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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파담 Sep 25. 2024

08. 눈에 보이는 순간 길이 멀어진다

8일차, 이라체, 로스 아르코스 그리고 토레스 델 리오…순례길 제1법칙

오늘은 로스 아르코스까지 21.7km를 걸어야 하는 날이다.

결론을 먼저 얘기하자면, 산솔을 지나 토레스 델 리오까지 10km를 더 걷게 돼 30여km를 걸은 힘겨운 하루였다.

에스테야에서 늦게까지 무리를 했던 탓인지 아침에 일어나니 컨디션이 그다지 좋지 않다.

알베르게를 나선 시간은 아침 7시.

와인샘을 만나기 위해 일찍 출발했다.

형은수 선생님으로부터 순례길의 명물인 이라체 와인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나는 와인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 내가 즐겨 마시는 술은 맥주가 유일하다.

20년전에는 와인을 과하게 마셔 숙취 때문에 3일동안 힘들게 지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순례길 명물인 이라체 와인샘에서는 살짝 맛만 볼 요량이다.

이라체 와인샘을 찾아 해맨 첫 관문

에스테야에서 4km를 가면 이라체에 도착하는데, 순례길의 오른쪽만 보고 가면 와인샘을 찾을 수 있다는 정보는 숙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도착해서도 와인샘을 찾을 수가 없었다.

성 마리아 수도원(Santa Maria la real de Irache)까지 도착해서는 찾는 것을 포기했다.

‘이라체 와인샘아, 너는 나와 인연이 없구나!’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곳은 아침 8시에 개방되기 때문에 이른 시간에 온 우리가 보지 못한 것이 당연했다. 와인을 실컷 마실 생각도 없었디만, 순례자로서 기억해야 할 장소를 놓치니 마음이 찜찜했다.

컨디션도 좋지 않은 상태에서 원했던 곳까지 보지 못하니 아침 기분이 더 침울하다.

길은 중간중간 숲길이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평지에 가까웠다.

길이 편하다 보니 12시가 되기도 전에 목적지인 로스 아르코스에 도착했다.

점심을 먹기 위해 근처 카페를 찾다 성 마리아성당(Iglesia de Santa Maria de los Arcos)앞에서 운 좋게 카페를 발견했다.

한국을 떠나 지금까지 밥을 먹어본 적도 없고 기분도 그렇고 해서 빠에야를 시켜 먹었다.

점심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성당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마리아성당의 모습. 12세기에 지어진 성당으로, 16세기 르네상스와 17세기 고딕, 18세기 바로크 양식으로 증축된 성당이라고 한다.

오늘은 일요일이구나’

나와 장 회장님은 사람들을 따라 마리아성당에 들어가 주일미사를 드렸다.

오늘 미사 집전은 두 신부님이 하셨다. 무척 젊어 보이는 신부님들이었다. 아마도 사제서품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하다. 지금까지 나이 지긋한 신부님들만 보다 젊은 신부들의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아진다.

미사에 온 신자들은 대부분 노인들이었다.

로스 아르코스 마을도 한국의 여느 시골처럼 초고령사회에 접어들고 있는 것 같다. 

성당에서 내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것은 성가대다.

성가대석은 뒤편 2층이어서 그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목소리만 들어봤을 때 성가대원들이 대부분 노인들일 것이라 예상했다. 그들의 화음도 맞지 않는다. 2부 합창을 부르는데 음을 이탈하는 소리가 계속 귀에 거슬렸다.

더구나 오르간과 성가대가 따로 논다. 오르간이 앞서고 성가대의 노래는 그 뒤를 따라온다.

오르간과 사람간의 돌림노래다. 어떻게 했길래 저렇게까지 불협화음을 낼 수 있는 것일까?

나는 자꾸 웃음이 나는데, 웃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신자들 앞에서 큰 실수를 하지 않을까 걱정이 들었다.

기분 나빴던 상상을 하며 분심 가득함 속에서 미사 시간을 버텼다.

‘그래도 버텼으니, 내가 대견하다’

미사가 끝나고 나왔을 때는 오후 1시가 되어 있었다.

알베르게를 찾기에는 아직 이른 시간이라 장 회장님과 상의해 7km더 가서 산솔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쉬기로 했다. 로스 아르코스에서 산솔로 가던 중 종아리가 심하게 아파 오기 시작했다.

20km를 넘기는 순간, 내 몸에 무리가 왔다는 신호를 경험한 첫 번째다.

산솔까지 가는 1시간 30분동안은 무척 힘이 들었다.

그늘도 없어 뜨거운 햇볕 아래를 계속 걸어가야 했다.

산솔이라는 마을이 시야에 보이지만, 아무리 걸어도 제자리걸음 마냥 닿지 않는다.

눈으로 보면 지척의 거리다.

도착할 마을이 눈 앞에 보이는 순간부터 배낭은 두배의 무게로 변하고, 종아리엔 어느새 모래주머니를 채워진다.

이것은 순례길의 공통 제1법칙이다.

저 멀리 산솔이 보인다. 눈으로 보면 더 가까워 보인다. 그러나 아무리 걸어도 저곳에 닿질 않는다

고통의 시간을 이겨내고 산솔에 도착했다.

‘이제 다 왔다.’ 알베르게를 찾아가 푹 쉬면 된다.

우리가 찾은 알베르게는 ‘Open round the year’-1년 내내 열림이라 까미노앱이 안내한 곳으로, 순례자들이 5점 만점에 4점을 준 준수한 숙소다.

그러나 알베르게 도착했을 때, 문에 붙어 있는 종이는 나를 허탈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Close’-닫힘.

벌써 3시반이다.

더 이상 걸을 힘도 없다.

장 회장님과 길 한가운데에 배낭을 던져놓고 철푸덕 앉았다.

길 바닥에 앉는 것을 생리적으로 싫어하는 나임에도 더 이상 생각나지 않았다.

무조건 앉을 자리가 필요했다.

이제부터는 숙소 찾아 삼만리다.

가장 가까운 토레스 델 리오에 호스텔이 있다 해서 일단 그곳으로 향하기로 했다.

천근만근한 발을 끌고 안드레아 호스텔에 도착했다. 산솔 숙소가 닫혀서 그런지 이 곳에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반가운 얼굴들도 이곳에서 다시 만났다.

김예솔(사라)씨도 먼저 와 있었다. 레지나씨도 왔다.

이탈리아 순례자 프레도(55)도 함께다.

서울에서 온 이현아(35)씨는 처음 만났다. 세탁을 하느라 숙소에서 가장 분주하게 움직였던 사람이기에 자주 지나치기는 했지만, 통성명을 하지 않아 처음에는 그녀가 일본인 또는 중국인 아닐까 생각했었다.

장 회장님은 1층 자리를, 나는 2층을 배정받았다. 항상 함께 Check-in(입실)을 했기 때문에 같은 침대를 배정받았다. 

토레스 델 리오의 성묘성당(맨 위 중간)이 이 마을의 명물이다. 이 성당은 예루살렘의 예수님의 무덤이 있는 성묘성당을 모방해 지었다고 한다.

어쟀든, 반가운 사람들의 얼굴을 보니 피곤함이 싹 가셨다.

숙소에 들어서면 순례자들의 일상은 대부분 비슷하다.

세탁과 샤워.

잠깐의 휴식.-독서, 산책, 낮잠 등

그리고 저녁식사 후 취침.

먹고, 자고, 걷고.

이 세 가지가 순례길의 전부다. 

오늘 저녁식사에서 같은 테이블에 앉은 사람은 한국인 4명, 이탈리아인 프레도, 프랑스인 레지나, 네덜란드인 A씨(이름 모름) 등 모두 7명이다.

저녁식사동안 나를 즐겁게 해 준 사람은 장 회장님이다.

네덜란드 A씨가 우리를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 물었을 때, 한국사람들은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 오빠라고 부른다고 말해줬다.

그러자 장 회장님한테 “오빠” 하는 것이다.

“회장님? 딸 같은 사람에게 오빠 소리 들으니 젊어지는 기분이시죠?” 

나는 장난이 더 치고 싶어졌다.

“오빠 밥 쳐 먹어.”

뒤에 단어를 붙여주면 더 친근한 표현이 된다고 알려줬더니, 정말로 따라 한다.

장 회장님을 보며

“오빠, 밥 쳐 먹어.”

모두가 한참을 웃었다. 

프레도는 재밌는 사람이다. 그는 ‘인싸기질’이 다분하다.

그는 필리핀 순례자 벨처럼 선원생활을 했다고 한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배를 탔다고 하며 한국에도 부산과 울산에 온 적이 있다고 했다.

이현아씨가 자신이 걸음이 느려 항상 남들보다 앞서 출발하는 데도 도착이 늦다고 한다고 하자,

“Snail girl”-달팽이 소녀

그녀에게 별명을 지어줬다.

검지와 중지로 걷는 흉내를 내는 모습이 너무 우습다. 

7시에 시작된 저녁 식사는 9시가 가까워져서야 끝났다.

나는 토레스델리오를 잠깐이나마 산책할 생각에 자리에서 먼저 일어났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산솔은 예뻤다.

불과 몇시간 전까지 그렇게 싫었던 산솔이 이제는 이쁘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다.

오늘도 그렇게 하루가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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