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가이드를 보다…구하라 그러면 받을 것이다
2011년, 실제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스페인 전체가 큰 충격에 빠졌다.
코덱스 칼릭스티누스라는 중세 시기의 귀중한 문화 유산이 도난된 것이다.
코덱스 칼릭스티누스 필사본은 세계적으로 가치를 인정받은 중요한 문화 유산이자 서양 최초의 순례 여행 안내서로, 가톨릭 교회의 순례지침서로 높게 평가받는다.
이 책은 일반적으로 교황 방문과 같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항상 금고 안에 보관되어 있었기 때문에 관리자가 아니면 접근조차 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사라졌기에 '희대의 절도사건'으로 불리기도 한다.
코덱스 칼릭스티누스 필사본이 성당으로 다시 돌아온 것은 그로부터 1년 후.
도난 당시 수석 사제는 필사본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이 자신을 포함한 보관소 담당자 3인뿐이었다고 증언했다. 경찰은 그의 증언을 토대로 교회 내부 보안 시스템을 잘 아는 사람을 용의자로 보고 수사에 착수했다.
범인은 산티아고 성당에서 25년간 전기기사로 일했던 남성과 그의 부인, 아들, 아들의 여자친구 등 4명이었다. 이들은 성당에서 마땅히 받아야 했던 충분한 보수를 받지 못해 필사본을 훔쳐 4만 유로(5,700만원)에 팔아 넘기려고 했다.
코덱스 칼릭스티누스는 산티아고 대성당 박물관으로 돌아왔으며, 완주한 순례자들은 언제든지 필사본을 감상할 수 있도록 전시돼 있다.
▸코덱스 칼릭스티누스(Codex Calixtinus)의 기적
나에겐 순례길 스승이 있다.
그 중 한명이 필리핀에서 온 순례자 벨(67)이다.
이번이 산티아고 순례길 2번째 여정이다.
일본 선박에서 평생을 일했던 그는 지난해 은퇴를 하고 가톨릭신자로서 의무를 다하기 위해 다시 이 곳에 한다.
벨의 첫 번째 산티아고 순례는 20세라는 나이의 시기였다고 한다.
그 후 유럽과 일본을 오가는 일본 선박의 선원으로 근무하면서 세상의 끝으로 불리는 피스테라와의 인연은 더욱 깊이 쌓였다. 피스테라 앞 바다는 '땅 끝'으로 불리며, 그곳을 여러 차례 항해했다.
20세의 나이로 첫 번째 순례때에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만 갔다고 한다.
이번 순례는 피스테라와 묵시아까지 갈 계획이라고 한다.
벨은 이번 순례를 위해 많은 준비를 해 왔다. 신문 크기의 한 장의 종이에 빼곡히 적어놓은 글씨가 한가득이다. 물에 젖을까 비닐봉투에 겹겹히 묶어 보관하는 모습이 마치 보물지도같다.
무엇인지 물어보니 ‘자신을 위한 순례안내서’라고 한다.
프랑스길에서 어디를 방문하고 무엇을 봐야 하는지부터 순례길을 걷는 마음가짐, 자신이 행해야 할 보속 등이 상세히 담겨 있었다. 처음에는 개인적인 내용이라 보여주기를 주저하는 눈치였지만, 코덱스 칼릭스티누스 서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후부터는 적극적으로 보여주며 설명해 줬다.
벨에게 코덱스 칼릭스티누스는 순례자로서 지켜야 할 지침서다. 그리고 나에게 꼭 그 책을 읽으라고 조언했지만, 이 이야기를 나눈 시기가 순례를 시작한지 달포쯤 지난 여정이어서, 내가 책을 읽을 가능성은 무척 희박했다.
구글에서 코덱스 칼릭스티누스 5권 ‘순례자를 위한 안내서’를 다운했지만, 한국어판은 찾을 수 없어 ‘그림의 떡’처럼 느껴졌다.
벨을 만날때마다 도착한 도시와 마을에서 ‘이것, 저것을 꼭 봐야 한다’ 말이 더 도움 됐다.
그 때마다 코덱스 칼릭스티누스를 한국에서 보고 오지 못한 것이 무척 후회됐다.
그러던 중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아스트로가 마을에 있는 공립알베르게에 들어갔을 때 코덱스 칼릭스티누스 5권이, 그것도 한글로 쓰여진 책이 놓여져 있는 것이다. 그 순간 나에게 기적이 일어난 것처럼 전율이 일었다.
‘대체 누가 여기에 이 책을 놓고 갔을까?’
그 날부터 그 책을 정독했고, 순례의 여정은 보다 풍요로워졌다.
이 책은 순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순례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그리고 순례 여정에서 꼭 기도해야 할 장소(야보고와 관련된 22개의 기적이 있었던 장소와 내용), 4개의 프랑스길과 프엔테라레이나에서 합류하는 순례길 내용 등 다양한 정보가 정리돼 있었다.
순례길을 걷게 되면 배낭의 무게는 곧 내가 짊어져야 할 죄의 무게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누가 순례길을 걷겠다고 하면 ‘배낭은 8kg을 넘기지 말 것’을 꼭 조언하고 싶다.
물론 가능하면 더 가벼울수록 좋다.
이것저것 필요하다고 다 담는 순간, 배낭은 나를 잡아당겨 앞으로 한 발 한 발 내딛는 것이 힘들어진다.
‘왜 아르토르가에 내가 그토록 원했던 책이 있었을까?’
어쩌면 간절히 원했던 나에게 진정 필요했기에 주어진 선물이지 않을까?
하느님을 믿는 사람의 관점에서는 ‘구하시오 받으리라, 찾으시오 얻으리라, 두드리라 열리리라’는 요한복음의 말씀이 떠오른다.
이 책을 나에게 보내준 하느님께 감사기도를 드린 후, 주요 내용에 대해 밑줄치고, 생각을 주석으로 달아가며 읽었다.
읽으면서 부족한 시간에 조급함도 생겨났다.
철의십자가(Cruz del Ferro)에 머지않아 도착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책에는 순레자로서 철의십자가에서 수행해야 할 의무에 대한 내용도 있었는데, 이를 해내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몰리나세카라라는 마을에 도착했을 때다.
미국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다 은퇴해 새로운 인생을 설계하기 위해 순례길을 걷고 있던 한 여성분을 만났다.
오늘은 그 분의 생일이다. 혼자 생일맞이 식사를 하고 싶지 않다며 나와 장회장님과 함께 음식을 나누길 원했다. 우리는 그분의 생일 축하 겸 점심을 먹기 위해 보에나강 근처 카페로 갔다.
식사 후 장 회장님은 보에나강 물에 발을 담그러 내려갔다.
“회장님? 코덱스 칼릭스티누스에 보에나 강은 나쁜 강이라고, 가까이하지 말라고 소개되어 있어요”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지만 말하지 않았다.
장 회장님이 발만 담그고 나오시겠지! 설마 목을 축이시진 않을실거라 생각했다.
보에나강은 석회가 녹아있는 물이다.
중세시대 순례자들이 이 물을 마시고 탈이 많이 났던 것 같다. 그래서 그 강을 멀리하라고 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