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의 향기 웰링턴…마지막 여정 오클랜드로
뉴질랜드의 경제수도 오클랜드. 행정수도 웰링턴.
오클랜드는 뉴질랜드 인구가 몰려있는 최대 도시다.
반면 웰링턴은 행정수도로 관광객에게는 선호도가 떨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아직 눈에 담지 않은 웰링턴은 고층빌딩과 잘 짜여진 도로, 조용한 거리가 이미지로 떠올랐다.
그렇기에 웰링턴은 나에게 기대나 호기심이 생기는 도시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지난 200여년간 뉴질랜드의 수도라는 명성 때문에 가 봐야 할 장소처럼 여겨졌다.
아무런 기대없이 향한 웰링턴은 나에게 쉼과 휴식을 주는 곳으로 여겼다.
하지만 내가 본 웰링턴은 전혀 다른 곳이었다.
어쩌면 그래서 더 깊이 마음에 남았는지 모르겠다.
오후 늦게 웰링턴에 도착했다.
1시간가량 공항 셔틀을 타고 시내로 들어가 바로 우리 숙소인 하카하우스로 향했다.
체크인을 마치고 저녁을 준비하던 중, 한국에서 오신 일행들과 마주쳤다.
그분들은 팀을 꾸려 세계를 여행하고 다니는 분들이었다.
이번은 팀장 1인, 부부 2인, 혼자 오신 분 1인, 부부와 딸 3인 등 총 7명이 여정을 나섰다고 한다.
구성도 다양하고 사연도 다양한 사람들이었다.
각자 다른 이유로 떠나온 사람들이, 이 먼 타지에서 하나의 팀이 되어 있다는 사실이 낯설면서도 부러웠다.
혼자 오신 분을 초대해 함께 '푸른홍합요리' 를 함께 나누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가장 인상 깊은 얘기는 그 분의 아이슬란드 '오로라탐방기' 였다.
나의 버킷리스트 가운데 캐나다 또는 북유럽에서 오로라를 보는 것이 있었다.
그렇기에 그 분의 얘기를 더욱 호기심 있게 듣게 됐고, 궁금했던 내용과 현장에서의 느낌과 상황을 자세히 물었다.
오로라!
그 분을 통해, 그리고 내가 테카포에서 느꼈던 느낌이 같았다는 확신이 드는 순간이었다.
사실 오로라는 육안으로 보기에는 어렵다.
눈으로 볼 정도로 강렬한 오로라는 우리에게는 너무 위험하기 짝이 없다.
카메라에 담긴 환상적인 모습. 우리 눈에 담기지 않는 신기루가 오로라인 것이다.
오로라는 나에게 '몽환'으로 남겨 놓기로 결심했다.
나의 버킷리스트에서 '오로라'라 지워지는 순간이다.
여행의 언어는 참 빠르게 사람 사이의 벽을 허문다는 걸 다시 느꼈다.
식사 후 웰링턴의 밤을 걷기 시작했다.
빅토리아대학교를 지나 푸니쿨라 박물관을 지나자, 보태닉가든이 보이기 시작했다.
너무 어두워져 웰링턴 보태닉가든은 내일 다시 오기로 마음먹고 다시 숙소로 향했다.
멀리서 들려오는 쉴새없이 쿵쿵대는 드럼소리와 환호소리가 뭔가 페스티벌이 열린 것 같다.
사실 오늘밤부터 2박 3일간 웰링턴에서 뉴질랜드 최대의 음악축제인 '홈그로운 뮤직페스티벌'이 열린 것이다.
이것을 볼 수 있다니 행운이다.
다음날 오전, 웰링턴 국회의사당으로 향했다.
새로 지어진 원형의 국회의사당 옆으로 옛 의회 건물과 도서관이 함께 있는 장소였다.
웰링턴 국회의사당은 상징성과 다르게, 담담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입장은 예약제로 제한되어 있어 들어가진 못했지만, 그 앞에 잠시 서 있던 그 시간만으로도 이 도시의 질서를 이해하기엔 충분했다.
이제 보태닉가든으로 가보자.
뉴질랜드에서 감동받은 것은 도시 곳곳에 보태닉가든이 반드시 있다는 것이다.
보태닉가든은 그 도시 사람들의 자부심이자 상징처럼 느껴졌다.
웰링턴 사람들은 어떤 보태닉가든을 가지고 있을까 하는 기대속에 보태닉가든으로 바로 올라갈 수 있는 푸니쿨라에 올랐다.
산 위에 오르자 도시의 풍경이 작게 펼쳐졌고, 내려다보이는 하늘과 바다가 이 도시에 리듬을 더해주고 있었다. 보태닉가든은 작지만 아기자기했다.
빼곡히 들어선 신기한 식물들, 작은 길목마다 피어난 꽃들, 그리고 여유롭게 산책하던 사람들.
누구도 바쁘지 않았다. 이 도시엔 또 다른 호흡이 있었다.
몇백년동안 그 자리에서 항상 함께했던 나무들과 같은 호흡을 나눈다는 것이 얼마나 충만한 행복인지 부럽기도 했다.
저녁이 되었을 때, 뉴질랜드 최대 뮤직축제인 홈그로운 뮤직페스티벌 현장을 둘러봤다.
다섯 개의 세션, 다양한 장르, 그리고 넘실대는 젊음의 에너지.
음악이 공간을 장악하고, 젊은이들의 몸짓이 도시를 가볍게 띄우고, 살아있는 밤을 만들고 있었다.
그 밤의 공기, 울리는 리듬, 함께 흔들리던 수많은 이들의 표정은 ‘여기 있어야 할 이유’를 분명하게 만들었다. 기대 없이 온 도시였지만, 살아 있다는 감각이 선명하게 깃든 도시.
웰링턴은 그렇게 나의 여행지도에 뜻밖의 별 하나처럼 찍혀졌다.
다음 날 아침, 오늘은 마지막 여정지인 오클랜드로 향한다.
웰링턴에서 오클랜드까지 12시간을 달리는 여정. 고되고 힘든 시간이 나에게 왔다.
단조로운 도로와 지루할 법한 시간 속에서도 다행스럽게도 지나쳐가는 국립공원의 광활한 풍경은 나의 감각을 계속 깨웠다.
걷고 싶다는 충동이 밀려왔다.
그저 버스에 앉아 보는 풍경조차 이렇게 충만한데, 직접 걷는다면 얼마나 깊게 새겨질까.
뉴질랜드는 어디를 봐도 걷고 싶은 나라다.
밤이 깊어질 무렵 오클랜드에 도착했다.
익숙한 브랜드가 눈에 들어왔다.
스타벅스.
너무도 오랜만에 마신 아메리카노 한 잔이 어찌나 반갑던지.
컵에 한가든 채워진 커피의 양과 향에서, 너무 오래 떠나 있었다는 실감이 비로소 났다.
때때로 우리는, 너무도 일상적인 것으로부터 가장 깊은 위로를 받는 듯 하다.
다음날 또다시 스타벅스를 찾았다.
오늘은 비가 내리는 날이다. 따듯한 커피 한잔 속에 창문으로 흘러내리는 빗물을 보며 어디를 가는 것이 좋을지 생각했다. 그리고 뉴질랜드 최초의 수족관인 오클랜드 캘리탈든 수족관으로 향했다.
캘리탈든 수족관.
뉴질랜드 최초의 수족관답게 규모는 작지만 인상은 깊었다.
남극 생활 오두막을 재현한 전시 공간과 세계 최초로 설계된 원형 유리 수족관이 있었다.
구조 압력을 견디기 위해 많은 시도와 실패가 있었다는 설명을 들으며, 보이지 않는 노력이 만들어낸 공간에 잠시 숙연해졌다.
무엇보다 펭귄들이 기억에 남았다.
크기도, 생김도, 행동도 너무 귀여웠다.