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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파담 Sep 20. 2024

1.3.시작하며_누구나 해도 아무나 할 수 없다

청천벽력같은 갑작스러운 소식 … 산티아고 순례길 다음기회로 

떠나는 자의 뒷모습은 축복과 은총이어라

축복과 은총의 발걸음

야고보의 뜻을 품은 피스테라 바닷가

2000리 은총의 발걸음을 뿌리고

매일 매일 떠나는 사람의 뒷모습은

순례자의 발자국

새로운 이야기를 엮어가며

피로한 발바닥에 삶의 회복을 뿌리는 축복

우리는 순례자로, 바람에 실려가 듯

인생의 끝을 향해 쉼 없이 걸어가네



스페인 마드리드 알무데나성당 꼭대기에 세워진 대야고보(왼쪽)와 바르톨로메오 성상. 대야고보는 순례자를 이끄는 지팡이와 호리병을 들고 있다.

한 달 남짓 출발을 앞두고 어머니와 큰누나에 대한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어머니는 유방암, 큰누나는 갑상선암 확진이다.

한 해 전 탈장 수술로 인해 가족들이 나를 위해 희생했던 시간이 떠올랐다.

가족이 아픈 지금, 이제 내가 희생과 정성을 다해야 할 때라고 느꼈다.

가족에게 보내는 사랑의 양을 늘려야 한다는 마음이 더욱 강해졌다.

이런 시기에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는 것이 나만의 이기적인 행동처럼 느껴졌다.

"아파 봐야 아픈 사람의 마음을 안다"는 말이 마음속을 울렸다.

지금은 어머니와 큰누나 곁에서 함께 해야 할 때 인 것이다.

더 큰 걱정은 어머니다.

전북대병원에서 받은 재조직검사 결과, 유방암의 경우 다른 부위로의 확산, 즉 전이가 더 중요한 문제였다.

의사선생님은 만일 림프관으로 전이가 발견된다면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할 것이라고 한다.

다행스럽게도 어머니의 검사 결과 림프선 전이는 없어 안도의 숨을 쉬었다.

어머니의 수술 일정은 3월 23일로 빠르게 확정됐다.

수술 이후 병상 생활에 필요한 물품과 어머니 주변의 여러 가지 일들을 처리해 줄 사람이 필요하다.

나는 가족 중 막내로 아직 결혼하지 않고 부모님과 함께 사는 '캥거루족'이기에 어머니가 대부분의 일을 나에게 부탁하셨다.

예전엔 항상 나에게만 집안일을 시키는 것에 불평, 불만이 쏟아냈었는데!

어머니의 큰 수술을 앞두고 지금까지 쏟아냈던 불평 불만조차 죄스런 느낌이다.


“산티아고 가는 거 포기할래! 엄마 수술도 그렇고 누나도 갑상선암 수술하면 왔다 갔다 해야 할 일들이 많을 거잖아. 산티아고 순례길은 다음에 갈게!”

어머니는 오히려 비용 문제를 제기했다.

“지금까지 얼마 들었어? 안 가면 얼마나 손해 보는거야?”

산티아고 순례길에 가겠다고 처음 말했을 때 어머니는 ‘거기를 왜 가냐고! 그럴 돈 있으면 노후를 대비하는 데 저축하라고!’ 못마땅해 하셨다.

그러나, 지금은 돈이 들어갔으니 어떻게 하든 가라는 것이다.

“유방암이 큰 수술도 아니고, 전이도 없다고 하니 아무 문제 없어. 아무 걱정하지 말고 그냥 갔다 와!”

어머니도 그렇고 큰 누나도 결심을 했으니 갔다 오라고 애둘러 말씀하셨다.

순례길 동행자인 장종혁 전 전주교구 가톨릭농민회 회장님도 고민거리였다.

내가 포기하면 장 회장님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분명했다.

영어 한 마디도 못하고 해외여행을 준비해 본 경험이 전혀 없어, 사실상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

 “회장님? 어머니와 누나 수술 때문에 포기해야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어머니와 누나는 갔다 오라고 하는데, 속마음은 안 갔으면 하는 것은 아닌지 판단이 안 서요.”

 장 회장님은 모든 것을 가족들에게 맡기고 갔다 왔으면 하는 눈치였고, 조심스럽게 ‘한번 결정했으면 가자’는 말씀을 하신다.


치유걷기 프로젝트로 친해진 형은수와 이정관 선생님과 상의했다.

두 분은 내 갈등하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워했다.

형은수 선생님은 이전에 산티아고 순례길을 경험한 분으로, 순례길을 완주한 후 얻게 될 축복과 은총을 수차례 기쁨에 차 말씀 주신 분이다. 더불어, 준비 과정에서 필요한 조언과 물품에 대한 안내도 해 주셨다.

형 선생님은 어머니와 누나의 수술 돌봄을 가족들에게 맡기고 갈 것을 권했고, 이정관 선생님 역시 결심한 대로 행하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했다. 주변 분들은 모두 심각한 상황이 아니라면 갈등하지 말고 가기를 권유했다.

문규현 신부님께 갈등 중인 내용을 얘기했더니, 신부님은 까미노 데 산티아고에 대해 다른 맥락에서 이야기를 꺼내셨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아무나 갈 수 있는 길이 아니야. 그 길은 선택받은 사람만이 갈 수 있는 길이야.”

출발 전 당시엔 이해할 수 없었던 말이었다.

산티아고 대성당 오른쪽 문으로 여기에는 모세와 엘리야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변모 이야기가 벽화로 그려져 있다.

선택받은 사람만이 갈 수 있는 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것은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인에게는 언제나 하느님과 대면하는 소중한 시간을 갖는 것이다.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기회가 되는 시간이라 생각한다.

믿는 사람이든, 믿지 않는 사람이든, 이 길을 걷는 것 자체만으로 축복과 은총의 발걸음이 돌아온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다.

어머니에게 주변 사람들의 의견을 전하고, 순례길을 떠나기로 한 결심을 전하였다.

어머니가 내게 건넨 한 마디는 마치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처럼 들렸다.

“아무 걱정하지 말고 잘 갔다 와!” 

3월 7일.

우리는 인천국제공항에 있었다.

나와 장 회장님은 태운 비행기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향해 날아올랐다.

피스테라 0.000km_ 순례길의 끝을 알리는 비석으로 서양인들이 땅 끝이라고 말했던 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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