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차, 나바라의 수도 에스테야-리사라…나바라왕궁, 세례자요한 성당
오늘은 푸엔테 라 레이나에서 에스테야까지 21km 정도를 걸을 예정이다.
푸엔테 라 레이나의 중심인 마요르 거리는 중세로 타임슬립한 듯 오래된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옛스러운 길을 따라 마을 끝까지 나서면 마을 이름이 된 다리인 다리를 만나게 된다.
에스테야(본래이름 에스테야-리사라)로 가기 위해서는 이 여왕의 다리(푸엔테 라 레이나)를 건너야 한다.
여왕의 다리를 건너자마자,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몰라 서성이고 있는 한 순례자를 발견했다.
처음엔 그분도 한국에서 온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알고보니 그분은 재미교포로, 로사(65)라는 천주교 세례명을 가진 분이셨다.
내가 느낀 그분은 대화를 즐기시는 분으로, 쉴 새 없이 이야기를 늘어놓으셨다.
로사씨는 생장부터 론세스바야스로, 그리고 팜플로나를 지나 여기까지 오는 여정에서 느낀 자연의 아름다움, 지나온 길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 머물렀던 숙소 이야기를 한꺼번에 쏟아 놓았다.
또 어제 푸엔테 라 레이나에 같이 도착했던 프랑스 순례자 레지나(65)씨와 다리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먼저 가버렸다고 하소연도 한다.
로사씨가 말하는 레지나씨(장 회장님의 옆침대를 배정받았었음)는 어제 우리와 같이 공립 알베르게에서 숙박했던 분이셨다.
후에 프레도로부터 레지나씨에 대해 들어 알게 된 사실은 이 분은 겨울에 북쪽길을 걷고, 지금 프랑스길을 다시 걷고 있는 상태라고 한다.
오늘은 4가지가 떠오른다.
먼저, 산티아고 순례길에서는 여러 순례자가 천사를 만난다는 아름다운 경험담이다.
이날, 장 회장님은 로사라는 천사를 만났다.
장 회장님은 순례길에 오기 전 급하게 깨진 윗니를 응급처치만 하고 길에 올랐다.
진통제만 복용하면서 견뎌온 장 회장님의 윗니는 주리비에서부터 통증으로 변해 고통받고 있다.
상황을 체크하기 위해 물어보면 '무척 안좋다'는 표현을 하신다. 상태가 생각보다 심각하다.
걷는 것보다 통증이 더 힘들다는 푸념을 늘어놓으실 정도다.
로사씨는 이번 순례길에 다양한 약들과 고추장 맛이 나는 매운 양념 튜브를 가져왔다.
장 회장님의 상태를 듣더니, 가져온 약을 하나 먹어보라며 전해줬다.
장 회장님은 그 약을 먹은 후 통증이 눈에 띄게 완화됐다고 말씀하셨다.
그 순간 ‘장 회장님이 천사를 만났구나!’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장 회장님이 천사를 만났다는 부러움과 함께 언제 나에게도 천사가 나타날지 기대감이 부풀어 오른다.
둘째는 내 성격에 대한 고민이었다.
나는 내가 짊어진 8kg의 배낭이 내 죄의 무게처럼 느껴졌다.
빨리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다.
그런데 로사씨는 젊은 사람이 너무 느리다며 나에게 불평인 듯한 농담을 하셨다.
그 말을 농담으로 넘기면 될 텐데, 머릿속에는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셋째는 로사씨의 수다다.
쉼 없이 들려오는 로사씨의 이야기와 나를 향한 질문들은 어느 순간부터 나를 불편하게 하고 있었다.
그녀의 목소리를 계속 듣고 있으니, 어느 순간 혼자 있고 싶은 열망이 강하게 밀려왔다.
그때부터, 장 회장님과 로사씨를 앞에 보내고 뒤따라 걷기 시작했다.
‘그냥 편하게 생각하면 될 것을! 왜 너는 이것저것 가리는 거냐!’
나의 한심함과 그릇의 작음을 탓하며 홀로 걸음을 내딛었다.
마지막으로 로사씨가 얘기했던 레지나(65)씨와 장 회장님의 '까미노스토리'다.
이분은 프랑스 사람인데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셨다.
장 회장님도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신다.
그럼에도 그분이 기억에 남는 이유는 숙소에서의 아이러니한 상황 때문이다.
우리가 묶은 공립 알베르게는 한 방에 12명이 남녀혼숙으로 들어가는 방이다.
이날 나는 창가 2층 침대로, 장 회장님은 1층에 자리 잡았다.
우리보다 늦게 들어온 레지나씨는 장 회장님의 옆 1층 침대를 사용했다.
그런데 두 분이 이상하다.
서로 보면서 웃는다. 장 회장님이 웃으면 레지나씨가 따라 웃고, 레지나씨가 웃으면 장 회장님이 웃는다.
장 회장님이 침대에서 일어나다 머리를 찌는 상황인데, 그러자 두 분이 방이 떠내려갈 정도로 크게 웃으신다.
두 분의 모습이 우습기도, 귀엽기도 했다.
‘언어가 통해야만 서로를 이해하는 것은 아니구나! 사람을 바라보는 열린 마음이 소통의 시작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이탈리아 사람 프레도로부터 레지나씨의 얘기를 들었을 땐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시간이 날 때마다 순례길을 걷는다고 한다.
북쪽 길인 까미노 노르떼와 까미노 프란체스를 번갈아 가며 걷고 있다고 한다.
올해도 이미 까미노 노르떼를 완주했다고.
한 겨울이면 무척이나 추웠을 텐데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 느껴졌다.
오늘 길은 적당한 거리마다 쉬어갈 마을이 있었다.
출발한 지 세 시간이 지난 9시 30분쯤 시라우키에 도착했다.
시라우키에서는 빵과 커리로 간단한 아침식사를 마쳤다.
그리고 비야투에르타라는 마을에 점심을 먹고 2시 30분쯤 목적지인 에스테야에 도착했다.
오늘 길을 표현하면 포도밭 천지다. 에스테야까지 가는 길은 포도밭이 즐비하다.
에스테야는 아라곤 왕 산초 라미레스가 1090년에 세운 중세도시다.
칼릭스티누스 서책에 에스테야라는 마을은 빵과 고기와 생산이 맛있으며, 포도주도 뛰어나다고 기록된 이유를 실감한다.
내가 뒤늦게 에스테야에 도착했을 때 장 회장님과 로사씨는 함께 있지 않았다.
이유를 물어보니 로사씨는 예약해 놓은 호스텔로 갔다고 한다. 동시에 김예솔씨로부터 카톡이 와 있다고 알려주셨다.
에스테야보다 한 마을 더 가면 아예기라는 마을이 나오는데, 그곳 공립 알베르게가 깨끗하고 사람도 없다며 오라고 했단다. 깨끗하다는 말에 장 회장님께 아예기까지 올라가자고 재촉했다.
아예기의 공립 알베르게는 체육관 시설이다. 청결 상태는 양호했다.
3층이 숙박 공간이며 지하 1층은 어두운 세면장과 샤워장이 있다.
성수기인 5월부터는 알베르게 2층 체육관 한쪽에 마련된 식당에서 음식을 먹을 수도 있다고 한다.
이곳에서의 밤은 추웠던 기억이 난다. 라디에이터가 돌아가는 시간이 정해져 있는 것 같다. 그 넓은 공간에 난방한다는 것도 무리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세면장과 샤워장 물도 답답하리만큼 조금씩 흘러나온다.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한 밤이었다.
아예기 공립 알베르게에서 세탁과 샤워를 마치고 근처 슈퍼마켓에서 먹을 음식까지 구매를 완료하니 어느덧 저녁 6시가 되어간다.
깨끗한 잠자리 때문에 에스테야를 지나쳐 오긴 했지만, 나바라왕국의 수도였던 에스테야를 보지 않고 지나간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알베르게 통제 시간이 밤 9시라는 것도 확인하고, 장 회장님께 에스테야를 보고 오겠다고 말씀드렸다.
혹시 9시가 넘어 알베르게가 잠기면 장 회장님께 열어달라는 부탁을 드린 후 서둘러 에스테야로 출발했다.
에스테야는 11세기엔 ‘리사라(Lizarra)’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리사라는 바스크어로 별이라는 뜻이다. 이 마을이 스페인어로 변하면서 ‘별의 길’을 뜻하는 에스테야로 바뀐 것이다.
이곳에서 꼭 봐야 할 곳은 장소로 성 미카엘 성당(Iglesia de San Miguel), 성 세례자 요한 성당(Iglesia de San Juan Bautista)이다.
앞서 에스테야를 지나오면서 12세기에 지어진 나바라 왕궁과, 라카르셀다리, 성묘(무덤)성당은 이미 보았다.
성 미카엘 성당은 미카엘 대천사를 기리기 위해 지어진 것으로 12세기에 건축을 시작해 500년간 지어진 성당이다.
이곳에 입장하기 위해서는 예약이 필수다. 이미 시간도 저녁 7시가 넘는 때여서 내부 입장은 어렵다는 것을 알고 아쉬움을 남긴 채 발걸음을 돌렸다.
이어 근교에 있는 성 세례자 요한 성당으로 향했다. 여기에서 유명한 것은 제단화다. 14세기 르네상스시대에 만들어 진 것으로 두 요한(세례자요한과 사도요한)이 함께 제대를 바라보고 있다.
내가 성당에 들어갔을 때 8시 미사가 시작됐다. 미사를 끝내고 아예기 숙소까지 1시간을 걸어 올라가는 것은 너무 어두워지기에 내심 걱정됐다. 결국 미사는 포기하고, 숙소로 돌아가는 것을 택했다.
오늘은 무척 바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