더듬어 그 책(순례길에서 만나는 성당들)에 대한 감상은 산티아고 길에서 만나는 성당의 역사와 전통을 소개하다 보니 비슷비슷한 내용이 많아 되레 여기가 거긴지 거기가 여긴지 헷갈리는 하는 마법같은 책이었다 소회다.
지금 김예솔씨처럼 오늘 지나는 성당을 만나면 책을 펴서 그때 그때마다 보는 편이 이 책을 대하는 더 지혜로운 것은 아닌지 생각했다.
“오늘 지나온 성당에는 새로운 것들이 많았나요?”
“아뇨. 모르겠어요. 그게 다 그것 같아요. 책을 괜히 가져온 것 같아요. 지금 이 책도 짐덩어리에요. 무거워 죽겠어요.” 무거운 짐덩어리라는 그녀의 말이 마음에 와 닿는다.
그런데 갑자기 다른 주제로 이야기를 걸어온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왜 오셨어요? 이 길을 왜 걸으세요?”
“모르겠어요. 처음엔 단단해지자는 마음으로 걷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단단해진다는 것이 뭔지 모르겠어요.(피식~). 내가 깨달아야 하는 것은 단단해지는 것이 아닌 다른 것인가 봐요.”
솔직한 내 마음을 보이자, 그녀는 자신이 성소를 찾아 걷고 있다는 것을 얘기했다.
김예솔씨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동기에 대해서는 이미 장 회장님께 전해 들어 알고 있었다.
그 이유는 ‘성소를 찾기 위한 길’이다.
현재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중이지만 자신의 길이 선생님이 아닌 수녀님이 아닌지 고민하고 있었다.
지금 이 길을 걷고 있는 이유는 그녀의 길을 찾는 것이다.
가톨릭에서의 성소(거룩한부르심)는 두 가지 핵심과정으로 이뤄져 있다.
첫 번째는 하느님과 인격적 관계 속에서 끊임없는 성찰의 과정으로, 어떤 부르심이 있는지 발견하거나 식별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가장 깊은 마음속에서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과정이다.
거룩한 부르심에 대한 응답을 위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 한걸음 한걸음을 그녀는 지금 내딛고 있다.
나는 그녀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거룩함의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가능한 한 그녀에게 방해되지 않도록 최대한 주의했다.
김예솔씨를 만나도 먼저 말을 걸지도 않고, 웃음으로만 인사를 주고 받았다. 그녀의 동선에서 피해 주는 것이 최선이라 여겼다.
그녀는 전북 익산에 위치한 글라라 봉쇄수녀원을 자신의 성소로 삼고 있다고 했다.
글라라 봉쇄수도원에 들어가면, 외부 세계와는 단절된 생활을 해야 한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듯 ‘스스로 감옥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 기도와 묵상(관상)이 전부다.
일생동안 기도하며 사는 곳이다.
그녀의 성소를 위해 나 역시 나의 지난 과거와 그때 내가 느낀 감정들, 그리고 지금 나를 이끌고 있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해줘야만 할 것 같아 과거 삶을 잠시 고백했다.
김예솔씨가 성소를 발견하기를 간절히 바라며 오늘밤은 꼭 그녀를 위해 기도를 올려야겠다는 다짐이 마음에 싹텄다. 꼭 글라라 수녀회가 아니더라도 말이다.
‘성소’
그것은 하느님과의 절대적 관계안에서만 성립된다.
그 누가 개입한다 하더라도 그분의 뜻이라면 바뀌지도 않으며, 바꿀 수도 없다.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데리고 이집트를 떠나 온 모세와, 신약에서 예수를 믿던 자를 박해했던 바오로처럼.
우리 모두는 성소의 길을 걷고 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회칙.
“사람은 되어가는 것.” 어쩌면 이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진 성소라고 생각한다.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수없는 잘못을 저지르지만, 하루하루 치로운 삶을 향해 나아가는 것.
나는 '사람은 되어 가는 것' 이라는 말이 그런 뜻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배려란 무엇일까?’
많은 순례자들은 배려를 하고 있는 것일까? 배려를 받고 있는 것일까?
엉뚱한 상상을 해 본다.
저녁식사 후 특별 프로그램은 기도다.
이 곳 알베르게는 성당으로 향하는 지하통로와 연결돼 있다.
10여명이 이 통로를 통해 산티아고 성당으로 들어왔다.
관리자분께서 각 나라의 저녁기도문 나눠주셨다. 우리에겐 한국어로 된 기도문을 주신다.
기도에 앞서 잠시 산티아고 순례길을 어떻게 걸어야 하는지 설명하신다.
식사 때도 얘기했던 ‘Keep Going’이다. 어떤 장애물이 오더라도 계속 나아가라고 하신다.
더불어 ‘점프(Jump)-버스로 이동해 길을 가는 것’를 경계하라고 말씀하신다.
저녁기도문을 나눠줄 때는, 오늘 모인 다국적 순례자들이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영국, 프랑스, 독일, 한국, 스페인, 캐나다.
저녁기도문은 각 국의 언어로 다 비치돼 있었다.
한글로 된 기도문을 맡은 장종혁 회장님, 김예솔씨, 그리고 나는 저녁기도 끝의 3문장을 읽기로 되어 있다.
기도가 끝난 후 우리는 산티아고 성당에서 스탬프를 받고, 내일 여정을 위해 모두 숙소로 향했다.
내일 아침, 문규현 신부님께 전화를 드려야겠다.
지금은 아침 7시. 한국은 오후 3시다.
문규현 신부님은 전화를 받더니 잘 지내는지 물어오신다. 둘 사이에 문제는 없는지 걱정의 소리다.
“장 회장은 어떻게 하고 있어?”
“장 회장님 이빨 때문에 고생이세요. 잘 먹지 못해요. 정신력으로 버티시는 것 같아요.”
“처음부터 준비를 못했으니 당연한 결과지. 견뎌야지! 장 회장에게 몸 관리 잘하라고 전해줘.”
신부님은 또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은총의 시간을 가질 것을 당부하셨다.
“순례길은 수세기 동안 하느님의 부르심이 있던 길이야. 그 길을 걷는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소중한지 기억해.”
대야고보(산티아고)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다.
하루는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이 예수님에게 와서 이렇게 말했다.
“예수님? 하늘나라에서 나와 요한을 예수님 오른편과 왼편에 앉도록 해 주십시오.”
이 말을 들은 예수는
“너희가 무엇을 청하는지 아느냐? 너희는 내가 마시고자 하는 잔을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을 고난의 세례를 받을 수 있겠느냐?”
그들은 당당하게 대답했다.
“예, 할 수 있습니다.”
야고보는 예수가 모세와 엘리야와 만나는 장면을 목격한 사람이며, 겟세마니 동산에서 기도할 때 그 곳에서 함께 했던 인물이다. 그 날, 군인들에게 예수가 잡히자 무서워 도망갔던 사람이기도 하다.
그리고 야고보는 복음전파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예수를 증언하다 첫 번째로 죽임을 당한 최초의 사도다.
나는 순례길은 다양한 내면의 야고보가 하느님을 만나러 가는 은총의 길이라고 확신한다.
오늘 또 한명의 야고보는 순례길의 아침을 맞았다.
발바닥에 생긴 물집에 실을 매달고 고통을 참으며 걷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