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차, 팜플로나에서의 휴식 … 카페 이루나와 대성당 투어
팜플로나에서의 휴식
순례길을 시작한 지 4일째 첫 큰 도시에서 쉬는 날이다.
오늘은 팜플로나 대성당에서 미사를 보고 성당 박물관을 둘러볼 예정이다.
점심에는 맛있는 식사를 즐기며 카스티요 광장을 거닐고, 유심도 구입할 계획.
그 후 카르푸(마트)에 들러 신선한 계란과 식재료를 구매해 순례길을 떠날 준비를 하려한다.
성당 입구엔 오늘의 미사가 10시로 예정되어 있다는 안내문이 쓰여 있다.
이른 아침 시간이라 아직 시간 여유가 있어 카스티요 광장 '카페 이루나'에서 아침 커피를 즐기면서, 장 회장님과 함께 일정을 논의하기로 했다.
카페 이루나로 향하던 도중 우연히 필리핀 순례자 벨을 다시 만났다.
벨 역시 식사를 위해 카페를 찾고 있어서 그와 함께 성당 근처의 아늑한 카페에서 아침을 나누기로 했다.
우리가 아침을 먹은 곳은 커피와 빵이 함께 나오는 저렴한 세트메뉴가 있는 곳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데 벨이 우리 몫까지 모두 계산했다.
벨과 함께한 아침, 나의 세례명인 '엘리야'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고, 옛날 세부에서 했던 관광도 나눴다.
벨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가 독실한 가톨릭 신자라는 것에 새삼 놀랐다.
그에겐 현재 의사인 아들과 변호사인 딸이 있단다.
그런데 의사인 아들에게는 수차례 권했던 일이 ‘가톨릭 신부가 되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신부를 만드는 것이 자신의 사명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그러면서 내가 아직 독신이라고 하니, 그때부턴 나에게 신부가 되라고 권한다.
나는 되레 지금 67세의 벨이 사제서품을 받는 모습을 상상하고 있다.
식사를 마치고 카페 이루나로 향했다.
헤밍웨이가 사랑했다던 카페 이루나, 그 곳은 팜플로나의 중심지인 카스티요 광장에 자리하고 있었다.
유구한 역사를 지닌 이곳에서, 나는 헤밍웨이가 사랑한 팜플로나를 커피 한 모금과 함께 음미하는 시간을 즐겼다.
10시가 다가오자 마음이 다급해졌다.
빨리 팜플로나 대성당으로 이동해야 했다.
이 대성당은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건축되어 있었는데, 나는 이 양식에 대한 깊은 지식이 없다.
두꺼운 벽과 거대한 기둥, 아치 형태의 구조로 판단하면 로마네스크일 것이라 생각했다.
팜플로나 대성당은 600여년된 성당이다.
에스테반이라는 스페인 건축가에 의해 14세기에 지어진 이 대성당은 화재로 손상되어 고딕 양식으로 보수됐다.
9시 40분쯤, 대성당 안으로 다시 들어가니 이미 작은 소성당에서 미사가 이미 시작됐다.
할머니 두 분만이 미사를 보고 계셨다.
이날은 가장 젊은 보이는 신부님이 집전을 맡았다.
80세 이상으로 보이는 신부님은 파이프 오르간을 연주했다.
성당에 울려 퍼지는 오르간 소리와 성가가 마치 대성당을 가득 메워 퍼져나갔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이 아름다운 순간 속에서, 팜플로나 대성당은 내 마음 깊이 감동을 주고 있었다.
팜플로나 대성당은 그 안에 다양한 보물들이 숨어 있다.
먼저 눈의 띄는 것은 12세기에 만들어진 은으로 된 성모상이다.
나바라에서 왕이 될 때 반드시 성모상 앞에서 대관식을 거치도록 하는 전통에서 이 성모상이 큰 의미를 지닌다.
그 성모상이 팜플로나 대성당에 있는 것이다.
주변의 소성당들은 성인성녀들에게 헌정된 특별한 장소로, 특히 골룸바 성녀에게 헌정된 방이 가장 인상 깊이 남았다.
성녀 골룸바의 뼈가 들어있는 유물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골룸바 성녀를 여기서 만나는구나’
골룸바가 있는 이유는 그녀가 스페인 출생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잠시 골룸바의 일화를 소개하면, 그녀가 감옥에 갇혀 있을 때 간수가 그녀를 범하려고 했단다.
그 때 곰 한 마리가 나타나 간수를 공격해 그녀를 구해주었다.
골룸바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상징은 곰 또는 개가 연관돼 있다.
사람과 함께 곰과 개가 있거나, 사람이 공작의 깃털을 들고 있으면 골룸바 성상이다.
이 성당에는 바로셀로나 인근 몬세라트의 베네딕토 수도원에 있는 검은 성모상 짝퉁이 놓여 있다.
3년전 스페인 남부를 여행할 때 들렸던 모세라트의 기억이 새삼 떠올랐다.
검은 성모상은 치유의 기적으로 유명한 성모상이기에 이 성당에서도 만들어 놓은 것 같다.
대성당 중앙에 놓인 나바라왕 카롤로스 3세와 왕비 레오노르의 무덤도 이 곳에 있다.
그 위치가 성당 중앙이라 마치 팜플로나 대성당이 그들의 것인 것 같아 마음이 씁쓸하다.
과거에는 팜플로나 성당에서 면죄부를 판매했다는 사실이 눈에 띄게 부끄러웠다.
그 시절에는 돈을 많이 낸다면 천국으로 가는 문이 열린다고 믿는 가톨릭의 신앙이 불편하기도 했다. 현재의 입장료가 5유로인데, 이를 통해 천국으로의 문이 열릴지 잠깐이나마 상념에 빠져본다.
이어서 첨탑과 박물관을 둘러봤다.
성당 건립 과정을 보여주는 장소에서 장 회장님의 간결하면서도 강렬한 말이 기억에 남았다.
"서민들 피를 빨아 세운 성당이구만!"
예술과 외설의 경계가 모호하듯, 팜플로나 대성당을 보는 눈도 이렇게 다를 수 있음을 새삼 느낀다.
우리는 성당을 둘러본 후 타파스 골목으로 가서 점심을 해결하기로 했다.
라 만다라 데 라 라모스라는 타파스 가게에 들어가 다양한 종류의 타파스를 시켰지만, 이 스페인 전통 음식이 내 입맛을 즐겁게 하진 못했다.
저녁시간이 되어갈 무렵, 프랑스 유심 오렌지 유심을 구입했다.
우리 앞에 중국에서 온 청년들이 유심을 사고 있었는데, 사회주의 국가라 승낙절차가 까다로운 것 같다.
중국에서 얻어야 하는 해외 통신 승락에 시간이 많이 지체되고 있다.
기다리는 시간만 30여분이 넘어간다.
그럼에도 직원들은 승락만 기다리며 컴퓨터만 뚫어지게 보고 있다.
답답함을 견디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더니, 내 차례가 되었다.
내 것을 처리하는 데는 시간이 빠르다. 유심을 등록 거주국의 승낙이 쉽게 열렸다. 우리나라는 IT 강국이라 그런지 접속과 승낙이 빠르게 이뤄졌다.
‘역시 우리나라는 빨리빨리의 나라다!’
이날 내가 산 유심은 데이터 100기가에 통화무제한(국내만) 29일짜리 유심이다.
100기가는 원래 50유로인데 지금 반값 이벤트여서 25유로에 샀다.
‘진정 개이득이다’
조금 더 외국에 오래 있을것이라면 현지 유심 구입을 강력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