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과 바람이 함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향하는 길
지난 2019년, 문규현 신부님과의 재회!
문 신부님과의 인연이 이어질 줄은 상상도 못했다.
학생 시절 조용한 성격이기에, 나를 기억하는 사람이 드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문 신부님의 사회활동을 돕는 매우 가까운 관계로 연결됐다.
우리의 재회는 비록 사소한 대화로부터 시작했지만, 서로에 대한 이끌림이 강하게 작용했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회칙을 알고 있니?”
신부님의 질문에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무척 난감했다.
1960년대에 교회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중지가 모여 바티칸공의회가 열린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 공의회가 세상과의 관계에서 정의했던 핵심 문구는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워져 있었다.
산다는 것은 되어간다는 것!
신부님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모토가 자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면서, 우리는(사람은) 언제나 되어 가야 함을 항상 기억하고 성찰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나는 무엇으로 되어 가고 있을까? 변해간다면 천사의 모습으로 되어 가고 싶은데! 어쩌면 지금 내 모습은 나를 괴물로 만들어 가는 것은 아닌지!' 무섭기도 하다.
잠깐 생각해 본다.
신부님은 또 탐(貪), 진(瞋), 치(痴)를 경계해야 한다고 하셨다.
탐은 정신적이고 물질적인 욕망과 욕심을 의미하며, 탐으로 인해 타인을 착취하고 자신만을 위한 삶을 살아간다. 진은 분노와 노여움을 나타내며, 이러한 감정 역시 극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설명하셨다.
신부님은 특히 치에 대한 경계를 강조하셨다.
치는 어리석음과 무지를 나타내며, 우리는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을 소홀히 하는 것도 어리석음이라고 하셨다.
나는 이제 한 명의 순례자로 성장해야 한다. 순례자로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대한 공부를 해야 한다. 치독(痴毒)을 이기기 위해 순례길을 배워야만 하는 것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이란 무엇일까?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가운데 최초의 순교자인 야고보의 무덤으로 가는 길
산티아고순례길은 9세기(813년)에 스페인 갈리시아 들판에서 은둔 수행자 펠라요가 천사의 목소리가 인도하는 빛나는 별 아래에서 산티아고(대야고보)의 무덤을 발견한 것에서 시작했다.
오늘날 그 장소는 '별이 빛나는 들판의 산티아고'라는 뜻으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불린다.
야고보는 '세상 끝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현재의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위치한 이베리아 반도에서 복음을 전파했다고 한다.
복음 전파를 마치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을때, 유대왕 헤로데의 손자인 아그리파 1세에게 붙잡혀 44년 7월 25일 12제자 가운데 최초로 참수당했다.
야고보의 제자들은 한밤중 스승의 시신을 몰래 빼내 배에 싣고 함께 도망쳤다.
제자들이 도착한 장소가 스페인 북서부 묵시아라는 곳이었으며, 이 곳에서 야고보의 시신을 장사지냈다. 그리고 800년이라는 긴 시간이 흘러 은둔 수행자 펠라요가 성인을 다시 발견한 것이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마태오 16장, 19절)
이 성경 구절은 가톨릭에서 교회가 특히 교황이 가진 권한이 얼마나 큰 지를 나타내는 대목이다.
로마교회의 주교이자 초대 교황인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 주신 권한이기 때문이다. 베드로 성상이 열쇠를 쥐고 있는 이유가 이것이다.
성지순례는 가톨릭교회가 대사(대죄의 사면)의 은총을 받을 수 있는 방법으로 선포해, 신자들은 하늘 나라에 가기 위해 반드시 행해야 할 행동으로 여겨졌다.
가톨릭의 3대 성지순례지는 로마, 예루살렘, 그리고 산티아고다.
이 가운데 산티아고는 1,000년동안 지속적인 방문이 이어지는데, 그 이유는 다른 길에 비해 비교적 안전했기 때문이다.
프랑스길이라 불리우는 까미노 프란체스는 순례 초기인 950년, 프랑스 중남부 도시 르 퓌 앙블레의 주교 고테스칼크가 수행원들을 이끌고 산티아고로 순례하면서 시초가 됐다. 1,000년이 지난 지금도 생장피에드포트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연결하는 800km의 길이 가장 많은 순례자들이 걷는 길이다.
11세기부터 13세기 사이는 순례의 열풍이 시작됐다,
프랑스, 독일, 영국, 이탈리아, 북유럽, 심지어 지중해 건너편에서도 순례자들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기록에 따르면 11세기 초 산티아고 순례자 수는 로마 순례자 수와 비슷했다.
이 시기에 구호소뿐만 아니라 도로와 다리 등 이동 편의를 위한 시설도 많이 건축됐다.
순례의 절정기는 13세기에서 15세기.
이 시기에 대사를 받으려는 순례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도 이 기간에 순례를 다녀간 것으로 기록에 남아 있다. 그러나 종교개혁이 있던 17세기부터는 잠시 주춤했지만 2,000년들어 다시 순례자 수는 크게 늘었다,
지난 2019년에는 연간 35만명이 순례한 것으로 집계됐다.
코로나 시국인 2020년 5만명, 2021년 18만명으로 줄었지만, 2021년에 이어 2022년까지 제266대 교황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콤포스텔라 희년을 연장 선포함에 따라 순례객이 다시 30만명으로 늘어났다.
"나도 1년전에 갔다면 대사(죄의 사함)의 은혜을 입었을텐데!~ 아쉽다. 나는 그런 기복적인 대사는 믿지 않으니 그 때 갔더라도 안주셨겠지?"
답은 그 분만 알고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