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차_생장 피에드포트와 발카로스…순례자 사무소와 55번 알베르게
생장 피에드포트와 발카로스
어제(3월 11일) 오후 4시쯤, 생장 피에드포트에 도착했다.
바욘을 출발해 생장까지 2칸짜리 지역 기차를 타고 이동했다.
그 날 지역기차에는 10여명이 승차했는데, 이 중 7명이 한국인이었다.
화가 이승희씨(55)와 농어촌공사를 퇴직하고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 위해 왔다는 두분, 부부, 장종혁 회장님, 그리고 나였다.
20여분 생장 중심부로 걸어 들어가니 영상에서 많이 보았던 익숙한 성벽이 나타났다.
저기를 올라 왼쪽으로 돌아가면 순례자사무실이 있음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저기 알아요. 저 따라 오세요. 저 성문으로 들어가 쭉 올라가면 성당이 나와요. 거기서 왼쪽으로. 그리고 다시 올라가면 순례자 사무실이 나와요.”
순례자사무실에 우리 7명이 함께 들어 갔다.
사무실 직원분들이 우리들의 크레덴시알을 발급해 주었고, 그 후에 한마디 하셨다.
“today’s mini korean day”-오늘은 작은 한국인의 날이다는 뜻이다.
모두가 55번 알베르게에 배정받았다.
55번 알베르게는 생장 시내를 내려다보는 멋진 경치를 즐길 수 있기로 유명하다.
3월 중순은 아직 비수기라 침대 선택도 넉넉해, 베드버그가 무서운 나는 밝은 창가 침대를 선택했고, 장 회장님은 현관쪽 1인용침대를 택했다.
알베르게의 1층은 식사와 휴게공간으로, 2층은 침실과 세면실, 화장실 등 숙박을 위한 장소로 구성돼 있다.
짐을 정리한 후 1층에 내려오니 시끄러웠다.
외국인분과 이승희씨와 농어촌공사분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바욘에서 만난 한국 청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바욘에서 생장에 오기 전, 그들은 청년 한 명을 만났다고 한다.
그 청년은 순례 배낭을 맡겨놓고 바욘 시내를 다녀온다고 했단다.
그러나 생장으로 출발하는 기차 시간이 다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 청년이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외국인을 포함한 이들 4명은 그의 배낭을 바욘역에 놔두고 올 수 없어 생장으로 가져오기로 결정했다.
이제 다시 그 청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이야기를 듣다 ‘까미노친구들’이라는 네이버카페의 소속 회원 중 3,4월 산티아고순례길 대화방에서 ‘배낭이 사라졌다’는 청년의 글을 본 기억이 났다.
그래서 카톡방에 ‘가방이 여기 있으니 찾아가라’는 메시지를 보냈고, 그 청년은 택시를 이용해 생장으로 와서 배낭을 전달받았다.
‘사람이 살아가는 곳에는 언제나 흥미진진한 일들이 생기는구나!’
이 날은 비가 억수로 쏟아져 우비를 입어도 하의와 신발은 축축이 젖었다.
생장에는 성모승천성당으로 불리는 주교좌성당이 있다.
일요일 밤인 오늘 저녁은 7시에 미사가 있다.
미사를 드리기 위해 성당에 들어가니 생장 주민들로 보이는 노인분들 10여명이 있었다. 순례자로 보이는 사람은 우리 뿐이다.
이 날 나이가 지긋한 주교님과 신부님 2분이 미사를 집전했다.
주교좌성당임에도 미사참여자 수가 이렇게 적다는 것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고, 한국교회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았다.
미사 끝에 우리는 순례자를 위한 축복기도를 받았다.
‘주님! 산티아고 순례길에 왔습니다. 설레기도 하고 두렵기도 합니다. 제가 잘 걸을 수 있도록 이끌어 주세요’
마음속으로 기도한 후 성당을 나와, 비와 함께 쏟아지는 축복을 느끼며 숙소로 향했다.
다음 날 새벽 6시.
설렘속에서도 잠을 잘 잤다는 것이 신기하다.
오늘부터 본격적인 순례의 시작이다.
6시 30분에 출발하기로 했지만 막상 출발하려니 밖이 어두워 출발시간을 7시로 늦췄다.
전 세계에서 온 순례자들이 바쁜 걸음으로 떠날 채비를 마치고, 하나둘씩 사라져갔다.
우리가 알베르게에서 제일 늦게 나온 듯 하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사람들은 모두 27km 떨어진 론세스바야스라는 곳까지 간다고 한다.
나와 장 회장님은 첫 날 무리하지 않기 위해 12km 떨어진 발카로스까지만 가기로 했다.
너무 일찍 출발하면 도착 시간도 빨라질까 걱정했다.
걷는다는 것은 그 날의 날씨와 관계가 깊다.
어제 저녁부터 그치지 않고 쏟아지는 비는 반갑지 않았다.
‘앞서 출발한 분들 정말 힘들겠구나!’
배낭을 멘 후, 그 위로 우비를 덮어쓰고, 비옷바지까지 완벽 무장을 했다.
이렇게 싸매면 나면 걷는 모양도 이상하고, 습기 배출도 되지 않아 온 몸에 땀이 줄줄 흘러내린다.
내 모습이 마치 오즈의 마법사 양철 나무꾼같다.
오즈의 마법사는 도로시라는 소녀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마법사를 만나러 가는 길을 그린 판타지 소설이다. 똑똑해지고 싶어 뇌를 얻고 싶은 허수아비, 빈 깡통 소리가 싫어 심장을 원하는 양철 나무꾼, 용기를 얻고 싶은 겁쟁이 사자를 만나 함께 걷는 과정을 그렸다.
오늘 나는 도로시 옆을 걷는 양철나무꾼 캐릭터다.
첫날 생장부터 발카로스까지 걷는 12km의 거리도 결코 쉽지 않았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장 회장님을 앞에 보내고 천천히 뒤따라 걸었다.
그렇게 걷다 보니 어느새 장 회장님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고,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게 됐다.
그런데 도로를 따라 걷다가 갑자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순례길 표식이 나타나지 않아 내가 가고 있는 길이 맞는지 의심이 들었다.
길을 잘못 들었다는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큰 차들이 빠르게 달리는 도로를 따라 계속 걷는 것은 분명 잘못된 상황이다.
구글 지도를 열어 내가 있는 위치를 확인했고, 비록 잘못된 길이지만 발카로스와 연결된다는 것을 확인했다.
2시간 정도 도로를 따라 길을 걷다, 건너편 다리 넘어 숲길쪽에서 내려오는 장 회장님을 발견했다.
그 순간, 장 회장님이 걷고 있는 길이 진짜 순례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본 회장님이 반가워 큰 소리를 회장님을 부르며 달려갔다.
그런데, 회장님의 첫 말은 나를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도로를 따라 왔어? 여기서 만나네! 난 여기까지 오면서 언덕을 몇 개 넘었어. 왜 이렇게 오르락 내리락 만든거야? 이럴 거면 도로 따라 걷는 게 더 편하겠어.”
편하게 걷자고 여기에 온 것이 아니지만, 막상 걷다 보면 좀 더 편한 길을 원한다.
언덕을 오를 때 힘들어 죽겠는데, 길을 내려가게 되면 또 올라가야 한다는 미래가 걱정된다.
이후에는 순례길 표식이 되어 있는 길을 따라 함께 걸었다.
회장님 말대로 오르락 내리락의 연속이다.
우리는 오늘 12km정도 걷기에 발카로스라는 마을에 금방 도착할 줄 알았다.
막상 걷다 보니 12km도 끝이 보이지 않는 먼 길이었다. 정말 발카로스까지 갈 일도 걱정됐다.
‘프랑스길은 첫 날이 제일 힘들다더니! 와 장난 아니네!’
이곳에 오기 위해 한국에서 걷기를 열심히 해 준비해왔지만, 막상 현장에서 부딪히는 어려움은 내가 초보순례자임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2시간 정도를 더 걸었다. 산 능선 위로 발카로스라는 마을이 보였다.
발카로스 마을로 올라가는 길은 등산처럼 느껴진다.
길의 경사가 70도는 될 정도로 수직에 가까워, 등에 짊어진 무거운 배낭에게 욕하며 마지막 온 힘을 짜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발카로스 마을에 들어섰다. 오후 2시다.
생장사무소에서 일러준 공립 알베르게에 갔더니, 문이 닫혀 있었다.
‘겨울 비수기라 열지 않을 것일까! 생장사무소 정말 너무하네! 이런 정보를 주다니!’
내 몸 상태를 생각하면 더 이상 갈 수도 없다.
이 마을에서 출발하면 론세스바야스까지 가야만 노숙을 피할 수 있다.
문 닫힌 공립 알베르게 앞에 앉아 근처 다른 숙소를 찾아보는데, 갑자기 알베르게 안에서 사람이 나왔다.
처음엔 그가 알베르게 주인이라 생각했지만, 그도 자신을 순례자라고 우리에게 소개했다. 그러면서 그는 현관문에 붙어 있는 종이를 가리키며 이 곳에 전화를 하라고 말했다.
종이에 적힌 번호에 전화를 했더니 알아들을 수 없는 스페인어가 울려 퍼진다.
내가 영어로 얘기해도 되돌아오는 소리는 스페인어 일색이다.
에라 모르겠다 생각한 나는 영어로 “나 여기 있어. 너 방 있니? 여기서 머물거야” 이 말만 반복했다.
전화기 넘어 딱 한마디는 알아 들었다.
“기다려!”
발카로스 공립 알베르게에서 크레덴시알에 첫 번째 스탬프를 찍었다.
우리가 입실할 땐 전화하라고 알려줬던 필리핀 순례자 홀로 입실해 있었다.
우리는 그 분께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 분은 여기까지 올라오는 길이 무척 힘들었다는 표정과 미소를 띄운 후 바로 침대로 돌아가 누워 휴식을 취하셨다.
알베르게에 도착하면 첫 번째 해야 할 일이 샤워와 빨래다.
이 알베르게에는 세탁기가 있었다.
장 회장님은 세탁기를 열어 비와 땅에 젖은 옷들을 넣고 세탁을 시작했다.
세제도 넣지 않고 그냥 돌리신다.
30분이 지나 세탁물을 가지러 갔는데 세탁기 문이 열리지 않았다.
문을 열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잡아 당기기도 하고, 옆에 있는 도구를 이용해 문을 뜯기도 해봤다.
‘실패다. 환장할 일이다.’
결국 다시 한번 돌리면 열릴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한번 더 세탁을 했다.
세탁이 끝나자 문이 열렸다.
‘사람은 참 똑똑하다’
세탁을 마친 후 장 회장님은 피곤하셨는지 침대로 가서 휴식을 취했다.
나는 발카로스라는 마을을 둘러보기로 하고 마을 언덕에 올라 웅장한 피네레산맥을 감상했다.
‘정말 멋진 곳이다. 내가 여기를 왔구나!’
저녁이 되자 이탈리아 가족 4명이 들어왔다.
오늘 발카로스 공립 알베르게에서 잠을 자는 사람은 나와 장회장님, 필리핀분, 부부와 아들, 딸 4명이 함께 온 이탈리아 가족 등 7명이 함께 잠을 잔다. 이탈리아 가족은 침낭도 없다. 그리고 4명이 거의 벗고 잔다. 민망하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했다.
숙소안에 다양한 국적의 문화가 사람들이 어우러져 자는 첫 번째 특별한 경험이다.
발카로스 공립 알베르게에서 첫 날을 보낸다.
"큰일이네. 이런 곳에서 어떻게 잘 수 있을까!"
공립 알베르게는 오래된 건물에다 방도 어두워 빈대(bad bug)가 숨어 살고 있을 것 같은 환경이다.
한국에서 챙겨 온 계피 나무 껍질을 침대 이쪽 저쪽에 쑤셔 넣었다.
빈대가 계피나무를 싫어한다는 정보를 미리 알고 비해 오길 잘했다.
순례길의 힘든 여정보다 빈대에 물리는 상상을 하면 그 공포가 더 크다.
아침이 되니 어제 설정해 놓은 알람이 울렸다.
다행히 가려움도 없고, 몸도 개운했다.
세수를 마친 후, 전날 슈퍼마켓에서 산 음식을 꺼내 아침식사를 했다.
입 맛에 맛지 않았다.
그럼에도 모두 먹는 이유는 살기 위해서 라는 표현이 어울릴듯하다.
"윤 국장은 잘 먹네. 여기서 살아도 되겠어.” 장 회장님이 무심히 꺼낸 이 말을 들었을 때 살짝 기분이 상했다.
"오늘 걷기 위해 먹는거에요. 정말 살기 위해 먹는 기분이에요. 입 맛이 없어도 어떻게든 드세요.“
알베르게를 나오려고 짐을 정리하고 있는데 관리자인 호세씨가 들어왔다.
호세는 거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사람으로 스페인 아프리카와 스페인 혼혈처럼 보였다.
우리는 호세씨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 후 알베르게를 떠났다.
아침 공기가 상쾌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면서는 음악을 듣지 않기로 결심했었다.
'내가 이 곳에 온 이유는 하느님과 대화하기 위함이니까!'
기도는 하느님과의 대화라고 여긴다.
그런데 정말 나는 대화를 하고 있었을까?
지금까지 내가 기도할 때 청원은 참 많이 했다.
무엇을 해 달라는 청원은 항상 해 왔는데 반대로 그렇다면 나는 응답을 기다린 적이 있는가?
"난 네가 이렇게 생각해 보면 좋겠어!"
혹시 계속 나에게 말하고 있지만 내가 귀를 닫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하느님은 나의 청원을 항상 듣고 있었지만, 나는 하느님의 응답을 듣고 있었는지.
순례길을 통해 그 분이 뭐라고 하는지 들어보자는 것이 내가 걷는 동안 음악을 듣지 않기로 결심했던 이유다.
첫날부터 이 결심은 산산히 부서졌다.
생장에서 발카로스로 올라올 때 너무 힘들어서 음악을 들었다. 음악을 들으면 피곤함이 덜했다.
출발 전 숙소에 도착해 사용할 무선 이어폰 2개를 챙겨왔었다.
그 중 하나는 골전도 이어폰으로 관자놀이에 붙여 놓으면 음악이 들린다.
주변 소리와 음악까지 들을 수 있는 고급 이어폰이다.
그런데 발카로스에 도착하자 골전도 이어폰이 고장났다.
하늘의 뜻인가보다.
'나와 대화한다고 여기까지 와서 지금 뭐하는 짓이야!' 호통 소리가 내 머릿속에 울린다.
그 분이 이어폰을 고장낸 것이 분명해!
‘첫날 여기까지 힘들게 올라 왔으니, 오늘은 어제보다는 쉽겠지’ 했던 생각은 어리석었다.
어제보다 더 급경사의 오르막이다. 오르막은 끝없이 이어졌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겠냐만, 이 길은 버겁게 느껴졌다.
숲길을, 도로를, 다시 숲길을, 계속 오르기를 반복했다. 쉴 장소도 없다.
그러다 피레네산맥 이바네타 골짜기를 4km 앞둔 지점에서 일이 터졌다.
장 회장님이 걷지를 못하신다. 10m를 가면 멈추고, 또 10m를 가면 쉬기를 반복했다.
나 역시 한발 한발 움직이는 것이 너무 버겁다.
힘든 상황에 길을 걷는 서로의 스타일도 달랐다.
나는 1시간을 걸으면 30분을 내리 쉬는 것에 반해, 장 회장님은 걷다가 2분, 걷다가 2분씩 짧게 끊어 쉬어 가는 스타일이다. 이제부터는 서로의 걷는 루틴에 맞춰 따로 움직여야 한다.
나는 회장님보다 앞서 올라가 30분을 쉬겠다며 앞서 길을 재촉했다.
‘아이고 죽겠네!’ 이 말만 되뇌이며 걸었다.
다리가 천근만근이다.
그렇게 걷다보니 이바네타가 눈에 들어왔다.
‘다 왔다!’
갑자기 다리에 힘이 다시 붙는 신기한 경험이다.
이바네타에 도착해 산살바도르(구세주) 경당을 발견했다.
이바네타의 고도는 1,057m로, 올라서자 매서운 바람이 몰아쳤다.
부는 바람은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강력했고, 그 바람을 피해 살바도르 경당 입구에 가서 휴식을 취했다.
몸은 추위에 부들부들 떨고 있지만 눈만은 정말 즐거웠다.
피레네 산맥의 풍경은 아름답고 황홀했다.
내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이렇게 아름다운 길을 걸어 올라왔구나!'라는 생각에 대견스럽기도 했다.
장 회장님을 기다리며 쉬는 동안 현실 자각의 시간(현자타임)이 찾아왔다.
피레네 산맥을 오르며 '왜 이런 미친 짓을 하고 있을까!' 하는 회의감이 밀려왔다.
순례길을 걷는 사람들이 '미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아직 40여일을 가야 한다는 생각에는 숨이 막혔다.
순례를 시작한 지 겨우 둘째 날인데 벌써부터 밀려오는 회의감이 밀려온다.
내 배낭은 8kg인데 반해 장 회장님의 배낭은 12kg로, 출발 전부터 그의 무거운 배낭을 걱정했었다.
고집이 센 회장님이었기에 무리한 무게를 지고 가실 생각이셨나보다.
‘젊어서 고생은 사사도 한다 했으니, 65세 먹은 청년이기에 스스로 고생을 선택했겠지!’
한참을 이런 저런 생각에 하다 회장님 걱정에 이바네타 고개길로 돌아갔다.
멀리서 장 회장님이 올라오는 모습이 보였다.
배낭이 아닌 다른 무엇을 업고 올라오는 모습이다.
얼굴은 땅에 묻히고 허리를 90도로 굽힌 채, 양 손은 사람을 업은양 등 뒤로 무언가를 붙잡고 오는 모습이 굉장히 어색하고 안쓰러웠다.
드디어 이바네타에 도달했고, 환영과 응원의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회장님의 눈에 초점이 없다.
‘정신줄 놓은 사람이다.’
나는 장시간 쉬기를 권하지만, 그는 오래 쉬면 갈 수 없다며 잠깐 쉬고 가자고 했다.
이제부터 론세스바야스까지는 내리막길이다.
우리는 1시간 정도 더 걸어 그 곳에 도착했다.
론세스바야스는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알베르게가 유일한 숙소다.
나라바 왕 산초 7세와 그의 부인 클레멘시아의 유해가 이곳 산타 마리아 왕립성당에 묻혀 있다.
13세기 초에 산초 7세가 프랑스 고딕 양식으로 성당을 지으라는 명령을 받아 만들어졌기에 죽어서도 이곳에 묻혔을 것이라 추측해 본다.
나와 장 회장님은 순례자 저녁 식사를 마치고 산타마리아 성당의 저녁 7시 미사를 보러갔다.
또 순례자 강복도 받았다.
오늘의 복음(루가 10장 25절~37절)은 율법 교사와 예수의 대화를 담은 '착한 사마리아인 이야기'였다.
한 유대인이 강도에 당해 거의 죽을 위기에 처해 길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첫 번째 만난 사람은 유대인 제사장인데, 그를 두고 지나쳐갔다.
또 다른 사람은 유대인 종교 지도자였는데 그의 곁을 지나갔다.
같은 유대인이지만 그를 도와주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다른 민족인 사마리아사람이 그 곳을 지나치다 강도당한 사람을 불쌍히 여겨 치료해주었다.
그리고 그를 여관에 데려가 밤새 돌봐주고, 여관주인에게 돈을 주며 그들 돌봐달라고 부탁했다.
예수님은 이러한 비유를 통해 "그러면 이 세 사람 중에서 강도를 만난 사람의 이웃이 되어 준 사람은 누구였다고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을 던지고, 율법 교사는 "그 사람에게 사랑을 베푼 사람입니다."라고 답했다.
예수는 "너도 가서 그렇게 하여라"라는 말로 끝맺는 이야기다.
이 착한 사마리아인 이야기는 순례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국적과 인종, 배경이 달라도 필요할 때 도우라는 교훈을 주는 것 같다.
나는 오늘 혹시 장 회장님을 혼자 두고 온 것은 아닌지 생각해봤다.
이로 인해 오늘 복음이 나를 훈계하는 것 아닐까 생각했다.
나는 오늘 착한 사마리아인 이야기에 등장한 한 유대 지도자처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