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epilogue. 걷는 자의 의무, 나누는 자의 기쁨

뉴질랜드 여행기를 마무리하며

by 비파담
20250304_105830 (1).jpg 밀포드사운드의 웅장항에 놀란 시간
20250302_121136.jpg
20250301_114708.jpg
20250301_084546 (1).jpg
자연과 트레킹에 적합한 뉴질랜드 남섬의 퀸스타운 트레킹 장소들

나의 여정을 기록하고 글로 나누는 이유는 '의무감' 때문이다.

11세기부터 급격히 순례자가 늘었던 산티아고 순례길.가톨릭교회에서는 고해성사를 받게 되면 '보속'을 반드시 행해야만 한다.그 보속이 산티아고 순례길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보속을 행하는 방법과 기준을 열어준 책이 '코덱스 칼릭스누스'다.

그 책에서는 순례의 완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산티아고콤포스텔라에 도착한 그대여! 이제 진정한 순례길을 떠나라.

그 길의 시작은 그대가 온 여정을 다른사람과 나누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 말은 나에게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다.

비단, 천주교신자라서가 아니라 한 명의 인간으로서도 그 행위는 우리가 하느님의 피조물임을 깨우치는 것이라 확신했기 때문이다.

20250308_115713.jpg
20250308_133944 (1).jpg
20250307_133315.jpg
20250307_133252.jpg
마운트쿡과 롭로이빙하트랙의 모습

이번 뉴질랜드에서의 여정 또한 단순한 여행이 아니었다. 나에게는 또 하나의 순례였다.

끝없이 이어진 능선과 바다, 숲과 호수는 풍경이 아니라 질문이었다.

“지금 너는 어떤 사람인가?”, “무엇을 위해 이 길을 걷고 있는가?”

순례란 단지 길을 걷는 일이 아니다.

머무는 시간, 바라보는 시선, 나누는 마음까지 모든 것이 포함된 전체의 행위다.

어느 날은 절벽 위에서 두려움을, 어느 날은 꽃길에서 위로를, 또 어느 날은 낯선 이의 따뜻한 손짓에서 연결의 기쁨을 배웠다.

삶은 그렇게 속삭인다.

멀리서가 아니라, 걷는 발밑에서 조용히 시작된다는 것을.

퀸스타운의 이른 새벽. 별이 남아 있는 하늘을 따라 한 걸음씩 오르며 마주한 첫 일출.

어둠이 걷히며 드러난 산과 호수의 실루엣은 내 안의 무언가를 조용히 깨웠다.

밀포드사운드에서는 자연의 경이로움과 동시에 인간의 한계를 마주했다.

와나카의 롭로이 트랙에서 마주한 빙하와 거대한 폭포, 그리고 사라져 가는 얼음의 흔적.

내가 본 빙하는 한 편의 다큐가 아닌, 눈앞에서 녹아내리는 현실이었다.

기후위기는 내 안에 구체적인 체험과 지금 당장 행동해야 한다는 책임으로 자리잡았다.

무거운 마음을 안고 인간의 어리석음을 비웃듯 성서에서 노아의 방주 이야기가 지금 우리에게 현실이 된 것 같은 아픔을 느꼈다.

"예전엔 이 길 전체가 빙하였어!"

마운트 쿡의 후커밸리 트랙에서는 한 노인의 이야기가 마음을 때렸다.

슬픔과 반성, 그리고 어쩔 수 없는 체념이 온통 얽혀 들었다.

클레이클리프와 테카포 호수.

점토 절벽을 기어오르다 느낀 아찔한 공포, 그리고 내려와 자신을 돌아보며 느낀 겸손.

테카포의 선한 목자 교회 앞에서 느낀 것은 '지킨다는 것의 고요한 위대함'이었다.

흔들려도 중심은 남아 있는 사람. 그런 삶을 꿈꾸게 한 장소였다.

더니든에서는 생태의 보물창고라 불리는 오타고반도를 지나며, 인간과 자연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를 배웠다.

크라이스트처치에선 지진의 흔적 위에 세워진 도시의 생명력을 보았다.

기억을 남겨야 한다며 무너진 건물을 그대로 둔 사람들의 결심.


20250310_134600.jpg
20250310_200508.jpg
20250310_131906.jpg
20250309_130828 (1).jpg
더니든 오타고반도와 테카포 선한목자의 교회

기억은 살아남은 자의 책임이다.

그리고 기억하는 일은, 지금의 나를 더 잘 살게 하는 길임을 배웠다.

오클랜드에서 마신 아메리카노 한 잔. 정말 오랜만에 마신 커피 한 잔이, 이 모든 여정을 끝낸 나에게 가장 깊은 위로가 되었다.

사소한 일상이야말로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알려주는 기준처럼 보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본 무지개.

그것은 마치 뉴질랜드라는 땅이 내게 보낸 작별 인사 같았다.

짧지만 찬란한 빛. 나에게 보낸 마지막 인사는 잘 살고 있음을 칭찬해주는 메시지처럼 느껴졌다.



20250314_102903 (1).jpg
20250312_135555 (1).jpg
20250312_144731.jpg
20250313_093834 (1).jpg
크라이스트처치의 모습들

순례자는 그렇게 또 다른 길을 향해 나아간다.

산티아고의 코덱스 칼릭스티누스가 말한 것처럼, 순례의 완성은 ‘나누는 일’로 마무리된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이 글을 쓴다.

누군가에게 이 여정의 감정이 진심으로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우리는 모두 각자 걷는 이유가 있다.

하지만 그 길 위에서 멈춰 서서 자신에게 질문을 던질 때, 그 길은 진짜 우리의 길이 되는 것임을 확신한다.

다행스럽게 뉴질랜드 여행기를 전할 수 있는 것 자체가 은총으로 여겨진다.

물론 온전치 못한 부분이 많지만, 믿는 사람의 눈에는 은총으로, 믿지 않는 이들에게는 행운이라는 이름으로 채워줄 것임을 느낀다.

그대도 그대의 길 위에서, 그대만의 풍경과 감정을 나눌 수 있기를.

그 나눔이 또 다른 누군가의 용기가 되기를.

이번에 걸었던 모든 길에 감사하며, 또 다시 길 위에 설 것이다.

더 단단하고, 더 따뜻한 마음으로.

인생의 순례자인 한명의 나는 그렇게 오늘도 살아간다.

20250318_113121.jpg
20250318_121404.jpg
20250318_105949.jpg
마오이족이 타고 왔다는 배 모협과 마오이박물관의 모습
keyword
작가의 이전글14장. 마지막 아쉬움은 시간속에 묻어 둔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