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해지자는 결심 내 삶에 대한 성찰 … 내가 순례를 떠나는 이유
한 달 남짓 출발을 앞두고 어머니와 큰누나에 대한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어머니는 유방암, 큰누나는 갑상선암 확진이다.
한 해 전 탈장 수술로 인해 가족들이 나를 위해 희생했던 시간이 떠올랐다.
가족이 아픈 지금, 이제 내가 희생과 정성을 다해야 할 때라고 느꼈다.
가족에게 보내는 사랑의 양을 늘려야 한다는 마음이 더욱 강해졌다.
이런 시기에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는 것이 나만의 이기적인 행동처럼 느껴졌다.
"아파 봐야 아픈 사람의 마음을 안다"는 말이 마음속을 울렸다.
지금은 어머니와 큰누나 곁에서 함께 해야 할 때 인 것이다.
더 큰 걱정은 어머니다.
전북대병원에서 받은 재조직검사 결과, 유방암의 경우 다른 부위로의 확산, 즉 전이가 더 중요한 문제였다.
의사선생님은 만일 림프관으로 전이가 발견된다면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할 것이라고 한다.
다행스럽게도 어머니의 검사 결과 림프선 전이는 없어 안도의 숨을 쉬었다.
어머니의 수술 일정은 3월 23일로 빠르게 확정됐다.
수술 이후 병상 생활에 필요한 물품과 어머니 주변의 여러 가지 일들을 처리해 줄 사람이 필요하다.
나는 가족 중 막내로 아직 결혼하지 않고 부모님과 함께 사는 '캥거루족'이기에 어머니가 대부분의 일을 나에게 부탁하셨다.
예전엔 항상 나에게만 집안일을 시키는 것에 불평, 불만이 쏟아냈었는데!
어머니의 큰 수술을 앞두고 지금까지 쏟아냈던 불평 불만조차 죄스런 느낌이다.
“산티아고 가는 거 포기할래! 엄마 수술도 그렇고 누나도 갑상선암 수술하면 왔다 갔다 해야 할 일들이 많을 거잖아. 산티아고 순례길은 다음에 갈게!”
어머니는 오히려 비용 문제를 제기했다.
“지금까지 얼마 들었어? 안 가면 얼마나 손해 보는거야?”
산티아고 순례길에 가겠다고 처음 말했을 때 어머니는 ‘거기를 왜 가냐고! 그럴 돈 있으면 노후를 대비하는 데 저축하라고!’ 못마땅해 하셨다.
그러나, 지금은 돈이 들어갔으니 어떻게 하든 가라는 것이다.
“유방암이 큰 수술도 아니고, 전이도 없다고 하니 아무 문제 없어. 아무 걱정하지 말고 그냥 갔다 와!”
어머니도 그렇고 큰 누나도 결심을 했으니 갔다 오라고 애둘러 말씀하셨다.
순례길 동행자인 장종혁 전 전주교구 가톨릭농민회 회장님도 고민거리였다.
내가 포기하면 장 회장님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분명했다.
영어 한 마디도 못하고 해외여행을 준비해 본 경험이 전혀 없어, 사실상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
“회장님? 어머니와 누나 수술 때문에 포기해야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어머니와 누나는 갔다 오라고 하는데, 속마음은 안 갔으면 하는 것은 아닌지 판단이 안 서요.”
장 회장님은 모든 것을 가족들에게 맡기고 갔다 왔으면 하는 눈치였고, 조심스럽게 ‘한번 결정했으면 가자’는 말씀을 하신다.
치유걷기 프로젝트로 친해진 형은수와 이정관 선생님과 상의했다.
두 분은 내 갈등하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워했다.
형은수 선생님은 이전에 산티아고 순례길을 경험한 분으로, 순례길을 완주한 후 얻게 될 축복과 은총을 수차례 기쁨에 차 말씀 주신 분이다. 더불어, 준비 과정에서 필요한 조언과 물품에 대한 안내도 해 주셨다.
형 선생님은 어머니와 누나의 수술 돌봄을 가족들에게 맡기고 갈 것을 권했고, 이정관 선생님 역시 결심한 대로 행하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했다. 주변 분들은 모두 심각한 상황이 아니라면 갈등하지 말고 가기를 권유했다.
문규현 신부님께 갈등 중인 내용을 얘기했더니, 신부님은 까미노 데 산티아고에 대해 다른 맥락에서 이야기를 꺼내셨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아무나 갈 수 있는 길이 아니야. 그 길은 선택받은 사람만이 갈 수 있는 길이야.”
출발 전 당시엔 이해할 수 없었던 말이었다.
선택받은 사람만이 갈 수 있는 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것은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인에게는 언제나 하느님과 대면하는 소중한 시간을 갖는 것이다.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기회가 되는 시간이라 생각한다.
믿는 사람이든, 믿지 않는 사람이든, 이 길을 걷는 것 자체만으로 축복과 은총의 발걸음이 돌아온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다.
어머니에게 주변 사람들의 의견을 전하고, 순례길을 떠나기로 한 결심을 전하였다.
어머니가 내게 건넨 한 마디는 마치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처럼 들렸다.
“아무 걱정하지 말고 잘 갔다 와!”
3월 7일.
우리는 인천국제공항에 있었다.
나와 장 회장님은 태운 비행기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향해 날아올랐다.
나의 발걸음
과거의 떨림과 현재의 어지러움
미지의 미래에 희망을 걸어봐
불안과 걱정의 파도에 휘둘리지 않는 나
이제는 이길 용기를 갖고 단단하게 서 있어
기도 속에 순례길을 걷는 이 순간
다짐과 강인함으로 가득 찬 발자취를 따라가네
천천히 한발 한발 걸으며
불안한 파도를 자유롭게 건너가리
나와 이번 여정을 함께하는 장종혁 전 가톨릭농민회 회장님과 나눈 대화다.
“회장님은 왜 순례길을 걸으시려고 하시나요?”
“나는 비우기 위해 가는 거야!”
“회장님은 무엇을 비우실거에요?”
“걸으면 뭔가 비워지겠지!”
순례길을 동행하는 장종혁 회장님이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이유가 무척 궁금했다.
비우기 위함이라는 짧고 굵은 답변은 나를 맥빠지게 만들었다.
돌이켜 보면 회장님의 대답이 얼마나 통쾌하고 명확한 대답이었는지!
비행기 안에서 내가 걷는 순례길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봤다.
그런데 갑자기 문득 떠오른 것은 문규현 신부님의 성구였다.
“아담아? 너 어디 있느냐?” 창세기 3장 9절에서 나온 이 구절은 아담과 하와가 죄를 저지르고 부끄러움을 알게 되어 숨어버린 상황을 다루고 있다.
문규현 신부님이 왜 이 성구를 선택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메시지는 사람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무엇을 하고 있어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하는 질문으로 여겨졌다.
문 신부님이 가진 신앙의 깊이가 헤아려지지 않는다.
신부님의 성구는 '나는 누구, 여긴 어디'라는 정체성을 끊임없이 확인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 같다.
이번 순례길을 통해 더 깊이 들여다 봐야겠다.
40일간의 순례 여정 동안 버려야 할 것에 대해 곰곰히 생각했다.
먼저, 내 우유부단한 모습에 대해 깊이 성찰해 보자.
결단력 부족과 휘둘리는 모습, 거절의 용기와 사명감 부족으로 인해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는 모습으로 점철된 것 같다.
이로 인해 쉽게 포기하고 변화를 원망과 분노로 대처하는 경향이 있었다.
지나온 삶에 대한 솔직한 반성을 위해 40일간의 순례길을 통해 내 삶에 대한 깊은 사색하는 시간을 갖자.
‘철의 십자가’를 만나고 싶은 열망도 크다.
크루스 델 페로(Cruz del ferro)로 순례자들 사이에서 불리는 이 장소는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중요한 곳이다.
폰세바돈 언덕 정상에 세워진 이 십자가는 순례자들이 가장 큰 짐, 간절한 기도, 또는 버려야 할 것을 내려놓는 곳으로, 순례의 정점이다.
“회장님은 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세요?”
“버리기 위해서 가는 거야”
산티아고 순례길은 참 신비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부엔까미노!(Buen Camino)”
이는 ‘좋은 길’이라는 뜻으로 순례자가 서로 만나면 주고받는 축복 인사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면 그렇게 친구들이(동료 순례자) 생겨난다. 그래서 산티아고 순례길은 4명이 한 그룹이라는 특별한 의미가 생겨났다.
놀랍게도 단체로 순례를 온 사람들도 각자 4명이 한 조를 이뤄 모이게 되고, 홀로 걷던 사람들도 어느새 4명의 모둠으로 변해 있다.
나 또한 처음부터 순례길을 함께 한 장종혁 회장님(64), 필리핀에서 온 벨(67), 그리고 이탈리아 돌로미티에서 온 프레도(58)와 함께 모둠이다.
생각해 보면 장 회장님은 미국에서 온 재미교포 로사(65) 자매님, 필리핀의 벨, 그리고 내가 한 모둠이었던 것 같다.
▶ 알아야 할 것_크레덴시알, 세요, 알베르게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순례자의 70%는 프랑스길을 선택한다.
프랑스 길의 정식 명칭은 ‘까미노 프란체스’다.
이 길은 남프랑스 국경마을인 생장 피에드포트에서 시작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이어지는 총 길이 800km의 길이다.
이 구간을 걷기 위해서는 40여일의 시간이 소요되며, 당연히도 역사와 전통이 깃든 다양한 도시와 마을을 거쳐야 한다.
생장에 도착한 사람들은 순례자가 되기 위해 가장 먼저 순례자 여권을 받는다.
이 여권은 ‘크레덴시알’이라고 불리며, 순례자 전용 숙소인 알베르게를 이용하고, 순례중임을 확인하기 위해 사용된다. 크레덴시알을 소지하고 있다는 것은 저렴한 순례자 숙소에서 묵을 자격이 있다는 뜻이다.
알베르게에 도착하면 순례자는 크레덴시알을 보여 순례자임을 증명하고, 이 곳에서 쉬어 갔음을 확인해 주기 위해 스템프(세요)를 받게 된다.
이를 통해 순례자는 어디서부터 걷기 시작했고, 어느 코스를 따라왔는지 확인할 수 있으며, 이러한 정보는 순례 인증서를 받을 때 필요한 기초 자료가 된다.
크레덴시알은 여러 곳에서 받을 수 있지만, 순례 인증서는 오직 산티아고 대성당에서만 발급할 자격이 주어진다.
▶ 까미노 프란체스의 매력
까미노 프란체스를 걷게 되면 세 가지 매력에 빠지게 된다.
첫째는 스페인의 멋진 풍경이다.
웅장한 피레네 산맥과 드넓은 메세타 평원, 다양한 숲길과 중세풍의 마을이 한 폭의 그림처럼 보여진다.
“까미노를 걷다 보면 어디를 찍든 윈도우 배경화면 같아요.”
함께 걸었던 어느 한국 순례자의 표현이 너무도 마음에 든다.
둘째는 다양한 볼거리들이다.
중세 문화, 성인들의 무덤, 예수의 성배, 가우디 건축물, 그리고 웅장한 고딕성당이 등 역사와 예술이 어우러진 다양한 명소들이 즐비하다.
셋째는 전 세계 각국에서 온 순례자들과의 소통이다.
길을 걷다 보면 만국의 공용어인 영어를 잘 하지 못하더라도 자연스럽게 그들과 동행하게 된다.
순례자들과 떠뜸떠듬 얘기하면서 까미노의 경험이 더욱 풍부해지고, 눈빛만 봐도 무엇을 얘기하고 있는지 절로 느끼게 된다.
특히 한국사람은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저절로 연예인이 되는 것 같다.
홀로 걷고 있을 때 마주치게 되는 유럽인들이 항상 먼저 말을 걸어온다. 그리고 그들은 항상 이렇게 소리친다.
“사진 찍자!(Take a Photo!)”
▶ 힘들어 죽겠는데…눈물이 글썽
800km를 걸어야 하는 까미노 프란체스는 쉬운 길은 아니다.
그만큼 각오도 필요하다.
어깨는 떨어 질 듯 아파 오고, 도저히 걷지 못할 물집의 고통이 엄습해 온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다음 날이 되면 또 다시 걷고 있는 내 자신을 만나게 된다.
다른 사람이 순례길을 걷고 싶은데 망설이고 있다면 나는 주저 않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걱정하지 말고 떠나라! 그대의 걱정 만큼 기쁨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헤밍웨이가 사랑한 도시 팜플로냐로 들어가 전 사발디카라는 마을이 있다.
다음은 사발디카의 성 스테파노 성당에 들어가면 놓여있는 ‘순례자의 행복’이라는 내용이다.
왠지 예수의 진복 8단 닮아있다.
순례자의 행복들(The Beatitude of the Pilgrim)
1. 행복하여라. 순례의 길이 눈을 열게 하여 보이지 않는 것도 볼 수 있게 한다는 것을 발견하는 순례자여.
2. 행복하여라.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보다 목적지를 향해 함께 걸어가는 것에 마음을 두는 순례자여.
3. 행복하여라. 길을 명상할 때, 그 길이 수 많은 이름들과 여명으로 가득 차 있음을 발견하는 순례자여.
4. 행복하여라. 진정한 길은 그것이 끝났을 때 비로소 시작한다는 것을 발견하는 순례자여.
5. 행복하여라. 배낭은 비어 있지만 마음은 풍요로운 느낌들과 벅찬 감동으로 가득해진 순례자여.
6. 행복하여라. 옆에 있는 것을 돌아보지 못하고 혼자서 백 걸음 앞서 나가는 것보다는 한 걸음 뒤로 가서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이 훨씬 더 가치롭다는 것을 발견하는 순례자여.
7. 행복하여라. 당신이 길을 벗어나거나 빗나간 것에도 놀라워하며 그 모든 것에 감사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순례자여.
8. 행복하여라, 순례자여. 당신이 만일 진리를 찾고 있고, 그 길에서 생명을 만들며, 자신의 삶의 길을 만들어가고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결국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분을 찾기 위한 것이라면.
9. 행복하여라, 순례자여. 당신이 이 길에서 참된 자기 자신을 만나게 되고, 서둘지 않고 충분히 머물면서 마음속에 그 이미지를 잘 간직할 수 있다면.
10. 순례자여, 이 길이 큰 침묵을 품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고, 그 침묵은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하느님을 만나는 ‘기도’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대는 정녕 행복하여라!
순례를 시작한지 4일정도 지나면 이 글을 만나게 된다.
이 시간이 되면 몸이 아파 와 힘들어 죽겠다는 생각에 빠지게 되고, 내가 왜 사서 이 고생을 하는지 한심하는 상념이 스며드는 때다.
그 당시 글을 읽을 때 왜 그렇게 서글프고, 눈물이 핑 돌던지! 그리고 그래 가자!라는 결심이 새로 섰다.
지금도 이 글을 읽으니 그 때의 느낌이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